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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혼자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다

by 피터팬


돌이켜보면, 나는 이 섬에 처음 올 때

너무 많은 걸 참아내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익숙했던 도시의 모든 것을 등진 나를 합리화하면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매일같이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그 고요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무심한 파도 소리와 멀어져 가는 뱃고동,

텅 빈 마을버스의 창밖 풍경들이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작은 생명.

이름도, 사연도 모르던 아이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나는 생각보다 오래 외로웠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그 아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요히 내 삶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후로 삶은 아주 조금씩 변했다.


누군가를 위해 하루 두 번 밥을 챙기고,

창밖을 내다보며 함께 바람을 느끼고,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

산자락 너머에서 한 마리를 더 만났다.

경계심 많은 눈빛,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걸음.

며칠을 마주보다 결국 먼저 다가온 건 그 아이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둘이 아닌 넷이 되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치즈와 고등어.

하나둘 마당을 채우고, 침묵을 나누는 사이

이 낯선 섬살이는 어느덧 '우리의 삶'이 되었다.


처음엔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일 줄 알았다.

사람의 언어를 하지 않고, 품에 안기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의 동물.


하지만 그들은 내가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눈빛 하나에 마음이 들리고,

골골송 소리에 긴장이 풀어지고,

잠든 무릎 위의 체온에 하루의 끝이 따뜻해졌다.


그 애들은 말로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곁에 있어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이렇게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몸으로, 눈빛으로, 숨결로 그렇게 말해준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저 아이들을 데려온 걸까,

아니면 내가 저 아이들에게 발견된 걸까.


아마 정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혼자 걷던 이 섬의 길에

이젠 네 발자국이 더해졌고,

혼자 견디던 계절마다

조용한 체온 하나가 마음을 데워주었다.


이야기의 끝은 그저 이런 문장으로 남기고 싶다.

혼자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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