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에게 잘못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부모로서 간혹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6개월쯤 된 아이가 엄마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땐 아이가 본인 손의 감각과 힘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 여겼다. 조금 더 커서 화를 내며 엄마, 아빠를 때릴 때에는 아이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을 할 줄 모르니 답답해서 그런다고 여겼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혹여라도 손버릇이 안 좋은 아이로 자랄까 걱정이 되어 “지금 장난감이 잘 안 맞춰져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거 엄마도 알아. 그래도 엄마 아빠 때리는 건 안 되는 거야.”라고 매번 잔소리를 해야만 했다.
두 돌 때쯤 되어 아이가 말이 제법 늘고 있는 와중에도, “그렇더라도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시리즈의 잔소리를 계속하는 와중에도, 잘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여 고민이 많던 차였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문간으로 달려든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문간에 모습을 드러낸 친구의 엄마 혹은 아빠를 보고서 자신들의 엄마, 아빠도 곧 자신들을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오고 있어요?’ 그런 희망의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지만 발달은 저마다 달라서, 게 중 조금 더 똑똑한 아이들은 나를 보면 바로 우리 아들을 가리키거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OO~ Your mommy~”하고 친구에게 말해준다.
그날 어린이집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풍경도 여느 때와 같았다. 벌써부터 문간에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기 시작하는 귀여운 아이 두 명이 매달려 있었다. 아들내미는 어린이집 갈 때는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하더니 막상 엄마가 데리러 갔을 때는 그저 제 놀이에 열중이었다. ‘참 집중력은 좋아.’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OO~ Mommy~”하고 아들에게 달려갔다. ‘장난감 내려놓을 시간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모양새로 아들이 쥐고 있던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정말 사랑스럽고 똑똑한 아이였다.
그런데 장난감에 집중하고 있던 아들은, 그 친구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으려는 것처럼 느꼈나 보다. 눈 깜박일 사이에 그 친구는 눈가를 손으로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고, 선생님은 “NO!”하고 아들을 훈육하기 시작했고, 나는 문간에서 하얗게 굳어버렸다.
아들이 친구를 때렸다.
처음으로 내 아들이 남에게 해를 가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선생님이 아들을 훈육하는 중에도 나는 방금 내가 본 장면을 가슴속에서 처리하느라 잠시 멍해져 있었다. 그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내 머릿속을 떠다녔고, 그 장면 속에서만큼은 내 아이가 마치 악마에라도 씐 것처럼 보였다. 떼를 쓰고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불고 할 때에도 내 아이 안에 악마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아이의 실내화를 갈아 신기면서 친구에게 사과하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줬는지, “그렇더라도 때리는 건 안 되는 거야.” 시리즈를 어떻게 읊어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계속해서 아이에게 말했을 뿐이다. “친구가 장난감을 뺏어가는 것으로 오해했구나. 그래도 친구를 할퀴면 안 되는 거야. 엄마가 보니까 친구는 너한테 엄마가 왔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너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내일 가서 친구야 괜찮아? 하고 한 번 더 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