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부초밥 Aug 25. 2023

멋쟁이 할머니

남편의 엄마의 엄마 01

어렸을 적 친할머니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산 노인이었다면, 남편의 외할머니는 이제껏 내가 본 할머니 중에 가장 멋진 할머니이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백발노인’이었다.


‘백발’이라 함은 한눈에 보이는 할머니의 외형적인 특징이었다. 할머니는 백발 중에 가장 우아한 백발이었다.

법인에 근무하던 시절, 시댁이 우리 팀의 고객이 된 적이 있었다. 시댁 일을 담당하셨던 팀 선배가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 선배 또한 할머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전부 하얗게 세셨고, 엄청 정정하시고 우아하신 분!"


‘노인’ 부분에 대해서 말하자면, 할머니는 노인 중에 가장 사랑스러웠다. 할머니의 목소리 끝에는 항상 ‘ㅇ’이 있었다.

“나는 이거 싫엉.”

“언제 이거 한 번 먹고 싶엉.”

그 ‘이응’이 붙은 말투 덕분인지 할머니의 말씀은 항상 귀엽게(?) 들렸다.


그러나 할머니가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멋졌다. 80 줄에 들어서도 백발을 흩날리며 운전을 하셨을 뿐 아니라, 거의 매일 수영을 다니셨고, 그림을 그리셨다.

할머니 댁 볕이 잘 드는 창가에는 이젤이 놓여 있었는데, 나는 그곳이 좋았다. 손주들마저 장성해서 증손주를 볼 나이임에도 여전히 뭔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이 멋져 보였다. 할머니는 80세에 붓을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당신의 이름을 건 전시회를 여셨다. 먼 훗날 나도 할머니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의 재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