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어린이집 적응기
네가 21개월이던 그해 겨울에 우리는 먼 나라, 미국으로 이사를 왔어. 엄마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도 너의 말이 터지기를 고대하던 시기였지. 그맘때쯤 너는 ‘맘마’, ‘까까’, ‘물’, ‘치즈’ 같은 낱말을 뱉을 수 있었어. 미국으로 이사 올 계획이었지만 엄마, 아빠는 너에게 영어는 단 한 마디도 알려준 적이 없었어. 첫째, 한국말을 배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고, 둘째, 아기의 뇌는 스펀지 같아서 뭐든 금방 배운다는 말을 믿었어.
한국에서 너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참 좋아했지. 엄마도 네가 어린이집에 가는 게 정말 좋았어. 엄마만의 시간을 갖고 나면 너를 한층 더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수 있었고, 너와의 시간이 힘겨운 의무가 아니라 퐁퐁 사랑이 솟는 시간이 되었거든. 하원 시간인 3시가 되어 널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 문 앞에서 다른 친구가 나오기를 한참을 기다렸던 너였어. 친구들과 함께 노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서 엄마는 네가 미국에서도 금방 적응할 줄 알았어. 미국에 온 지 한 달 뒤, 너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었어. 족히 1년은 대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첫날 너를 두고 ‘안녕’하고 돌아서 나올 때부터 너는 엉엉 울었어.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있을 뿐이었지만 엄마는 서둘러 집에 가서 얼른 네가 오기 전에 청소든, 빨래든, 온갖 집안일을 했어. 잠시 후 널 데리러 갔을 때 너는 유모차에 앉아 잠이 들어 있었지. 원장 선생님은 네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고 했어. 데리러 온 엄마를 발견하고 엄마에게 안겨들 때 네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 억센 움켜쥠의 강도가 네가 느꼈을 충격의 강도라고 생각하니 엄마는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
둘째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 그래도 결국에는 엄마가 데리러 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울다 지쳐 잠이 드는 일은 없었어. 하지만 너는 어린이집에 있는 누구와의 접촉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 다른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선생님과 재밌는 수업을 할 때 너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불안한 듯 혼자였지. 말을 하지 못한다고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니었는데, 엄마랑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는데!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세상에 넌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을 거야. 엄마가 데리러 갔을 때 달려와 원망하듯 울음을 터뜨리던 네 모습을 아직도 기억해. ‘날 또 버려두고 간 엄마는 나빠!’라고 네 눈이 말했어.
셋째 날은 감사하게도 네가 어린이집 내에서의 놀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어.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친구들을 보고는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콩콩거리는 네 동영상을 보고 얼마나 기특하고 뿌듯했는지 몰라. 엄마가 널 데리러 갔을 때 너는 또다시 원망의 눈빛으로 외쳤어. “무울! 물!” 목이 말랐구나. 물이 마시고 싶었는데, 그래서 ‘물’이라고 했는데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겠구나. 선생님께 물컵을 받아서 네게 주었더니 허겁지겁 물을 마셨지. 어린이집 벽에 걸려있던 시계를 보고는 “시계! 시계!”라고 외치던 네가 무엇을 말하는지 엄마는 알 것 같았어. ‘엄마 저거 시계 맞잖아. 시계 맞지? 아무도 내 말을 이해 못 해!’ 네가 말한 그 “시계!”라는 외침 속에 얼마나 큰 절망이 들어 있었던 건지 느껴졌어. 어린이집에 나와서도 너의 확인(?)은 계속되었어. “계단! 계단!” ‘저거는 계단이야. 그렇지? 맞지 엄마?’ 한창 할 줄 아는 말이 많아진 너인데, 그래서 네가 얼마나 뿌듯해했는지 엄마는 봤는데, 이제 세상을 배웠는데, 이제 말하는 법을 배웠는데.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절박하게 너의 세상을 확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영어 한마디 알려주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어. 그날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영어 동요를 들려주었지.
그 이후에도 얼마간은 등원할 때 엄마 손을 놓기 싫어서 힘들어했던 걸로 기억해. 넉 달은 걸렸던 것 같네. 네가 서서히 다른 언어를 알아듣고, 서서히 표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이 세계에 적응할 때까지. 이제는 한국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처럼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집에 갈 때까지 어린이집 앞을 서성이지. 한참을 걷다가 더운 날씨에 지칠 때면 엄마 가방을 뒤지면서 말하지. “워터!” 이제는 울지 않고 씩씩하게 등원하고, 하원 시간에는 엄마에게로 달려오면서 말하지. “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