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깐꾼: 정글투어 - 2015/08/07(금)
숙소 1층에는 데스크를 차려놓고 투어를 판매하는 아름다운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우리 트리오에게 무척 호의적이어서 주변의 맛집과 깐꾼의 이런저런 소소한 정보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곤 했다. 그런 인연으로 투어 상품 두 가지를 그곳에서 구매했는데 그중 하나가 정글 투어였다.
우리는 빵과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정글 투어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R-1 버스를 타고 호텔과 리조트가 모여 있는 구역으로 들어갔다. 버스에는 센뜨로에 살면서 리조트 존으로 출근하는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버스가 리조트 존으로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호텔 건물들과 깨끗하게 관리된 도로가 펼쳐졌다.
정글 투어를 진행하는 여행사에 도착해서 장비를 받고 주의 사항과 스피드 보트의 조작방법을 설명받은 후 4인용 스피드 보트에 올라탔다. 처음에는 반응속도가 빠른 스피드 보트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우리 배가 지나가는 다른 배의 작은 물결에도 심하게 요동쳐서 조심하느라 함께 출발했던 세 팀 중 가장 꼴찌로 주행했는데, 10분 정도 운전하며 맹그로브 정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자니 숨겨왔던 질주본능이 살아나 앞서 출발했던 두 팀을 따돌리고 1등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형주는 스피드 보트를 타고 고속 질주하는 자신이 마치 007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맹그로브 정글이 끝난 곳에서 5분쯤 더 배를 몰고 가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형주와 나는 갈라파고스에서 워낙 멋진 바닷속을 보고 왔던지라, 다소 탁하고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는 깐꾼의 바닷속은 우리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두 시간만에 정글투어를 마치고 온몸이 젖은 채 그대로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여행사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로열 파크 호텔로 들어가 그 안쪽에 있는 바다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기분이 참 묘했다. 돈 많은 호텔들이 카리브해가 있는 근사한 바닷가를 둘러싸고는 바다와 해변이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이라도 되는 듯이 자신들의 호텔에 묵는 투숙객들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빈 의자나 파라솔이 있어서 잠깐이라도 그 근처에 서 있으면 어느새 쫓아와 호텔 투숙객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 일을 두어 번 겪고 나니 마음이 상해서 더는 머물고 싶지가 않아졌다.
발길을 돌려 나오려는데 로열 파크 호텔과 그 옆의 호텔 사이에 파라솔을 세워두고 바닷가에서 하는 액티비티 상품을 파는 할아버지의 파라솔을 발견했다. 오기가 발동한 탓이었을까. 그에게서 작은 파라솔을 10달러에 빌려 치사하게 구는 호텔들에게 보란 듯이 해변에 꽂아 두고 제나는 모래놀이를 했고, 형주는 바다로 뛰어들었으며, 나는 낮잠을 잤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우리는 다시 로열 파크 호텔의 로비를 유유히 통과해 나와 버스를 타고 가난한 여행자들의 숙소가 모여 있는 센뜨로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리 대단한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급 호텔에 가지 못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다. 그래도 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다소 험하지만 저렴한 숙소 찾아다니고,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서 다니고,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면서 현지 동네 사람들 다니는 식당에 들어가 옆 테이블에서 먹는 것을 눈치껏 따라 시켜먹고, 푸대접을 받을지언정 마트보다는 시장 찾아다니는 허름한 행색의 배낭여행자인 게 참 좋다. 그 사실이 이곳 휘황찬란한 휴양의 도시 깐꾼이라고 해서 달라지진 않는다.
점심 겸 저녁으로 숙소 근처 야시장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고, 동네 슈퍼에서 수박 반통을 사다가 아이들과 셋이서 숟가락으로 실컷 퍼먹고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다음에 깐꾼에 또 온대도 우리는 고급 호텔이 즐비한 리조트 존 보다는 복작거리는 현지인들의 생활이 깃든 여기 소박한 읍내 여관에서 머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