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깐꾼: 치첸잇사, 세놋떼 - 2015/08/08(토)
영화 아포칼립토에는 남미의 인신공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신공양이라는 것이 가진 집단 이기주의의 잔혹함이야 그것이 우리네 심청이처럼 치마 뒤집어쓰고 바다로 깔끔하게 뛰어드는 방식이나 인체를 훼손하는 방식이나 별 다를 바 없겠지만,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보인 방식의 잔인함은 그 영화를 본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리만치 충격적인 것이었다. 오늘 가볼 곳은 그 인신공양이 행해졌던 마야문명의 유적지 치첸잇사(혹은 치첸이트사로 읽기도 한다.)와 성스러운 우물 세놋떼이다.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출발해 리조트 존에 모여 단체 투어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투어버스를 타고 가면서 우리 앞자리에 앉은 세리나 가족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투어 내내 함께 이동했다. 세리나는 제나 보다 한 살 위의 예쁜 여자 아이였는데, 보스턴에서 왔다는 그들은 이란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 가족이었다. 제나가 세리나와 잘 어울려 다닌 덕분에 투어 내내 두 아이 모두 보채지 않아서 두 가족 모두 고생을 덜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마야족이 사는 마을이었다. 마을 광장 옆 성당에서는 마야 커플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전통 방식의 결혼이 아닌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은 결혼식이었지만, 잔뜩 멋을 낸 가족들이 행복한 신랑 신부와 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마저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광장 옆에서 하얀 손수건에 자주색 꽃문양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을 파는 마야 할머니가 있었다.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자신이 만든 손수건들을 보여주시기에 제나가 고른 예쁜 손수건 한 장을 팔아드렸다. 동그란 갈색 얼굴에 고운 웃음이 번지던 마야 할머니가 오래도록 평안하고 건강하시길.
기념품 가게가 붙어있는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치첸잇사로 향했다. 인신공양은 치첸잇사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입구부터 늘어선 기념품 가게마다 기괴한 모습의 해골 기념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제나가 기겁을 하고 도망치자 장난기가 발동한 형주는 해골 기념품을 들고 제나를 쫓아다녔다.
뚤룸에 비교하면 치첸잇사의 보존 상태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가이드 할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멕시코의 피라미드 치첸잇사는 태양과 달이 뜨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르다고 한다.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기원하거나 지배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인신공양을 하는 제단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는데, 영화 아포칼립토에서처럼 잔인한 방식으로 제물이 되는 사람의 인체를 훼손했는지 가이드에게 묻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듣기에 적절하지 않을 듯해서 차마 물어보진 못했다.
피라미드 옆에는 대시장이라고 불렸던 넓은 사각의 광장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고대의 공놀이에 쓰였던 돌로 된 문이 달린 대경기장이 있었는데 모두 보존 상태가 좋았다. 이런 대규모의 제단과 시장, 경기장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번성기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살인적인 더위와 척박한 토양을 가진 유까딴 반도에 기원후 550년경부터 이런 고대도시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세놋떼라는 천연의 식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놋떼는 지형적인 이유로 지반이 약한 석회암 부분이 깊숙이 지하로 꺼져 내리면서 만들어진 천연의 우물이다. 치첸잇사 근처에 있는 세놋떼는 지상에서 지하로 60미터 깊이로 꺼져내려 있는 곳으로 오후 햇살이 벽면에 비스듬히 드리워졌다. 가이드 할아버지에게 제나를 부탁하고는 구명조끼를 입고 형주와 함께 물속에 들어갔다. 워낙 깊어서 해가 물까지 미치지 못해서였을까, 물은 새까만 색으로 보였고 표면 위로 얕게 헤엄치는 작고 까만 물고기들이 보이기도 했다. 물을 등지고 누워서 지상을 보고 있노라면 꺼져 내린 면에 뿌리내려 아슬아슬하게 자라고 있는 나뭇가지와 덩굴 식물 위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과 저주라고 느껴질 만큼 뜨거운 대지의 열기에서 벗어난 서늘함이 마치 하늘에 있어야 할 천국을 지하로 옮겨놓은 듯 여겨질 만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놀라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