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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화 Dec 29. 2017

허름한 민박집

쿠바, 아바나에서 비냘레스로 이동 - 2015/08/12(수)

비냘레스로 이동하는 날이다.

숙소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비아술 터미널로 가는데 약속시간보다 늦게 온 택시기사는  10 CUC을 내라며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불렀다. 이제 웬만큼 아바나 시내 지리를 아는데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씌우려 드니 화가 나서 5 CUC이 아니면 택시에서 내리겠다고 하니까 택시기사는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한복판에 우리를 내려놨다. 버스 출발시간은 다가오는데 택시는 잡히지 않고 앞뒤로 배낭을 짊어진 채 뜨거운 도로에서 30분 정도 고생한 끝에 간신히 낡은 택시 한 대를 잡아탔다. 

그렇게 극적으로 버스를 타고 비냘레스로 가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제나가 갑자기 응가가 마렵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는 다음 휴게소까지 30분이 남았으니 기다리라고 했지만 제나의 뱃속은 긴급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이의 상황을 지켜보던 옆 좌석의 아저씨가 버스기사에게 차 세우라고 소리치고, 나는 제나를 안아 들고 근처 풀숲으로 들어가 급한 불을 껐다. 그렇게 버스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도심을 벗어난 버스는 시멘트로 포장된 고속도로를 달렸다. 왕복 4차선 도로에는 중앙 분리대도 없었고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었다. 가끔 맞은편에서 오는 군용 트럭이나 고속버스 한 두 대가 전부였다. 참 낯선 풍경이다.


오후 2시에 아바나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후 5시에 비냘레스에 도착했다. 버스가 내리는 곳에는 숙박업을 하는 까사(Casa)의 주인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서 손님을 끌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가이드북에 평이 좋은 곳 하나를 점찍어두고 그곳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는데, 어렵사리 찾아내고 보니 그 사이 상호를 바꾼 데다가 유명세를 탄 모양이었는지 손님이 꽉 차서 방이 없다고 했다. 버스에서부터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온 민박집 할머니는 우리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는 승리자의 표정을 지으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녀의 집은 여행자의 거리에서 안쪽으로 20여분을 걸어 들어간 일반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풀밭에 소가 풀을 뜯고 병아리들이 어미 닭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고 집 앞에 주렁주렁 아보카도가 열려 있는 나무가 자라는 곳. 공동주택의 2층에 위치한 민박집은 작고 소박했는데 우리가 머물 방은 사진과는 너무도 달랐다. 어두침침하고 침구류는 낡았으며 딸린 화장실은 손잡이가 고장이 나서 잘 닫히지도 않았다. 달리 대안도 없었고,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겠다 싶어서 머물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저층 아파트의 2층에 위치한 숙소. 아파트 입구에 바나나 나무가 있다.
아파트 앞에 수레를 매단 말이 묶여 풀을 뜯고 있다.
아파트가 있는 마을 풍경. 아이들 뒤쪽으로 비냘레스 계곡의 둥그런 산이 보인다.


민박집에서 늦은 저녁식사(5 CUC/1인)를 하고 나서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니 우리보다 먼저 개미들이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바탕 개미와의 전쟁을 치르고 잠을 청하니, 이번에는 에어컨 소리가 너무 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람의 세기를 조절할 수 없이 끄고 켜는 기능만 되는 에어컨이라서 소음을 없애려고 에어컨을 끄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밤새 켰다 끄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이래저래 편하게 잠자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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