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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 화장실 안 베이비시트 보셨나요?

-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

by Cha향기

구순이 넘은 어머니가 진주 요양원에 계신다. 둘째 여동생이 정기적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약도 타다 드린다. 그런데 나는 사는 게 바쁘기도 하거니와 먼 길이라 쉽게 시간을 내지 못하여 어머니를 잘 뵙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몇 년 만에 지난 9월 9일, 어머니를 뵈러 가던 길이었다. 1호선 OO역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문을 여니 눈앞에 베이비시트가 펼쳐져 있었다. 예전에도 몇 번 들렀던 화장실인데 그날은 하필 베이비시트가 설치된 화장실 칸에 들어갔다.


베이비시트가 접혀 있었더라면 예사로 봤을 텐데 펼쳐져 있어 접어야만 일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 아기를 그곳에 앉히고 볼일을 본 후에 급하게 떠난 모양새였다. 그 베이비시트를 접으려다가 경악했다.


설치한 지 몇 년이 지난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방치한 것인지, 이런 상태라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그걸 접고 좌변기에 앉았는데 바로 눈앞에 있으니 불편했고 영 꼴불견이었다.


IE003524316_STD.jpg ▲전철역 화장실 안 베이비시트: 낡고 더럽다.


게다가 공간은 어찌나 좁은지. 베이비시트를 설치할 칸은 일반 화장실 칸보다 좀 넉넉하게 지어야겠다. 바로 코앞에 아기를 앉히고 어떻게 옷을 내리고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관계자들은 그 베이비시트 앞에서 시뮬레이션이라도 해봤을까? 베이비시트를 설치한 칸은 너무도 옹색했다. 더럽고 낡은 베이비시트를 보고 나니 아기 기저귀 교환대도 눈에 띄었다. 다행히 그건 베이비시트보다는 상태가 양호했다.


일주일 후인 9월 16일, 다시 같은 역 화장실에 들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그 화장실 칸을 이용했다.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마치 내 불만을 듣기나 한 것처럼 그 베이비시트에 자그마한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민원을 제기했던 모양이다. '고장 수리 중'이라는 알림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걸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IE003524319_STD.jpg ▲고장 수리 중인 베이비시트: 재 설치를 하지 않고 그냥 고장 수리 중이라는 알림문이 부착되어 있다.
고장 수리 중

도움이 필요하시면
역무실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oo역 ×××-×××-××××


그 알림문을 부착할 때, 베이비시트 청결 상태나 얼마나 낡고 더러운 지를 확인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당장 그것을 해체하거나 새것으로 교체했어야 한다. 내가 아기를 안고 용변을 보러 그 칸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봤다.

베이비시트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맞닥뜨렸다면 나는 과연 거기 적힌 연락처에 전화를 할까? 혹시 전화를 했다 하더라도 역무원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대신 아기를 안고 밖에 서 있겠다는 뜻일까? 아기 엄마 입장에서는 낯 모르는 사람에게 아기를 맡겨 놓고 안에서 편하게 일을 볼 수 있을까?


저렇게 알림 안내문을 부착할 게 아니라 당장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맞다. 역사 측에서는 만약 내 가족이 아기를 데리고 급하게 일을 봐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역지사지해보면 좋겠다.


또 하나. 기저귀 교환대가 가로로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고 어떤 화장실은 세로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인체 공학적으로 어느 방향이 좋은 지 세밀히 살펴 좋은 쪽으로 설치하면 좋겠다. 내 생각에는 가로로 설치하는 것이, 엄마가 기저귀 갈 때 편할 것 같다.


아무튼, 전철 역사 내 화장실 칸 안에 설치된
베이비시트나 기저귀 교환대를
청결하게 관리하는 일이
매우 시급해 보인다.
IE003524323_STD.jpg ▲세로로 설치된 기저귀 교환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6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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