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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균 여행기자 May 11. 2019

왜 그렇게 자주 가니?

일본으로 향하는 이유

첫 일본 여행은 2017년 3월. 물론 그전부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지속적으로 했고, 2010년에는 삿포로 일주를 위해 15일짜리 일정도 다 준비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고 일본 여행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도 만화의 바이블로 삼고 종종 읽는 슬램덩크<좌>와 드래곤볼 ⓒ대원씨아이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 여행에 대한 환상은 품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너무 오랫동안 일본 문화와 접해 있었기 때문에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1980년대생 대부분이 봤을 법한 드래곤볼, 슬램덩크로 일본 문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당시 5살, 부모님 손을 꼭 잡고 집 앞 책방에서 처음으로 만화책을 읽었는데 그게 바로 슬램덩크와 드래곤볼. 두 만화 모두 등장인물이 한글로 돼 있어 어린 나이였지만 읽기 수월했고, 스토리는 두말할 것 없이 좋아 완전히 빠져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가 됐고, 방학이면 하루에 4~5시간씩 농구하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 게다가 2000년대 초반 각 반에 한 명은 진짜배기 일본 덕후들이 존재했는데 그 친구와 짝이 되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그때 본 드라마가 <런치의 여왕>이고, 그때부터 일본 음식과 여행에 대한 갈망이 커졌던 것 같다. 

*여담으로 중학생 때 처음으로 '강백호'의 진짜 이름이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걸 알았을 때 충격은 엄청났다. 



원전사고 이후 일본 여행은 물 건너갔지만 2014년 6월 모든 대학생의 로망, 유럽 배낭여행으로 해외여행을 첫 발을 내디뎠다. 돌이켜보면 정말 어설펐지만 이때 겪었던 식문화, 예술, 여행의 맛은 지금 다니고 있는 여행들의 밑바탕이 됐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프랑스를 시작으로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벨기에, 네덜란드를 돌아다녔다. 어떠한 사고도 없이 여행을 마쳤는데, 이후로 해외여행은 3년 간 멈췄다.

당시에는 해외여행 한 번 다녀왔으니 우선 한국을 더 열심히 다니며 우리 것을 알아보자는 마음이 컸다. 이후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제주도, 부산을 중심으로 국내 여행에 집중했다. 특히 제주도와 부산의 경우는 3년간 15번씩은 다녀왔다. 이것도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한 번 갈 때 오랜 기간 떠나는 것보다 짧지만 자주 다니는 걸 선호한다. 여행 가는 그 순간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그런 기분을 자주 느끼고 싶어 그렇다. 


스위스 그뤼에르 성에서 본 그뤼에르 전경. 이 글 작성을 위해 오랜만에 외장하드를 뒤져 색감 보정을 다시 했다. 

지금 봐도 무척 근사한 마을이다. 

유럽의 다양한 문화들이 신선하고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건물들. 여행 내내 짜릿했다. 왼쪽부터 네덜란드 알크마르, 룩셈부르크 비안덴, 프랑스 콜마르


미식에 눈을 뜨게 해 준 유럽 여행. 그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영원한 인생 맥주 벨기에 수도원 맥주인 트라피스트 로쉬포르. 사진 왼쪽부터 벨기에 홍합, 네덜란드 미슐랭 2스타 씨엘블루, 아래는 벨기에 미슐랭 1스타 드 용크만.



한 동안 해외여행을 잊고 있다 어느덧 2017년이 됐다. 당시에 나를 감도는 분위기가 묘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갑자기 여행에 사로잡혔고, 사회 전박적으로도 해외여행 붐이 일었다. 1순위 목적지가 일본이라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다들 가는 분위기라 나 또한 덩달아 휩쓸렸고, 게다가 원전 사고도 6년이나 지났는데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여행의 시작은 오사카가 제격이라는 말에 홀린 듯이 오사카 항공편을 구매했다.

돌이켜보면 본격적으로 LCC가 해외 노선에 주력하기 시작했고, 일본 왕복항공편이 15만원 정도인 특가 요금이 쏟아졌다. 여가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도 커졌던 시기 같다. 통계로도 증명됐는데 2013~2015년까지만 해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200~400만명 수준이었고, 2016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5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2017년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며 700만명을 넘겼고, 작년에는 750만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지난해와 비슷한 추이를 보이지만 전체 출국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메다 스카이빌딩에서 바라본 오사카 전경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일본 여행을 2017년 3월에 오사카로 향하며 시작하게 됐다. 2014년부터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렀고, 2017년에는 이미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식당들은 꽤나 섭렵했던 터라 일본에 대한 기대도 상당히 컸다. 본고장의 사시미와 라멘, 돈가스 등 한국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의 진짜 모습은 어떨지 기대에 부풀었다. 



간사이공항에 도착해 라피트(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처음으로 오사카의 시내를 바라보면 찍은 사진이다. 이때 느꼈던 감정은 참 묘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집들의 모습이 진짜 일본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만들었으니. 단조롭고, 가건물처럼 보이는 저 집들을 보며 짱구를 떠올리기도 했다. 내가 짱구의 나라에 왔다니.


사실 3박 4일간의 첫 일본 여행을 하면서 관광에 대한 만족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엇비슷해 보이는 건축 양식, 사찰 등 어느 정도 미디어를 통해 접해왔던 것들이라 덤덤하게 다가왔다. 아 이게 일본 감성이구나 하는 정도로 휙휙 지나갔다. 아마 이런 것만 봤다면 지금처럼 일본에 수시로 드나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사카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게 뭘까. 일본 여행 통틀어서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음식과 식문화다. 일본인들이 음식을 다루는 방법과 고객에게 음식을 전하는 행위 등이 미식 종주국인 프랑스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굳이 등급을 나누자면 저예산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모든 스펙트럼에서 뛰어났다. 1,000원짜리는 1,000원짜리대로 맛있고, 편의점은 편의점만의 특색이 있고, 15만원짜리 레스토랑은 그에 걸맞은, 혹은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과시했다. 관심분야에 한정 지으니 일본이란 나라는 내게 최적의 여행지였다. 이 매거진에서 천천히 풀어나가겠지만 17번의 일본여행을 하며 일식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음식도 일본에서 여러 번 접했는데 본국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첫 여행에서 먹었던 것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국내에서 먹었던 어떤 우니보다 맛있었던 계절요리집의 우니. 일본의 오뎅 문화도 접했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오뎅은 가쓰오부시 등으로 우려낸 육수에 재료를 담가먹는 요리법이다. 우리가 아는 어묵은 보통 가마보코라고 불린다. 따라서 오뎅의 종류는 저렇게 낙지, 곤약, 두부, 소고기 등 어느 것이나 들어가도 상관없다. 



내 평생 먹었던 밥 중 가장 맛있는 쌀밥을 일본에서 만났고, 어머니도 50년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밥맛이라고 극찬. 장어가 주가 아니라 백미가 메인이다. 



생활 식품도 강했다. 마트에서 3만원이면 방어, 참치등살, 광어, 도미, 새우, 오징어, 우니와 멘치까스, 칠리새우 등을 맥주와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일본도 맥주 문화가 잘 발달해 있는데, 일본에 가면 한국에서도 흔히 마실 수 있는 산토리 프리미엄몰츠, 아사히, 기린, 에비스말고 다른 라인업들을 마시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 된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것 중에는 산토리 마스터드림, 산토리 도쿄크래프트를 추천한다. 페일에일류의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만한 경험을 할 것이다. 



하루에 4시간만 영업하는 교토의 유일한 미슐랭 스타 소바집. 음식이 어찌나 느리게 나오는지 대기 시간도 길지만 맛을 보면 수긍이 간다. 면을 뽑아내는 요리사의 모습이 마치 장인처럼 빛나 보였다. 이 교토 감성이 짙게 배인 소바는 소바 인생의 방향을 잡아줄 정도로 인상이 강하다. 



어찌 됐든 여태 일본 여행을 다니는 건 전적으로 음식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방사능 역시 걱정되는 부분이지만 미세먼지와 일상의 지루함을 털어내기에 가장 만만하 게 일본인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돈으로 좀 더 큰 재미와 일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올해도 수시로 들락날락할 것 같다. 사실 일본여행 덕분에 한국에서는 좀 더 한국적인 것에 집중하게 됐다는 것도 큰 소득이다. 

*요새 환율이 급격하게 올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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