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깨고 마주한, <용왕이 하는 일!>의 뜨거운 전율
솔직해지자. 이 작품의 첫인상은 위험하다.
16살 소년이 일본 장기(쇼기) 계의 정점에 올랐는데, 어느 날 9살짜리 초등학생 소녀가 제자로 받아달라며 찾아와 동거를 시작한다. 표지에는 귀여운 소녀들이 잔뜩 그려져 있고, 흔히 말하는 '로리(Loli)' 취향을 자극하는 요소가 다분해 보인다.
아마 서점에서, 혹은 넷플릭스 썸네일에서 이 작품을 마주쳤다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생각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아, 그냥 그런 오타쿠 망상 만화구나."
하지만 단언컨대, 그 껍질에 속아 이 작품을 놓치는 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직업 드라마 한 편을 놓치는 실수가 될 것이다. 오늘은 쇼기 소설로 유명한 '용왕이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한다.
주인공 '쿠즈류 야이치'는 중학생의 나이에 쇼기계 최고 타이틀인 '용왕(龍王)'을 거머쥔 천재다. 억대 연봉에 명예까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지만 그는 지금 지옥을 걷고 있다.
"내 실력은 가짜가 아닐까?"
"다음 대국에서 지면 모든 게 무너지는 건 아닐까?"
너무 일찍 정상에 오른 소년은 추락의 공포에 짓눌려 방어적인 쇼기만을 두게 되었고, '역대 최악의 용왕'이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다. 화려한 성공 신화 뒤에 숨겨진, 번아웃(Burnout)과 자기혐오. 이것은 비단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목표를 이룬 뒤 길을 잃어버린 우리네 현대인들의 자화상인 듯도 하다.
그런 죽어가는 용왕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초등학생 소녀, '히나츠루 아이'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어린 여자아이'는 보호의 대상이거나 귀여움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어린아이'라는 설정은 가장 잔혹하고 순수한 '광기(狂氣)'를 표현하는 장치로 쓰인다.
어른들은 체면을 차리느라, 혹은 현실과 타협하느라 적당히 멈춘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는다.
밥을 굶고, 잠을 자지 않고, 무릎이 으스러질 때까지 정좌를 하며 쇼기판을 노려본다. 오직 '이기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 하나로.
야이치는 이 어린 제자에게서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자신이 타이틀의 무게에 짓눌려 잊고 있었던, '미치도록 쇼기를 좋아했던 시절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재능은 똥이다. 노력도 똥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작품은 '로리'라는 코드를 통해 역설적이게도 가장 타협 없는 열정의 원형을 보여준다. 소녀의 작고 여린 손이 쇼기판 위에서는 그 어떤 거구의 어른보다 무겁고 매섭게 내리꽂힌다.
"나는 일본 장기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데?"
걱정할 필요 없다. <퀸스 갬빗>을 볼 때 체스 규칙을 몰라도 주인공의 눈빛에 압도당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판 밖에서 오가는 심리전이 핵심이다.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몇 시간이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버티는 인내, 수 하나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거는 도박사적 기질, 그리고 패배하는 순간 "죽고 싶다"고 울부짖는 처절함.
작가는 귀여운 그림체로 독자를 유인한 뒤, 그 안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는 승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여기서 '귀여움'은 그 비정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독자는 전율하게 된다.
거기다, 규칙을 모를 입문자를 배려해 소설 중간중간 친절하게 일본 장기(쇼기)의 규칙을 소개하는 란이 있다.
<용왕이 하는 일!>은 제목 그대로 '일(Job)'에 대한 이야기다.
천재라 불리지만 매일 도망치고 싶은 16살 스승과, 재능의 벽 따위는 모른 채 무작정 돌진하는 9살 제자.
이 기묘한 동거와 사제 관계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언가에 미쳐서 밤을 지새워 본 적이 언제입니까?"
겉보기에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미소녀 설정'은 그저 입구일 뿐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진짜 프로'들의 뜨거운 눈물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식어버린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고 싶다면, 혹은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면.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이 어린 용왕과 소녀의 치열한 승부수를 지켜보길 권한다. 생각보다 그 울림은 묵직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