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페의 구인글에 항상 들어가는 문구가 있다.
사실 이 말은 20대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에 처음 나왔을 때, 생각보다 세상은 따뜻했고 따뜻한 세상에서 따뜻한 사장님들을 만났다. 그들은 온기어린 눈빛과 자상한 목소리로 "가족처럼 일하자." 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들의 사업장에 헌신하며 열심히 일했다. 별다른 계약서를 쓰지도 않았고, 임금에 대해 자세하게 묻지도 않았다. 그런 돈이나 계약같은 딱딱한 이야기는 가족끼리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가족인데. 어련히 우리 부모님, 삼촌이 잘 챙겨주실텐데.' 회사를 다닐 때 그깟 야근수당 없이도 매일하는 야근이 당연했고, 카페에서 일할 때는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이 당연했다. 우리는 이 사업체를 함께 키워가는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은 내가 그 가족을 떠나서 족보에서 지워질 때에는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 따뜻하던 세상은 그 순간만큼은 얼굴 색을 바꿔 싸늘한 낯빛으로 말했다. "우리가 계약서를 썼던가요? 알바가 무슨 퇴직금이에요. 주휴수당? 그런거 나는 잘 모르는데? 이러려고 우리 가게에서 그렇게 오래 일한거에요?" 퇴사를 할 때에는 언제나 퇴직금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여야했고, 퇴직을 하고보니 그 동안 세금의 명목으로 안그래도 적은 월급의 일부를 떼어가던 회사가 나를 직원으로 등록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곳도 있었다. 주휴수당은 커녕 임금조차 몇 주, 몇 달씩 미루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십대 후반에 사장이 되고 사장이 들어야 하는 필수 교육을 듣다보니 참 내가 순진했다는 걸 알게되었다. 카페나 요식업 사장이 되면 처음 카페를 열 때 뿐 아니라, 이후 1년 마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다. 수업에는 주휴수당과 퇴직금의 조건,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의무과 같은 것들이 자세하게 설명된다. 만약 가족같던 그 사장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분들을 정말 몰랐다면 사업체를 운영할 기본적 자질조차 없을 만큼 무능한 것이었을테고, 알았는데도 묵인하거나 모른체했다면 그 역시 참 멋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 카페는 처음 일을 시작하면 기간이 정해진 근로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 기간동안 우리는 동등한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그건 바로 이 곳에서 계속 일을 할지 여부에 대한 선택이다. 많은 사장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오직 자신만이 근로자가 그 사업체에서 일할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착각이다. 그렇지 않다. 직원들도 얼마든지 사업장과 사업자를 선택하고 떠날 수 있다. 다만 근로자가 먼저 사업장을 떠나겠노라 말할 때는 묘하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물론 고용자 역시 근로자를 떠나도록 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사장은 그럼에도 갑이다. 둘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최종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내가 아무리 좋은 사장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가족같은 사장이 되겠노라 이야기 해도 결국 선택은 사장의 몫이다. 정에 이끌려 단호한 선택을 하지 않는것도, 혹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오판하는 것도 사장이 선택한 일이다.
선택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건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업체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작든 크든 선택의 권한만큼 책임의 범위도 커진다. 종종 책임은 근로자에게, 권한은 사장에게 있는 사업장들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책임만 사장이 가지고 있고 권한이 상실된 경우도 허다하다. 책임과 권한 모두 사장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사장이 사장으로써의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만큼 나의 책임이 있다. 내게 주어진 책임과 선택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서도 안되는 것들이다. 이건 내가 20대에 따뜻한 사장님들을 겪으며 몸소 느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