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다 더 좋았던 전기차
이날 EV6를 시승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카셰어링을 통해 잠시 EV6를 빌려 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레이나 캐스퍼를 잠깐 이용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원하는 시간대에는 EV6만 이용 가능하여 부득이하게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반나절 정도 타본 소감은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으며,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도 꽤 괜찮은 차량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차량은 자가용이 아니었고 약 7만 킬로미터를 주행한 오래된 차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승차감이 매우 우수했습니다.
이런 인상을 받은 후 EV3를 리뷰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EV3에게는 다소 불리한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반적인 외형은 마치 잘 달릴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어떤 장르로 불러야 할지 고민되는 디자인입니다. 크로스오버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차량의 높이는 세단보다는 높은 편이지만 SUV보다는 낮아서, 두 장르의 장점과 단점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다 보니, 시트를 세운 상태로 앉아도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전고가 충분한 편이지만, 트렁크의 형태를 보면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루프에서 트렁크까지 급격하게 떨어지는 각도로 설계되어 있어, 많은 짐을 싣기에는 다소 불편한 구조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BMW GT와 비슷한 형태의 디자인 덕분에 후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은 제 취향과 딱 맞았습니다.
이 차량이 2021년에 출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디자인은 상당히 세련된 편입니다. 특히 플러싱 타입의 도어 핸들이나 범퍼의 형태는 지금의 최신 모델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현대적인 느낌을 줍니다. 전기차 디자인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EV6를 기준으로, 이후 등장한 전기차들의 디자인 포인트를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처음 저 형태의 핸들을 보았을 때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역시 보는 것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상보다 사용성이 뛰어났고, 버튼의 배치 역시 매우 직관적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이런 요소들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차량을 경험해 보면 이러한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일종의 역체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두 개의 디스플레이를 사용했지만, 하나의 화면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와 터치 방식으로 조작하는 공조기가 인상적인 요소였습니다.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는 이미 많은 호평을 받고 있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하단의 디스플레이 방식은 조작이 직관적이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에 큰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기에, 큰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V6에서 다소 아쉬웠던 점은 다이얼식 변속기와 크기가 상당한 센터 콘솔이었습니다. 센터 콘솔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1열 공간이 좁게 느껴졌으며, 굳이 이렇게 넓은 공간을 차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이얼식 변속기는 기아의 고유한 변속 방식이지만, EV3에서 적용된 것처럼 앞으로는 컬럼식 변속기로 변경하여 탑승자에게 더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입니다.
이날 시승했던 차량은 EV6 에어 트림으로 추정되었지만, 전반적인 옵션과 사양이 충분하여 운전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보통 견적을 낼 때는 풀옵션을 선택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경험해 보면 이 정도 사양만으로도 운전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시 직접 체감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법이네요.
EV3보다 숫자가 무려 3이나 더 큰 EV6는, 비록 EV3가 최근에 출시된 모델이라 하더라도 ‘급’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단순히 공간이나 차체 크기뿐만 아니라, 주행 소음이나 승차감 면에서도 EV6가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그리고 가성비 측면에서도 EV3보다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 패밀리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런 평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만약 싱글라이프를 즐긴다면 오히려 캐스퍼 일렉트릭이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고, 패밀리카(다인 탑승 환경)를 고려한다면 EV6가 더 적합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내연기관 차량만 운전해 온 제게 전기차는 확실히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회생제동 때문인데,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전력 회수를 위해 브레이크가 걸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다소 울컥이는 반응을 보입니다. 물론 이 회생제동 강도를 조절할 수는 있지만, 단기간 내에 자신에게 맞는 설정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해 보였으며, 단순히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 그저 차량을 교체하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기차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이해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차량이 출시된 지 4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전기차 인프라가 구축되었다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전기차를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하지만, 내연기관 차량만 고집해 오던 저도 직접 체험해 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기차는 이제 상당히 완성도가 높아졌으며, 오히려 내연기관 차량보다 더 뛰어난 부분도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직 전기차를 경험해 보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 번 시간을 내어 시승해 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