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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킴 Jan 31. 2023

누칼협, 알빠노, 중꺾마의 2022년

어쩌다 이 밈들은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게 됐을까


2022년은 ‘누칼협, 알빠노, 중꺾마’의 해였다. 작년 한 해 대중은 체념과 냉소를 체화하여 그 어떤 사회 구조적인 사안에도 개인을 분리시킬만큼 싸늘하고 쿨했다. 그러나 동시에 월드컵 대표 선수들의 팀워크와 열정에 응원을 보내고, 반전의 순간에 뜨겁게 불타오르기도 했다. 냉소적 체념과 희망에의 열광을 같은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누칼협은 2021년, 로스트아크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밈이다. 한 집단에 속한 구성원이 해당 집단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할 때, 그 집단에 스스로 발을 들인 구성원 개인의 선택에 책임을 돌려 소위 ‘물타기’를 할 때 주로 사용된다. 2022년 공무원 노조가 정부의 임금 1.7% 인상이 부당하며 시위했을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누가 칼 들고 (공무원 하라고) 협박했나, 꼬우면 이직하라’며 시위에 반대했다. 이태원 참사 기간에도 누칼협 정서는 어김없이 등장해서, 사망자들이 자청해서 이태원에 가는 바람에 참사가 벌어진 것이며, 정부의 장례비 지원 및 국고 보조 등은 부당하다는 여론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다.

알빠노 역시 2022년 LOL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퍼진 밈이다. 타인이 겪고 있는 상황, 그 중에서도 특히 불행한 사고나 불만 제기 등에 공감의 선을 확실히 긋고, 특유의 무심하면서 당당한 뉘앙스로 무관심과 냉소를  함축한다. 반면, 중꺾마는 같은 LOL 프로게이머가 경기에서 진 소감을 인터뷰하며 나온 말을, 담당 기자가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갈무리하고, 이후 해당 프로게이머가 역전승을 거듭하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 직후 열린 카타르 월드컵에서 남자 축구 대표팀이 16강 진출을 확정하며 태극기에 이 문구를 쓰는 모습이 SNS를 타고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대중의 정서는 사실 일관적이지도, 단편적이지도 않다. 일종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누칼협, 알빠노와 중꺾마’가 공존할 수 있는 현재 한국 사회는 일견 파편화되어 보이지만, 보다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그 정서적 울타리를 공유하고 있다. 누칼협과 알빠노와 같은 밈은, 그 말을 듣는 대상과 발화하는 대상이 주로 겪게 되는 정서적 작용이 다르다. 듣는 이는 본인이 문제 제기하는 사회 구조적 결함에 대해 냉소하는 타인들을 보며 무관심이 극대화된 개인주의의 면모, 혹은 구조적인 요인보다 개인의 책임으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불성실하게 사유하는 모습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면서 좌절감을 느끼는게 일반적이다.

반면, 누칼협과 알빠노의 발화자는 타인의 상황에 정서적인 벽을 쌓음으로써 감정적 소모를 방어하고, 스스로도 겪어 본 사회 구조적인 좌절을 떠올리지 않도록 그 밈을 사용한다. 특히 지금 세대는 학업과 취업, 결혼 등 사회가 정의한 성공의 경험이 집단적으로 부재하다.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사소한 거라도 직접 바꿔 본 작은 성공의 경험조차 딱히 없다. 따라서 이들은 아주 약간의 연대 책임조차 견디지 못하며, 누칼협과 알빠노라는 마법의 주문을 통해 타인과 자신의 괴로운 상황을 망각하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루어 짜릿한 역전승을 이루어내는 모습이, 이들 세대에게는 연대로 인한 성공을 대리로나마 한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하 10도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에서, 혹은 전국 곳곳의 술집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 응원을 했다.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축구 경기를 보는 재미, 대한민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애국심 외에, 타인과 하나의 단체를 이루어 같이 일궈내는 이 승리의 경험이 무엇보다도 가장 갈망해왔던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중꺾마가 월드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을 때 평소처럼 이에 냉소하고 정서적 거리를 두는 대신, 본인의 트위터, 인스타에서 사용하며 퍼나른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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