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에 담긴 비밀
취향은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나는 젤리를 싫어한다. 입에 넣자마자 스며드는 인공적인 향과 그 특유의 질겅질겅한 질감이 싫다. 하지만 비타민만큼은 구미 젤리 제형으로 먹는데, 알약 형태와 달리 소화가 잘 되고 구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약 1년째 구미 젤리 비타민을 먹는데, 한가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 어느새 비타민이 아니더라도 하리보나 추파춥스 같은 일반적인 젤리를 즐겨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은 어지간해선 잘 안 변한다는데, 한때 싫어했던 것에 습관적으로 길들여져 어느새 좋아하고 있는 것이 퍽이나 신기했다.
영어에 ‘Acquired Taste’라는 개념이 있다. 직역하자면 ‘획득한 취향’이라는 뜻인데, 고수나 위스키 같이 처음에는 먹기 힘든 음식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짐에 따라 서서히 즐기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톰 밴더빌트는 그의 저서 <취향의 탄생>에서 사실상 모든 취향이 타고나기 보다는 ‘Acquired’, 즉 후천적으로 획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Talks at Google에서 진행한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우리 인생 대부분의 것이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음식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혀에 전해지는 감각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저 당신의 뇌가 음식을 먹는 경험에 대해 다르게 인식한 것이다.”
톰 밴더빌트의 저서, <취향의 탄생> 링크 : https://www.yes24.com/Product/Goods/33609985
20세기의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구별짓기(Distiction)>에서 취향에 대해 정의하길,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라고 하며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취향을 통해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분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그 역시 취향, 혹은 그가 만들어낸 ‘아비투스’, 즉 ‘성향’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위치, 교육 환경, 경제 계급에 따라 후천적으로 길러진다는 점을 짚어냈다.
부르디외에 관한 글 : https://www.mk.co.kr/news/culture/4761181
취향은 타인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사람의 취향이 바뀌는 것이라면, 무엇이 그것을 바꾸는 걸까? 나아가 우리가 원래 가졌던 취향도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이라면, 우리가 스스로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 판단했던 것은 어디서 온 걸까? 대학 학위나 전문직 자격증이 그것을 보유한 사람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처럼,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혹은 명품 의류나 고급 자동차까지 가지 않더라도, 유니클로나 지오다노를 입고 아반떼나 캐스퍼를 보유하면 최소한 남들 정도는 된다는 심리가 무의식 중에 작용한다. 바로 이 것을 ‘제도화된 취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결국 취향은 후천적으로 학습될 뿐 아니라 애초부터 타인과의 무의식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라고도 주장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중국에서는 머리에 작은 새싹을 핀으로 만들어 달고 다니는게 유행했다. 톰 밴더빌트에 따르면, 뉴욕타임즈는 이 현상에 대해 끈질기게 추적하며 사람들이 핀을 왜 머리에 달고 다니는지를 밝혀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린 유일한 결론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며, 특히 소셜 미디어가 그것을 증폭시켰다고 했다. 뉴욕타임즈는 실제 새싹핀을 머리에 달고 있는 대학생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그는 “인터넷에 보이는 건 다 따라한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한다.”고 답했다. 이렇게만 보면, 취향은 후천적으로 길러질 뿐 아니라, 타인에게서 학습되기도 한다.
뉴욕 타임즈의 기고 : https://www.nytimes.com/2015/10/08/world/asia/china-hair-trend-sprout-plant.html
톰 밴더빌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좋아할 때보다 싫어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대개 그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은 안전한 것인 반면, 싫어하는 것에 대한 표출은 일종의 본능적인 경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면, 사람들은 안전 추구의 본능 때문에 더 익숙하고 자신이 겪어본 것을 ‘좋아한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무언가가 익숙한 이유는 타인이 경험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거나, 사회로부터 학습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익숙한 것을 자신의 취향으로 전유하는 방식이 일종의 안전성을 담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은 취향의 평준화를 강화시킨다
이 직전 글에서 현대 시대의 크리에이티브가 평균에 수렴한다는 글을 번역해서 소개한 바 있다.
글 : https://brunch.co.kr/@mrtolstol/22
톰 밴더빌트의 인터뷰에서 바로 그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해볼 수 있다. 먼저 그는 인터넷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창조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트렌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식당에 대한 평점들, 혹은 멜론 등 음원차트의 TOP 100순위표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모두 화제된 장소나 음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이에 노출된 소비자들은 평점이 높은 식당만을 지속적으로 방문하거나, TOP 100에 등재된 음원만을 스트리밍한다. 타인의, 나아가서 사회의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대중의 취향을 평균에 수렴케 한다. 실제로 톰 밴더빌트가 입수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요즘은 한 번 히트를 친 음원이 훨씬 오랜 기간 동안 화제가 된다고 한다. 히트를 친 소수가 오랫동안 왕좌에 군림하여 취향을 평균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톰 밴더빌트는 사람들이 듣기 편한 음악을 더 좋아하거나, 읽기 쉬운 책을 본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관찰했다. 이것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유사하여, 난생 처음 들어본 외국어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낯선 장르의 음악이나 난해한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상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의 이러한 본능에 녹아들어 그들이 익숙해하고 좋아하는 것만을 추천해준다는 점이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일방향적인 정보만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필터 버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웹툰계에서 소위 양산형 웹툰이 지속 생산되는 구조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과정에는 그것을 배우고 새로이 익숙해지는 과정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만, 지금의 소셜 알고리즘은 그에 정확히 반대되게 설계되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참고하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통해 톰 밴더빌트의 인터뷰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참고] 톰 밴더빌트의 Talks at Google 대담 : https://www.youtube.com/watch?v=p3w0mtZxg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