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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소녀단과 여성 스포츠 예능의 현주소

by 미셸 킴

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이 2021년 첫 방영 된 이후, 방송사들은 제각기 여성 스포츠 예능을 내놓았다. E채널의 <노는 언니>는 시즌2를 확정했고, JTBC는 2022년 <마녀 체력 농구부>를 통해 여성 연예인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여성 농구단을 설립했다. 2023년에는 넷플릭스도 이러한 추세에 참가, 여성들의 생존 서바이벌 <사이렌>을 내놓는다. 2024년 tvN의 철인 3종 도전기 <무쇠소녀단>과 채널A의 <강철부대W>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불모지였던 여성 스포츠 예능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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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무쇠소녀단>은 진서연과 유이, 설인아와 박주현 등 배우들이 철인 3종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을 담아낸 예능이다. 9월 7일 첫 방영 후 케이블 및 종편 포함 동시간대 1위를 한 주도 빼놓지 않다가 최종화에서는 감동스러운 완주 엔딩과 함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SNS 플랫폼 누적 조회수 역시 2억에 가깝게 기록했는데,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보고 운동 자극이 온다”며 런닝머신에서 시청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다. 언론에서도 “보기만 해도 근력이 생길 것 같다”며 출연자들의 진정성에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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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한국의 스포츠 예능史, 특히 여성 스포츠 예능의 흐름을 개괄하며 <무쇠소녀단>그동안의 스포츠 예능은 여성 출연자의 신체를 어떠한 시선으로 담아냈는지, 그러한 시선이 <무쇠소녀단>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사회문화사적으로 살펴본다.


2000년 - 2010년
여성은 매너저일 뿐, 스포츠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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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출발 드림팀> 방영 후 주요 방송사에서는 일제히 스포츠 예능을 내놓았다. 이강인을 탄생시킨 <날아라 슛돌이>에서 유소년 축구로 그 포문을 열었다면, <천하무적 야구단>에서는 야구 초보 연예인들의 사회 야구 도전기를 다뤘다.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가 지속되던 2011~12년에는 <무한도전>과 <남자의 자격>에서 각각 조정과 철인 3종에 도전하기도 했다. 여성 출연자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예능은 전무했으며, <날아라 슛돌이>에서 일부 여성 연예인이 매니저로서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양육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성 멤버의 리얼 버라이어티 <여걸식스>에서는 2006년 월드컵 특집으로 슛돌이 멤버들과의 친선 경기를 주최했는데, 진지하게 임하는 슛돌이 멤버들과 달리 예능적으로만 접근하는 멤버들은 시청자들의 원성과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한마디로, 여성과 스포츠를 결부하여 인식하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BBBBBB.jpg?type=w1200 날아라 슛돌이의 일명 '얼짱 매니저', 이연두.


<날아라 슛돌이> 첫 시즌이 방영된지 10여년이 지난 2010년대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2017년 런칭한 <발레교습소:백조클럽>에 예능 역사상 처음으로 올 여성 멤버가 스포츠 행위자로서 참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발레’는 필라테스나 요가 등과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는 스포츠라는 사회적인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프로그램 기획 의도 역시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는다고 언급하면서 당시 여성에 부가되던 외모 가꿈 중시 풍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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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19년 방영된 <뭉쳐야 찬다>와 함께 방송가의 스포츠 예능 돌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여성 출연자들은 2020년 선수권 대회 특집으로 탁구 현정화,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등 출연했을 때 잠시, 2021년 여자 축구팀과의 경기 에피소드에서 한수원 여자축구단이 출연했을 때 잠시 얼굴을 내비쳤을 뿐이었다.


2020년 - 2023년
여성 스포츠 예능의 굴기,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20~2021년은 여성 스포츠 예능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의 시기다. 2020년 <맛있는 녀석들>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멤버 김민경이 사격 등 다양한 예능에 도전하는 <오늘부터 운동뚱>이 릴리즈 되었으며, 여성 스포츠 스타들을 캐스팅한 <노는 언니>의 첫 시즌이 탄생했다. 그러나 두 예능 역시 한계점이 존재했는데, <운동뚱>의 경우 김민경 뿐 아니라, 김준현, 문세윤 등 맛녀석의 다른 멤버들 모두 각자 운동을 하나씩 도전하여 다이어트를 하는 기획으로 시작했으며, <노는 언니>는 여성 스포츠 스타를 캐스팅했지만 프로그램 기획의도는 이들이 스포츠를 하는 포맷이 아닌 캠핑을 떠나는 등 은퇴 후 세컨드 라이프를 즐기는 컨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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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 스포츠 예능의 시초는 <골 때리는 그녀들>이다. 2021년 파일럿으로 시작하여 정규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진정성으로 입소문을 타며 여성 스포츠 예능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발레와 필라테스가 아닌, 축구와 농구, 야구 등 대다수의 스포츠는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골때녀>를 보는 여성들은 어렸을 적 남자애들이 운동장을 뛰어 다니며 공을 찰 때, 벤치에 걸터 앉아 박수를 쳤던 관람자로서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관람자였던 여성의 위치를 주인공으로 바꿔냈고, 출연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 기획의도에 부합하며 온 몸에 멍과 부상을 달고 살면서도 촬영 스케줄이 없을 때 개인 훈련에 매진하거나, 프로그램 내에서 축구 선수로서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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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때리는 그녀들>의 여성 스포츠 서사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김은진(2022)에 따르면, <골때녀> 속 여성 신체는 지금까지의 미디어 속 여성 신체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즉 이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객체로서가 아닌, 직접 스포츠를 뛰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뒤바뀌는 것이다. 그동안의 시청자들이 주로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 신체를 스포츠와 결부시켜 소비하고 또 시청해왔다면, <골 때리는 그녀들>은 “남성에 비해 작고 약한 여성 신체, 혹은 10~20대에 비해 노쇠하고 약한 중장년의 신체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뚱뚱한 여성, 마른 여성, 키가 너무 큰 여성, 키가 너무 작은 여성, 젊은 여성, 늙은 여성 모두 등장”하며, “성적인 매력이 아니라 축구 실력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평가”받는 변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여성 스포츠 예능의 흐름이 이렇게 바뀐 듯 했으나, 같은 시기 유행한 골프 예능은 기존의 한계를 답습했다. 당시 <골프왕> <세리머니클럽> <편먹고 공치리> 등 많은 골프 프로그램이 등장했지만,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출연자 139명 중 여성은 34명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또한 2019년 <씨름의 제왕>이 큰 인기를 끌자 2022년에는 <씨름의 여왕>이 제작 되었는데, 예능 최초 여성 씨름 예능이라는 의미는 있으나 남성 버전의 인기에 편승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2022년 방영한 <마녀 체력 농구부> 역시 최초의 여성 농구 예능이었지만, 감독 문경은과 코치 현주엽은 송은이에게 “매니저로 오신 것 같다”는 멘트를 날렸고, 멤버들도 농구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예능적으로만 접근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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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무쇠소녀단>과 <강철부대W>의 새로운 주체성


2023년 넷플릭스는 <피지컬100>과 <사이렌> 등 신개념 피지컬 서바이벌 예능을 두 편 내놓았다. <피지컬100>은 출연자에 남녀 구분을 두지 않고 모집했는가 하면, <사이렌>은 특전사 및 경찰, 유도 선수 등 다양한 직업의 여성이 출연했다. tvN <무쇠소녀단> 역시 3화에서 육상과 유도 선수, 60대 이상 고령 운동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이 출연하며 여성 스포츠 예능의 저변을 더욱 넓혔고, <강철부대W>는 아예 여성 군인으로만 구성된 시즌을 방영하며 한층 진일보한 여성 스포츠 예능을 내놓았다. 여성 캐릭터는 남성 스포츠 예능의 조력자로 만족하거나, 남성 예능의 아류작으로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욱 다양한 여성의 신체가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수용자에 영향을 미치고, 직접 운동하며 땀 흘리는 주체성을 획득한다. 이제 갓 막이 오른 여성 스포츠 예능은 최근 20년 동안의 과정보다, 앞으로의 흐름이 더욱 기대가 되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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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때리는 그녀들> 방영 이후 풋살을 등록하는 여성들이 증가했다고 한다. 한 기사에 따르면, 2021년 약 1500명 이였던 여자축구 선수는 2022년 약 4,300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고, 풋살화의 판매량도 1년 만에 300% 가까이 성장했다. 남성 선수를 응원하는 보조자, 혹은 객체로서가 아닌, 직접 살을 맞대며 운동에 뛰어드는 주체로서의 여성의 모습이 미디어에서 비춰진지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변화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포츠를 향유하는 여성 인구가 이미 많았음에도 젠더적 편견 때문에 그간 미디어가 안 다룬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다른 평론가는 어렸을 적 야구를 좋아했지만, 여성이 스포츠를 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당시의 사회적 인식 때문에 점점 멀어졌던 스스로의 일화를 공개하면서 여성 스포츠 예능이 자신처럼 어렸을 적 스포츠를 사랑했던 여성들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고도 이야기 한다.


종합해보면, 이미 여성들은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으나, TV 등 미디어에서 비춰지지 않았을 뿐이다. <무쇠소녀단>에서 설인아는 철인 3종을 참가하는 이유를 건강해지고 싶어서라고 밝혔고, 완주 후 인터뷰에서 이제는 목표를 달성해내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한국 예능계에는 더 많은 여성들이, 어렸을 적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던 운동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비춰줄 때가 되었다. <무쇠소녀단>이 그 물꼬를 텄으니, 이제는 더 많은 여성 스포츠 예능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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