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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Dec 05. 2023

고레에다 히로카즈 ‘괴물’

수면 위를 떠도는 괴물들의 헛발질

• 영화의 스포가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 이 영화는 최대한 아무 정보 없이 관람하기를 추천합니다


——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음악 작업이라고 해서

더 기다린 감이 없지 않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영화는 히로카즈가 언제나 그랬듯

위태로워 보이는 삶의 '수면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그리고 히로카즈의 영화가 아낌없이 일깨워 주는 그 방식대로, 숨도 쉴 수 없는 저 물속 깊은 바닥까지 우리를 인도한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통해

누가 진짜 ’괴물‘인가라는 질문을 시종일관 던진다.


사실 누가 진짜 ‘괴물’이냐라는 물음은 이제 많은 작품세계에서 클리쉐가 됐다. 봉준호의 '괴물'이 그러했고, 히로카즈의 전작 '어느 가족'도 괴물이 되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괴물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구조를 꼬집었다.


하지만 히로카즈는 영화 '괴물'에서 우리 모두가 괴물임을 호소한다.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 시종일관 수면 위로 올라와 뻐끔거리는 금붕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야기의 시작은 한국 교실의 세태를 작정하고 반영하기라도 한 듯, 학부모와 교사들의 대립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학부모의 편에 기울어 괴물이 되어가는 선생, 침묵하는 학교를 비춘다. 그 시선에 담긴 선생들은 오랜 기간 동안 지탱해 왔던 '학교'라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괴물이 되어간다. 선생의 비위를 감추고, 교장은 개인의 과오를 숨기고 연기한다.


그들에겐 '학교'라는 울타리와 '선생'이라는 타이틀은 잃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것이지만, 이미 아이들에게 선생이라는 존재는 걸스바에 다닌다는 근거 없는 소문의 놀림거리 대상이자 주인공 미나토의 터무니없는 거짓말의 대상일 뿐이다.

선생이란 존재는 이미 저 깊은 바닥의 생명을 다한 금붕어가 됐음에도 정작 본인들은 모른다. 오히려 더 저 수면 위에 남아있기 위해 발버둥 친다. 자신의 죄를 남편에게 뒤집어 씌운 교장이 남편의 면회장에서 파란 종이배를 접어 건넨 것은 그 욕망의 대변이다.


더 다양한 괴물들의 잔상도 마주한다

선생이, 학교라는 시스템이 그러했듯, 수면에 남아 있으려는 욕망은 고스란히 교실 안

아이들에게로도 전이되어 무리 속에서의 집단 따돌림으로 이어진다. 반 친구들은 약하고 엉뚱한 '요리'를 무리와 구별 짓고, 그 구분 짓기에 동의하지 않으려는 '미나토' 역시 무리에 남을 것인지, 같이 구분 지어질 것인지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린 괴물들이 '요리'를 괴롭힐 동안 그 주변에는 모두 물 위에 떠 있고 싶어 침묵하는 어린 금붕어들도 괴물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기자와 카메라는 벌어지는 일들을 쫓아

열심히 수면 위를 훑는다. 또 다른 괴물이다.



그 괴물들을 목도하며 우리는 히로카즈의 손에 이끌려 사건의 진실이 다른 곳에 있음을 '학습'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처럼 다양한 층위의 시선이 더해지며 사건의 진실에 한 층 한 층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건의 진실이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학부모는 틀렸고, 선생이 옳았고 류의 질문은 이미 너무 낮은 수준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결국 이 모든 사태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외로웠을 아이들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자신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어린 미나토와 요리를 둘러싼 어른들의 이른바 헛발질은 두 아이에 대한 잔상을 키워주기만 한다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다

부모가 힘들면 부모가 더 힘들까 봐 이야기 못하는 게 바로 아이다

우리가 수면 위에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며 힘들어할 때 이미 아이는 우리의

(어찌 보면) 추악한 꼴을 목격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미나토가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도 속마음을 쏟아내지 못하고 괴물이 되어 간 것은

미나토가 어리석어서도 아니고, 엄마가 사려 깊지 못한 것도 아니라, 그저 미나토가 수면 위에서 발버둥 치는 엄마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히로카즈의 수많은 괴물들처럼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저 수면 위에 머무르고자 한다.

우리의 아이들 마음 한 줄 읽지 못하면서 말이다.

(뭣이 중헌디..)


미나토와 요리가 두 손을 다시 맞잡은 순간

산사태로 모든 것은 무너져 내린다.

모든 것이 뒤덮였다


저 깊은 지하를 거쳐

미나토와 요리가 '다시 시작'을 외쳤던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짜 중요한 것이 머무는

너와 나의 저 깊은 마음들을 들여볼 때이다.


땡스투히로카즈.

땡스투사카모토.


#괴물 #고레에다히로카즈 #류이치사카모토 #영화평 #욘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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