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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킴 Dec 09. 2022

김영하, 『작별인사』 (下)

필멸의 생(生)


지능형 장난감

과학기술, 특히 '지능형' 기계에 대한 중요한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인간들이 참 무정한 게, 자기들은 어둡고 우울하면서 휴머노이드는 밝고 명랑하기를 바라거든요.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확고하면서 생각이 많은 휴머노이드 주세요' 하는 고객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어요."
_김영하, 『작별인사』

정말 그렇다. 영화관에 앉아 상영 시작 전 10분 동안 틀어주는 광고 속 AI 스피커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사용자와 대화를 나눈다고는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다. 사용자의 말에 호응하는 거지, 대화라고 할 수 없다. 그뿐인가, 당장 아이폰을 켜고 Siri에게 놀아달라고 하다가도 질리면 꺼버리지 않는가. 얼마 전 공개된 OpenAI의 ChatGPT, 새롭게 론칭한 스캐터랩의 이루다 등의 챗AI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런 언어 모델 기반의 챗AI는 분명 자아가 있다고 할 만한 애들은 아닌데, 우리가 이런 걸 자꾸 만드는 이유가 뭘까. 재미삼아? 이런 게 왜 재밌지? 그럼 누가 재밌지? 연구자가 재밌는 걸까, 사용자가 재밌는 걸까?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즐거움은 아닐까? 물론 ChatGPT 같은 모델들은 정보 검색 측면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건 맞지만, 진짜 제구실 하고 있는 건 맞나? 나 자연어처리 계속 공부해도 되나?! 머리 아프다. 그만 생각해야지 :-(

무튼, 중요한 것은 이걸 '왜' 만드냐는 것, '왜'를 생각할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연구든 개발이든 프로젝트 과정에서 그 이유와 목표/목적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 그런 걸 생각할 줄 아는 개발자·연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참 부족한 나도, 이미 뛰어난 전공자들도!

22.12.05 일월오봉도, 경복궁 근정전 | 끊임없이 상기하기

작별인사, 필멸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아직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바로는…

"탄생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였던(p.203) 주인공 철이, 선이와 민이. 우리 인간이 내세우는 보편적이고 폭력적인 기준에 따르면 셋 다 완전한 인간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기계로부터 구분될 수 있는 인간만의 무언가가 있을까?'에 대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면 그렇지 않음을 깨닫고 안도하게 된다. 봄꽃이 피는 것을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_김영하, 『작별인사』; 작가의말

인간임을 자각하는 게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우리가 필멸하는 존재라는 사실과 우리만의 개성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건 이제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이 아닌 세 주인공도 다 필멸하지 않았는가! 설령 내 몸의 전체가 다 기계 부품으로 대체되더라도 나에겐 유한성이 있기에 삶이라고 할 수 있고, 각자의 몸뚱아리로 그 유한한 시간 동안 개별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는 것, 작가는 바로 그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22.11.11 하나개해수욕장, 무의도 | 필멸하는 존재

여기까지 쓰면 그래도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서는 필멸하는 존재라는 게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와 필멸을 말하며 선이가 철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난 그렇게 믿어.
_김영하, 『작별인사』

이 문장을 읽고 참 여러 감정이 느껴졌다. 끝이 온다는 걸 두려워하는 게 곧 살아있음을 의미하고 아직은 이 모든 것이 완결되려면 멀었다고 느껴지니 — 당장은 무엇이든 끝이 왔다는 걸 모르겠으니까 — 정신이 번쩍 들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아무튼, 이 글은 끝이 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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