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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킴 Dec 10. 2022

인터뷰 시리즈: 초연하다,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초연하다(超然하다)
_「1」 【…에】 어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
_「2」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

*독후 감상을 바탕으로 작가와의 대화를 상상하여 쓴 글입니다. 매우 주관적이며, 의식의 흐름대로 맥락없이 흘러가는 대화체임을 밝힙니다.

*Spoiler Alert: 해당 글에서 다루는 도서에 대한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인터뷰 시리즈> 진행자입니다. 오늘은 좀 저명한 분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도서 『완벽한 아이』의 주인공이자 작가 모드 쥘리앵입니다. 물론 실제로 모시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번보다는 더 유익하고 풍요로운 시간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모드 씨,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네, 『완벽한 아이』의 작가이자 심리치료사 모드 쥘리앵입니다. 심리적 통제 및 정서적 지배를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원래는 법무사를 했었는데, 정신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시작해서 결국 어릴 적 꿈이었던 '머리 고치는 외과의사'의 길을 비슷하게나마 걸어가게 됐네요!

: … 우와. 책을 읽으면서 그 사실도 자연히 알게 되긴 했지만 막상 들으니까 저랑은 너무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요. 차차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하고… 정신의학이든 법학이든 공부하기가 만만찮았을 텐데요, 혹시 천재이신가요?

: (웃음) 그건 아니지만… 아주 어릴 때 이유도 모른 채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정신없이 하던 공부가 아니라 정말 원해서 하는 공부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해낼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실제로 덜 힘들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 말 나온 김에, 이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 중 분명 책을 읽지 않은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해 TL;DR 한번 해주시겠어요?

*TL;DR: Too Long; Didn't Read의 약자로, 온라인 게시물이나 신문 기사 따위를 요약할 때 종종 사용되는 기표이다. 한국어로는 '한줄요약' 정도.

: 이 책은 제 유년시절, 프리메이슨 고위 등급이었던 제 아버지가 "'인류를 일으켜 세우라는 부름'을 받"게 될 '초인'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제 어머니와 저를 '양육'하면서 어떻게 신체적·정서적으로 우리 둘을 — 주로 저를 — 학대했는지 풀어낸 책이에요. 철책으로 둘러싸인 집에 15년 정도 감금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생각과 감정들, 그 지옥같은 시공간에 비친 한 줄기 빛 등을 담아내고자 했어요.

: … 말줄임표를 벌써 너무 많이 사용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실례지만 이게 다 실제로 겪으신 일인가요?

: 유감스럽게도, 네, 맞아요.

: 아무리 작은 트라우마여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든데, 십수 년간 겪은 학대를 책 한 권에 담담히 풀어내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떤 의도로 책을 집필하게 되셨나요?

: 저 또한 제가 매우 극단적인 형태의 물리적·정신적 감금 및 지배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비록 저와 동일한 방식은 아니더라도, 또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저와 유사한 생각과 감정을 느낀, 느끼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자유로 나아가는 걸음을 내딛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책에서 저는 '식인귀', '포식자' 등의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그들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욕망을 내세우며 피지배자를 자신에게 종속적인 존재로 격하합니다. 요즘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가스라이팅'도 이런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그런 상황에 놓인 피지배자들은 지배자를 향한 증오와 경멸을 마음 속에 품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능동적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가기 어렵고, 이는 자기혐오로까지 이어져 끊임없이 악순환을 만듭니다. 갇힌 철창 밖의 삶이 있다,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포식자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세계, 믿음, 욕구, 욕망만이 중요하다. … 무엇보다 상대에게 자신과의 관계가 절대적 사랑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런 뒤 상대를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다루면서 서서히 소유하는 것이다.

: 작가님을 모셔두고 제 개인적인 감상을 밝히는 것이 쑥스럽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기도 했고, 동시에 어린 모드의 가련하면서도 강인한 생각들을 들여다보면서 독자로서, 그리고 유사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자로서 저도 무척이나 아팠어요. 몇 가지 구절을 조금 인용하고 싶은데요,

아버지의 입에서 진지한 칭찬이 나오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p.54)

마치 "내가 지켜보고 있어. 내 눈은 못 속여"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빵을 삼키지 못하고, 마치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듯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런데, 뭘 잘못했지? (p.99)

다른 집에서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고 춥지 않도록 이불을 잘 덮어준다는 얘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혼자다.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의 품에 안기고 싶다. (p.118)

나처럼 잘못 선택된 아이에게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아버지가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도 슬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그 엄청난 공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헐떡이게 만드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p.240)

: 어린아이의 어투로 솔직하게 드러난 감정이기에 더욱 고통스럽고 가련하게 느껴졌어요. 특별히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내신 이유가 있을까요?

: 음, 책을 읽어보셨다면 아실 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웬만한 문장들은 모두 현재형으로 적었어요. 지난날 느꼈던 감정을 가감없이 적고 싶었고, 그러려면 이미 과거에서 한 걸음 벗어난 제가 사건을 서술하는 것보다 어린 제가 그 사건을 바라보는 게 더 진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쓰는 저도, 읽는 독자분들도 큰 고통을 느꼈지만… 어쩌겠어요. 감정을 검열하는 것보다 전부 드러내는 게 글을 쓴 취지에 훨씬 부합하는 걸요!

: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위에 제가 인용한 구절들이 극단적 학대를 당하는 아이뿐만 아니라 그저 엄한 가정교육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상황에 따라 한 번쯤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라고 봐요. 특히 한국에서는 'K-장녀'라고 해서, 첫째라는 이유로 온갖 프레임과 규율에 아이를 가두고 마치 이것이 특권이니 그에 응당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하는 가정도 있거든요.

: 동감해요. 저 또한 초인을 만들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의식을 가진 아버지가 만든 온갖 부당한 규율과 규칙에 얽매여 살았어요. 하루 일과표는 잡역과 공부를 포함해 어린아이가 소화한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빡빡했고, 심지어는 요강을 처리하게 하는 등 아버지의 잔시중을 들어야 하는, 거의 노예 수준의 일을 해야했어요. 그게 초인이 되기 위한 훈련이자 특권이라고 저를 세뇌시켰죠. 당시에 저는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힘없는 어린아이였고, 그렇기에 불복종 시 버림받을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어요. 그럼에도 제가 자유를 찾을 수 있었던 건, 그런 부당한 순간에도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았고 바깥의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정원에 있던 여러 동물들과 음악 선생님 두 분의 공이 컸죠.


: 서두에 "식인귀의 첫 희생자였던 나의 어머니에게,"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와도 관계가 좋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요.

: 네. 오히려 좋았다면 그것도 이상하겠죠.

: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 어머니는 오로지 저의 탄생을 위해 아버지에게 선택되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아버지의 그 원대한 '초인 만들기'를 위해서는 아버지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어머니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의 가족들과 떨어져 —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 아버지에게 양육되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자" 아버지에게 저를 낳아주었고요. 이게 현대 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이라고 보시나요?

: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어요. 소설이라 하더라도, 작가의 발상에 충격을 받을 것 같아요.

: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저예요. 아버지에게 있어 — 어머니 또한 어릴 때부터 아버지만 보고 자라왔으니까 — 어머니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저일 뿐이었고, 혼자서 저를 교육해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린 어머니를 기숙학교와 대학에 보낸 것이며, 저의 양육을 위해 우리 가족은 십수 년간 철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어요.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희생양이고, 저를 낳았음에도 저를 그토록 경멸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 어머니는 "아버지의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니까요.

: 그렇죠. 어머니는 제가 집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저를 동맹군이 아닌 멸시의 대상으로 여겼고 제 앞에서도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 남편인데도! — 인정받으려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어요. 어머니도 안타까운 인생을 사셨던 거죠. 그럼에도 부모가, 특히 모친이 자녀로 하여금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여러 형태의 사랑을 서술하고 있는데, 모성애에 대해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절대적인 보호와 책임을 도맡고 어린아이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갖게 한다고 설명해요. 제 어머니는 정반대의 역할을 한 셈이죠.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다면 아이는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고, 부모를 보호자로 생각하지 못하고 인정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돼요.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리면서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마다 자기혐오에 빠지고, 그렇게 자존감이 낮아지는 거죠. 앞서 인용해주신 구절에 그런 저의 어릴 적 정서가 드러났으면 했어요.


: 자유에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어요.

: 그래요?

: 네. 실례지만, 그게 누군가에겐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릴 수 있거든요.

: 이해해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노래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저도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내내 공황과 정신질환에 시달릴 만큼 힘겨운 시간을 보냈어요. 나오기까지는 꼬박 15년이 걸렸고요. 운이라면 운일 수 있겠지만, 저는 동물들과 교감한 것이 제게 큰 위로가 되었고 데콩브 선생님과 몰랭 선생님을 통해 바깥 세상을 경험한 것도 아주 큰 동력이 되었어요.

: 그러고 보니 책에 동물들이 아주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해요. 특별한 감사를 보낸다고 덧붙이셨어요.

: 맞아요. 개 린다부터 조랑말 페리소까지 참 많은 동물들을 만났어요. 이 친구들도 끔찍한 학대를 당했는데, 저에게만은 늘 한결같이 대했고 항상 저를 반겼던 기억이 나요. 모두가 나를 억압하는 와중에 나를 반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큰 위로이자 숨쉴 틈이 되었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저도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힐 때면 교내 기숙사 터줏대감이었던 고양이를 그렇게 찾았나봐요. 걔는 늘 변함없이 거기 있거든요. 뜬금없지만, 저는 언젠가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생각해요.

: 대단한 망상을 하고 계시네요!

: (웃음) 그건 그렇고, 책도 엄청 많이 읽으셨던데요!

: 주로 모험을 떠나는 책들을 즐겨 읽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추천사를 써준 김영하 작가의 저서인 『작별인사』의 주인공 철이도 저처럼 휴먼매터스랩에 갇혀 지내면서 온갖 책들을 읽는데, 주로 모험을 다루는 소설책을 많이 읽더라고요. 아무래도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 있다보면 자연스레 그를 향한 욕망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덕분에 자유에의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어요.

: … 음 몇 마디 더 보태자면, 데콩브 선생님과 몰랭 선생님을 통해 음악에 열정을 가지게 된 것도 제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특히 몰랭 선생님과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재즈밴드와 교류할 수 있게 된 게 너무나도 큰 힘이 되었어요.

: 결국 어린 모드는 아주 혼자가 아니었네요. 스스로 그렇게 위로를 주는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게 대견하고 감동적이에요.

: 맞아요. 현실을 잠시 잊고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와 한결같이 따뜻한 무언가를 찾아낸 게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죠.


: 이런, 제가 책을 너무 감명깊게 읽었나봐요. 인터뷰가 너무 길어졌어요.

: 그러게요. 좀 피곤한 것 같기도 …

: 빨리 보내드릴게요. 스스로를 검열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내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줘서 감사하고, 그 너덜너덜한 상처를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모두를 위로해주셔서 감사해요. 책 너무 잘 읽었습니다.

: ;-)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쓴 글임을 밝힌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샀던 책인데, 이토록 고통스럽고 읽기 힘든 책은 처음이었다. 외과의사가 집도하는 장면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고통이 아니었다. 지난날 내가 했던 생각과 느꼈던 감정이 내 눈앞에 활자로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게, 그리고 그걸 마주하는 게 너무나도 아팠다. 몇 번이나 책을 덮었는지 모른다. 오로지 주인공이자 작가 모드가 어떻게 자유를 얻었는지를 보고싶어서 끝까지 달린 것 같다. 바로 그런 마음가짐, 끝엔 자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열쇠라는 걸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가볍게 읽으라고는 못하겠고, 제대로 각오하고 펼쳐보길 바란다.

참고

모드 쥘리앵(윤진 역). 『완벽한 아이』. 복복서가. 2020.

에리히 프롬(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vETYXX8XotY&t=4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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