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킴 Nov 08. 2022

11월의 예술: 무용극 호동

생애 첫 무용극

『』

극_ 작가의 개입이 없이 등장인물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

무용극_ 극적인 표현 수단으로 춤을 주로 이용하는 연극.


나는 예술 작품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이니, 영화니, 사진이니 하는 것들을 자꾸 보다보니 점점 예술에도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지인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보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그러던 차에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가 준 국립무용단의 <2022 무용극 호동>은, 내 인생 첫 무용 공연이자 첫 무용극이었다. 텍스트와 춤을 연결하는 어떤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던 친구의 멋진 포부에 비하면 보잘것없었지만, 무용극을 보러 해오름극장의 C구역 6열에 앉던 그 순간 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공연 내내 그들이 뭘 표현하고 싶었을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자!

당연히 목표는 이뤘고, 심지어는 공연에 완전히 압도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인상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푼다.

체계적이고 잘 짜여진 관람평을 쓰기보다는 그냥 흐름에 맡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 게시물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모두 국립극장 트위터 계정입니다.


첫 장면은 마치 호동의 악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무대를 헤집으며 뛰어다니고, 위로, 위로 어딘가를 힘겹게 오르지만 결국 제자리걸음하는 호동은 내가 알던 영웅호걸의 고구려왕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적이고 사실적이었다. '장차 영웅이 될 상', '큰일을 해낼 상'이라는 가면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내 주변 누군가, 아니 어쩌면 나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그 처절한 몸짓이 너무도 와닿았다. 그것은 어떤 영웅만이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고통과 공포라기보다는, 정말 책임과 무게에 짓눌린 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 무대에서만큼은, 호동은 호동왕자가 아닌 그저 인간 호동이었다.

악몽 속에서의 처절한 몸부림

이 무용극에 나를 데려온 친구가, '무용 공연이 처음이라면 서사가 있는 무용극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살짝 일러주었다. 친구의 배려 덕에, 그리고 우연찮게도 몇 달 전 웹툰 『정년이』를 통해 호동왕자-낙랑공주의 서사를 복습(?)했기에 작품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수월했다. 다만, 『정년이』에서 등장한 호동왕자-낙랑공주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였으며 연기, 창, 무용 등 여성국극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수단이자 '왕자'의 특별한 지위와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된 소재였기에 웹툰에서 그 서사 자체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2022 무용극 호동>에서는 알려진 이야기 뒷면에 자리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호동의 내면을 조명하고 있다. 따라서 호동왕자 낙랑공주의 사랑이 아닌, 호동 낙랑공주와의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두 사람의 사랑놀음을 표현하는 동안 호동을 연기하는 무용수와 낙랑공주를 연기하는 무용수가 서로를 꼭 붙들고 있었지만,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거나 몸 전신을 보여주는 것은 주로 호동 쪽이 많았다. 또, 이 서사가 원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맞나, 싶을 만큼 둘의 사랑은 — 내 체감상 — 짧게 다루어졌다. 낙랑공주가 어떻게 호동의 삶에 들어왔는지, 그와의 무엇이 호동을 고뇌하게 만들었는지, 낙랑공주는 호동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호동의 시선에서 풀어간다는 인상을 주었다. 덕분에 시대극 느낌이 거의 나지 않았다. 무용극 안내 책자에 적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 펼쳐질 현재의 호동, 앞으로의 호동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멋진 대답이다.

호동의 낙랑공주와의 사랑

내 인맥이 그리 넓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알고 지내는 또래 중에는 그래도 영화를 꽤 본 편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영화든 더 이상 그 서사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아주 새로운 서사를 가진 영화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영화를 왜 보냐, 그건 영화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감독의 연출, 각종 시각효과, 그리고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의 연기 등이 종합적으로 담긴 영상예술이기 때문에 그 요소를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무용극도 관람하면서 그런 요소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무용수의 동작은 물론 조명, 동선, 배경음악의 변화까지 참 알찬 무용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립극장이고 국립무용단이라 그런지 자본의 힘도 엄청나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기억나는 대목은 낙랑공주에게로 가려는 호동이 창살같은 빨간 조명에 가로막혀 자꾸만 나동그라지는 씬. 이 무용극의 모든 요소를 가감없이 다 드러내는 대목이지 않았나 싶다.

가깝고도 먼

고구려 대무신왕 집권기라는 분명한 배경이 있지만 주제가 그 시대에 한정적이지 않고 현대인들도 십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게다가 화려한 조명 연출과 백의로 통일된 무대의상 및 다양한 무대 요소를 활용했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시대극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용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한국 무용의 고운 춤선과 웅장하면서도 전통 느낌이 묻어난 배경음악이 잘 어우러져 멋진 무용극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극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하며 걸치고 있던 옷을 내던지는 퍼포먼스도 인상깊었다. 훌훌 벗어던지라는 뜻일까?

훠이—

무용극을 소개해주고 이런 귀중한 기회를 나와 함께해준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12월에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공연이 국립극장에서 열린다는데, 시간 내서 보러갈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11월의 도서: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