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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진 Jan 05. 2025

게으름뱅이의 새해결심 D+5일

New Year's Resolution


2025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5일째, "새해 결심(New Year's Resolution)"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지도 벌써 5일째. 그래서 새해결심 D+5일.  계획성이라고는 없는 제 습성이 어디 가겠냐마는 늦게나마 노트북을 켜고 책상에 앉습니다.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저의 새해 결심 단골 메뉴는 "부지런하게, 계획성 있게 살자"입니다. 사실, 저는 해야만 하는 일을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는 노회한 "procrastinator(질질 끄는 사람)"입니다. 나름의 변명도 가지고 있지요. 시간이 촉박해야만 일의 효율이 오른다고요. 


나름 새가슴이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제를 일으킨 적은 별로 없지만, 이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낭패를 볼 뻔한 일들이 여러 번 있었지요. 그때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 이 미루는 습관을 꼭 고치고야 말리라" 결심을 하곤 합니다.




"새해의 결심"이라고 말할 때, 영어로는 "decision"도 "determination"도 아닌 "resolution"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라틴어에 근원을 두고 있는 이 단어는 "다시"를 뜻하는 "re~"라는 접두어에, "풀다, 느슨하게 하다"를 뜻하는 "solvere"라는 어근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resolvere(풀다, 분해하다)"라는 라틴어 동사에서 유래한 말이지요. 


주로 "복잡하고 엉킨 추상적인 문제- 마치 수학 문제와 같은 -들을 단순하고 간략하게 풀어낸다"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처음에는 "solution"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해결, 풀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입니다. "결심, 특정 목적에 대한 결단"의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야였지요. 


아, 15세기 중엽 무렵 "resolution"은 "frame of mind(정신의 틀)"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네요. 주로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정신적 견고함을 뜻했던 이때의 의미도 중요한 일에 대한 결단력을 의미하게 된 현재의 의미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solvere"의 어원을 가지는 많은 영어단어들은 주로 "녹이다, 분해하다, 해결하다"의 의미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풀다, 해결책"의 "solve, solution, " "용해가능한" "용해성"을 뜻하는 "soluble" "solubility, " "용매"를 뜻하는 "solvent, " "녹이다"를 뜻하는 "dissolve"에 이르기까지요. 


위의 단어들과 비슷하게 주로 "해결, 해결책"의 의미를 갖던 "resolution"이라는 단어가 "결심"이라는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된 것은 생각해 볼수록 희한합니다. "무언가를 풀어내는 것"과 "무언가를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이라는 서로 상반된 두 이미지가 한 단어 안에 공존하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어찌 보면 모순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 두 의미의 공존은 조금 방향을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복잡한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세 살 때 형성되어 여든까지 간다던 습관의 문제를 포함해서요.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래서 "resolution"이 "결심"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또한 이는 한 번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자꾸자꾸(re) 풀어가다(solvere) 보면 그 해결이 가능하다는 뜻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새해에 우리가 하는 결심은 그래서 돌에 새기듯 굳건하게 결심하여 완벽하게 지켜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이런 식의 노력은 자주 실패와 이른 포기에 도달하게 하지요-, 자꾸 그리고 자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작심삼일"도 삼일마다 하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처럼요.


끝으로 "resolution"이라는 단어에는 사실 학생들이 잘 모르는 제3의 뜻이 있습니다. "해상도"가 바로 그것이지요. "어떤 물체의 구성요소들을 구별 가능하게 분리해 보여주는 광학적 기구의 효능"을 뜻하는 것이지요. 스크린의 해상도가 높을수록 이미지가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의 문제점들, 우리의 나쁜 습관들도 높은 해상도의 화면을 통해 보는 것처럼 구석구석 선명히 비춰보고 자꾸자꾸 해결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것. 그것이 새해의 결심, "New Year's Resolution"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 게으름뱅이의 장황했던 변명은 여기서 그만하고, 지금부터 적어도 삼 일간 지켜야 할 "New Year's Resolution D+5"를 적으러 가봐야겠습니다. 다음 결심은 "New Year's Resolution D+8"이 되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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