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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피운 꽃도 똑같이 향기롭다

Robert Kraus의 그림책- Leo, the Late Bloomer

by 정수진


조기 교육에 열성적인 한국인의 모습은 조선시대라고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 살에 천자문을 떼고, 사서삼경을 줄줄 외웠다는 것이 클리셰처럼 훌륭한 학자의 기본 자질로 등장하며, 다섯 살짜리가 시를 지어 군왕을 놀라게 하고(김시습이 다섯 살 때 삼각산에 관한 시를 지어 세종을 감탄케 했다고 하지요) 일곱 살 때 논어를 읽고 그와 흡사한 문장을 지어낼 수 있었던 것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조기교육 수준이었지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사대부의 선비들이 이렇게 빠르게 글을 깨치고 공부에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대기만성( 大器晩成 )"이라는 표현도 생긴 것이겠지요. "큰 그릇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다"는 뜻의 이 말은 큰 일을 할 사람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므로 그 성공에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대기만성형 학자로 가장 많이 알려진 문인인 김득신은 어렸을 때 머리가 나빠 늘 우둔하다고 놀림을 받았으나 피나는 노력을 통해 39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59세 늦은 나이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백이전”을 11만 3천 번 읽고, 1만 번 이상 읽은 책도 36권이 넘는다는 대단한 다독가인 김득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영어에는 “대기만성”과 비슷한 표현으로 "late bloom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늦게 꽃피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네 많은 가정에서 그러하듯이 여기 백수의 왕이라는 호랑이 가족에게도 ”late boomer”가 한 명 있습니다.




꼬마 호랑이 Leo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대로 읽을 줄도, 쓸 줄도, 그릴 줄도, 밥을 깔끔하게 먹을 줄도 모르지요. 심지어 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것이었어요.


Leo의 아빠는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Leo의 엄마는 천하태평이네요. 그녀는 말해요. Leo는 그저 늦게 꽃피는 아이일 뿐이에요...


"Better late than never, " thought Leo's father.
"늦는 게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 Leo의 아빠는 생각했어요.
Every day, Leo's father watched him for signs of blooming.
매일, Leo의 아빠는 그가 꽃피려는 신호를 잡아내기 위해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지켜보아도 Leo는 꽃피려는 신호를 보내지 않아요. 조바심을 내는 아빠에게 엄마는 단호히 말하죠.


"Patience" 인내심을 가져요.
"A watched bloomer doesn't bloom."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꽃이 피지 않는답니다.



Leo의 아빠는 이제 지켜보지 않습니다(아니, 사실은 지켜보지 않는 척을 하는 것이죠). 그래도 Leo는 꽃을 피우지 않네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Leo가 꽃을 피웁니다. Leo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밥도 깔끔하게 먹게 돼요.


Then one day, 그러던 어느 날,
in his own good time, 그 만의 좋은 시간에
Leo bloomed. Leo는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가 조금만 늦되는 낌새를 보여도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연령별 발달 기준과 끊임없이 비교되고, 조금만 자라면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나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학습을 강요당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이런 관행을 무시하기에는 우리 부모들은 귀가 너무 얇고, 주변에는 걸출한 비교 대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태평하게 먹으려고 해도, 자꾸 아이의 발전을 감시하게 되는걸요. 토끼를 사냥하면서도 눈으로는 Leo의 행적만을 뒤쫓는 아빠 호랑이의 마음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런 동병상련 때문일 거예요.


leo the late bloomer 2 -tistory.jpg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인가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아이가 잘 되길 바라고, 그래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조언하고, 그들의 앞 길을 편편하게 쓸고, 닦아주죠. 심지어 해야 할 공부와 취미생활, 사귈 친구까지 간섭하려 합니다. 그러다, 아이가 우리의 말을 안 듣고,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면(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하죠. 우리 애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직접 찍어 먹어봐야 아는 타입이야.


이 원규 시인의 "속도"라는 시가 있습니다. 언제나 빨리 목적을 달성하기만을 재촉하는 이 사회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대회가 있다면, 어떨까요?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흙을 그러잡고, 서서히 세포 하나, 하나를 키워내는 지난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속도로요.



왜 백 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
만약 느티나무가 출전한다면
출발선에 슬슬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가
한 오백 년 뒤 저의 푸른 그림자로
아예 골인 지점을 지워버릴 것이다

- 이 원규, "속도"




다만 차이가 있다면, 느티나무는 자신이 제 속도로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부모들도 그것을 모르지요. 그래서 가끔 아이들은 절망합니다. 어쩌면, 아이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우리가, 그 절망의 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Leo 엄마의 말이 맞는걸요. 우리가 자꾸 신경 쓰고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모를 리가 없고, 그럼 오히려 그 지켜봄이 그들을 위축시키게 되겠죠. 착한 아이일수록 더할 거예요. 부모를 기쁘게 하고 싶을 테니까요.


하는 일마다 초스피드로 성공해 나가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시간을 들여 한 걸음 한걸음 공들여 나아가야 하는 아이도 있는 법이죠.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희 아이도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서 뭔가를 해내는 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해내고 나면, 결코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법은 없었지요. 서서히 굳건하게 이루어낸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또 빨리 달리기 시합에 나선 아이를 보면서, 왜 더 빨리 나가지 못하는지 안달복달하는 이 엄마는 참 배움이 느린 엄마입니다.


결국에는 거대한 느티나무로 자라나게 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맘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기다려야겠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 내서 이렇게 외치는 것요. Leo가 늦게 꽃을 피운 끝에 처음으로 외친 말처럼요.


I made it! 제가 해냈어요.




원어민이 읽어주는 오디오북 https://www.youtube.com/watch?v=eUsrRgFb0as

권장연령 3~6세 / Lexile 지수 120L (Grade K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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