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모든 제품 및 사물이 색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저마다 고유의 색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색채가 상품 간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는 핵심 요소라는 점을 방증한다.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특정 메시지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상품에 색을 입힌다. 일부 기업들은 색을 통한 의미 전달이 비단 특정 제품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 전체로 확장될 수 있도록 기업 전반을 아우르는 색채를 선정해 활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색채는 브랜딩을 보조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간주된다. 색채를 효과적인 스토리텔링 방안으로 활용해 사업을 영위 중인 2개의 기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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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기업들을 대상으로 컬러 컨설팅 사업을 진행하는 색상 전문 연구개발 기업 '팬톤'의 사례가 있다. 팬톤은 세계 최초로 색채를 표준화한 기업이다. 이들은 팬톤 컬러매칭시스템(PMS)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섬유, 플라스틱, 페인즈, 디스플레이 화면 등 어느 매체에서 색을 사용하든 동일한 색상이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즉, 팬톤은 색채가 관여된 모든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 간 의사소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셈이다. '색'을 상업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팬톤 컬러를 활용함으로써 결과물의 색채를 보장받을 수 있었기에 팬톤 컬러는 사실상 필수재로써의 위치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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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분야의 권위자로서 팬톤은 단순히 색채를 확립하는 것에서 나아가 색채에 서사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팬톤은 각 브랜드를 위한 커스텀 컬러 컨설팅을 통해 기업들이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는 색채를 효과적으로 브랜딩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자문하는 B2B 서비스를 제공한다. 팬톤이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새롭게 색을 창조하는 사례도 있다. 가령, 유니버설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한 '미니언 옐로'는 미니언 캐릭터들을 본떠 생동감과 희망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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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팬톤은 '올해의 색'을 선정함으로써 색에 서사를 부여하기도 한다. 상술된 커스텀 컬러 컨설팅과는 달리 이는 팬톤이 독자적으로 선정하는 하나의 색채이다. 팬톤은 매년 12월에 선정 이유 및 메시지와 함께 올해의 색을 공개한다. 가령, 팬톤은 2021년의 컬러로 얼티밋 그레이와 바이브런트 옐로를 선정하며 회복과 희망이라는 의미를 내걸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망가진 일상 속에서 희망을 주고 싶다는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러한 색과 서사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패션, 섬유, 인테리어, 뷰티 등의 업계는 올해의 색을 기반으로 한 상품을 내놓게 되고, 이는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되며 결국 올해의 색으로써 정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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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성공한 또 한 곳의 기업은 사진관 업체인 '시현하다 레코더즈'이다. 이곳은 '팬톤'과는 달리 B2C 모델에서 색을 통한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시현하다 레코더즈에서는 의뢰자가 미리 제작된 형용사 카드나 컬러북을 통해 개인에게 맞는 색을 찾아간다. 이후 촬영자와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보정 작업과 더불어 앞서 선정한 색을 기반으로 사진이 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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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증명사진 업체들이 단순히 실물을 담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현하다에서는 '색채'라는 요소를 통해 사진에 실물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지닌 서사'를 함께 담아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로써, 시현하다는 증명사진 촬영 위주의 사진관 시장에서 벗어나 개인을 위한 맞춤 사진 촬영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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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그 자체로써는 가치를 띠고 있지 않은 객체일지언정, 이에 서사를 부여하는 순간 색채는 특정 브랜드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가교가 된다. 결국 컬러마케팅의 요점은 소비자에게 얼마나 더 그럴듯하게 색에 부여된 내러티브를 설득시키고 각인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