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라는 단어는 늘 멀리 있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고,
기사 속 숫자였고,
직장 생활의 어딘가에서
‘언젠가는 오겠지’ 정도로만
생각하던 일 중 하나였다.
나는 회의 일정과 예산표,
다음 분기의 전략을 고민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퇴직은 현실이 아니라
배경소음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 배경소음 같던 단어가
너무 조용하게 나에게 도착했다.
마치 오랫동안 잡고 있던
고무줄이 손끝에서 살짝 튕기듯,
삶의 한 축이 생각보다 쉽게 끊겨 나갔다.
그날 아침,
나는 평소와 똑같은
눈 덮인 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오늘 아침이
어제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짝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출근을 하였다.”
마지막 출근길이었지만,
풍경은 전날과 다르지 않음에
너무도 신기하다.
다른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속을 지나가는 내 마음이었다.
1. 월요일 오전 7시, 그 고요함의 충격
그날의 아침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24년 동안 반복하던
출근 준비가 사라진 시간.
정확히 7시,
습관처럼 가방을 챙기려다 멈춰 섰다.
평소였다면,
일주일 첫 일정을
머릿속으로 다시 짚으며
회사를 향해 움직이던 시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가야 할 곳이 사라졌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고,
나의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도 없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러한 상황을
’ 일상생활의 급격한 붕괴’**라고
설명한다(한국노동연구원, 2020).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매일의 일정 위에
정체성을 얹어놓는다.
그래서 일정이 사라지면,
정체성도 덩달아 흔들린다.
사람들은 말한다.
“퇴직하면 얼마나 좋아요.
쉬면 되잖아요.”
하지만
영국 경제연구소(IEA)의
조사에 따르면, 은퇴 직후
60% 이상의 은퇴자가
‘스트레스·불안 증가를 경험’한다고
보고했다(IEA,2013).
나 역시 그 통계 숫자 속의 누군가가 되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퇴직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멈춘 시간’이라는 것을.
2. 이름이 사라진 자리의 정적
며칠이 지나자
더 깊은 낯섦이 찾아왔다.
24년 동안 나를 불러주던
호칭이 사라진 것이다.
“상무님”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수많은 역할과 책임이
한순간에 자리를 잃었다.
이름 석 자만 남는다는 것이
이토록 허전한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9)의
연구에 따르면
퇴직자의 가장 큰 상실감은
연봉이나 권한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호칭과
사회적 역할이 단절되는 데서 오는
정체성 상실”**이라고 분석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사회적 관계 연구).
나는 그 말의 정확함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사람들은 회사에서의 직책과 역할을
자신의 ‘이름’처럼 여긴다.
그래서 호칭이 떨어져 나가면,
한 겹의 피부가 벗겨지는 것처럼 아프다.
나에게도 그 감각이 있었다.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
직함이 없다는 사실이 어색했고,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멈칫거렸다.
“저는… 예전에 ○○그룹에서 일했었고….”
과거형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깊은 적막을 남겼다.
떠날 무렵의 내 마음은 이런 문장에 담겨 있었다.
”회사에서 뽑은
첫 번째 신입 사원이었던
그 앳된 묘목이
어느새 임원이라는
고목이 되어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지내온 시간들…”
시간이 쌓인 만큼,
남겨지는 것은 공허함도 깊었다.
3. 자유라는 이름의 불안
사실 나는 자유를 기다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퇴직 후 여행을 다니고,
책을 읽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보리라는
상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막상 자유가 눈앞에 놓이자
그 자유는 공기주머니처럼
가벼웠고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써야 할지,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리학자 데시(Edward L. Deci)와 라이언
(Richard M. Ryan)은
행복의 핵심 조건을 ‘자율성’이라고 했다.
(Self-Determination Theory, Deci & Ryan,
1985 / 2000, American Psychologist)
하지만 그 자율성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자유는
방향을 잃은 배와 같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만 더 커진다.
퇴직은 준비된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길을 잃은 듯한 공백의 시간을 만든다.
나는 그 공백 속에 있었다.
4. 정체성의 빈칸을 마주하다
퇴직은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사건이 아니라,
정체성이 비워지는 과정이다.
HRS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
(Moen, Kim & Hofmeister, 2001)는
퇴직 후 삶이 크게 달라지는 이유를
“정체성 재구성 과정에서 오는
심리적 충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생의 절반을
‘회사 사람’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퇴직은 존재의 기반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 된다.
나도 그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 시절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던 장면들도 떠올렸다.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가슴 아파했던 지난 날들”.
늘 누군가와 전화로 일정을 조율하고,
프로젝트를 이끌고,
보고서를 검토하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무음(無音)으로 변했다.
시간이 쌓인 만큼,
남겨지는 것은 공허함도 깊었다.
침묵은 때로는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처음에는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5. 다시 시작되는 질문들
퇴직 후 나는 원치 않던 질문들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뭐 하실 거예요?”
“다시 일하실 건가요?”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가족, 지인, 주변의 관계망에서
던지는 그 질문들은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멈춤’이
잘못된 시간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내가 앞으로 나아갈 2막의 초입에 놓인
현실적인 신호이기도 했다.
나는 어느 날 조용히 서재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이름으로 다시 불리고 싶은가.”
그 질문들은 무겁고 때로는 아프지만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가게 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6. 무너짐에서 설계로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나는 깨달았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초고(初稿)’였다.
미완성의 첫 페이지,
잘못 쓰면 지우고 다시 써야 하는 페이지.
그 초고를 깔끔하게 쓰기 위해
나는 다시 책을 펼쳤고,
미뤄두었던 공부를 시작했고,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적기 시작했다.
미국의 HRS 데이터를 포함한
최근 연구들(O. Grünwald 등, 2022)은
은퇴 이후 삶에서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변화하며,
특히 자기계발(self-development)이나
사회적 기여(generativity)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는 은퇴가 단순히
직업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다시 설계하려는 의지”**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문장을 발견한 순간,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멈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서막을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7. 자유는 다시 쓰는 이름이다
퇴직은 나에게서 직책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빈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을 주인공으로 놓아보게 되었다.
삶의 방향은 재정비되었고,
하루의 리듬은 다시 생겨났다.
직함을 잃는 대신,
방향을 하나 얻었다.
퇴직은 계획되지 않았지만,
이 자유는 이제 내가 설계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이 책의 첫 문장은
결국 이렇게 귀결된다.
세상은 아직 내 몫으로 남아있는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