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갈 곳이 없다는 사실

by 윙크살짝


퇴직 후 맞이한 첫 월요일.

나는 평소와 똑같이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24년 동안 몸에 새겨진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알람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런데도 나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늘 준비하던 출근길을 상상하면서도
오늘은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해 가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방 쪽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정확히 7시 10분.

평소라면

이미 차에 올라타 출근길에 붐비는
도로 한가운데에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가야 할 곳이 사라진 아침.

그 문장은 머릿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내려앉았다.


MIT AgeLab 또한 은퇴 직후 가장 큰 변화로
**‘일상의 구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loss of daily structure)’**을

주요 충격 요인으로 제시한다(MIT AgeLab, 2021).”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패널조사(2020)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퇴직 직후 사람들이 겪는 첫 번째 충격을
**‘일상 리듬의 붕괴’**라고 설명한다

(한국노동연구원, 2020)


사람은

일정이라는

구조 위에서 하루를 설계한다.

그 구조가 사라지면

정체성도 함께 흔들린다는 것이다.

나는 그 설명을 이론으로만 읽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창틀에 기대 서 있던 나 자신을 보며

이 문장의 뜻이 정확히 이해되었다.


그 시간,

나는 한참을 주방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커피를 내렸지만 맛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조용했다.

아무 일정도,

아무 미팅도,

아무 보고도 없었다.

“이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은 그날부터

낯선 그림자처럼 내 곁에 머물렀다.


출근이 사라진 월요일은

일이 없어진 월요일이 아니라

삶의 기준점 자체가 사라지는 월요일이었다.


평생 회사라는 구조 속에서

움직여온 사람에게
”이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라

생활의 기반을 이뤄온
축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이다.


미국의 HRS와 유럽의 SHARE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여러 연구(Wang, 2007; Bonsang & Klein, 2012)는
퇴직 직후 6~12개월 동안

삶의 만족도가 평균 10~20% 감소한다고 보고한다.


그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삶을 떠받치던 구조가

무너질 때 사람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숫자였다.


다시 말해, 소득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정체성을 규정하던 역할이

사라진 충격’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나는 그 수치를 그날 오전 9시에 정확히 실감했다.


그 시간에 내가 있어야 할 회의실도,

내 목소리를 기다리는 팀도,

내 결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더는 없었다.


같은 시간대,
회사에서는

아마 주간 회의가 막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회의록을 정리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화면을 띄워 실적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의 공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 공기가 더 이상

나와 상관없다는 사실이

가장 묘하게 다가왔다.


퇴직은

회사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아니라

시간에서 빠져나오는 일에 가깝다.

사람은 자신이 차지하던 자리를 잃으면

마치 한 칸 빠진 퍼즐 조각처럼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날의 나는 정확히 그런 조각이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속에서는

어색한 허공이 점점 넓어져갔다.

“이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그 질문이 내내 맴돌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질문이야말로

퇴직 후

삶의 출발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지나가야 하는

문턱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시간.

아무 역할도 부여되지 않는 시간.


그 시간 안에 멈춰 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바로 그 멈춤이

내 삶을 다시 그릴 수 있도록

나를 처음으로 멈춰 세운 순간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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