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불리지 않는 이름'의 쓸쓸함

by 윙크살짝

퇴직 후 며칠이 지난 어느 저녁,

나는 문득 휴대전화의 알림이

거의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들의 메시지가 아니라,

회사에서 오고 가던 수많은 알림들

—보고 요청, 회의 공지,
결재 알림—이 사라진 것이다.


그 순간,

“상무님”이라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 1. 호칭이 사라졌다는 사실

출근하지 않는 첫 월요일은

‘일이 없는 월요일’이 아니라 ‘
부르지 않는 월요일’이었다.


세상은 나를 김○○이라고 불렀지만
조직은 나를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그 호칭은 단순한 직급을 넘어

책임을 상징했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신호였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런 의미의 호칭이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회사 복도에서 들리던

“상무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상무님, 이 부분 결재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들이 모두 멈춰 있었다.


퇴직 직후의 공백감을 연구한 여러 연구는

퇴직 후 가장 큰 상실감을

연봉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호칭 상실에서 오는

정체성의 공백”**이라고 설명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

즉, 사람들은

돈보다 이름의 변화에

더 큰 충격을 느낀다.

그 연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자리에 서보니

그 문장이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호칭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어디에 속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등불이었다.

등불이 꺼지면

길이 아니라

마음이 어두워졌다.

■ 2. 이름 석 자로만 소개되는 낯섦

퇴직 후 처음으로 참석한 모임에서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혹시 어떤 일을 하세요?”

그 질문은 24년 동안 수없이 들었던,

너무나 익숙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내가 어떤 말로 그 질문에 답해야 할지

머리가 잠시 비어버렸다.

“저는… 예전에 ○○그룹에서 일했습니다.”

‘예전에’...

그 두 글자는 마치 낯선 자리에서

갑자기 낮아지는 조명처럼
나를 조용히 비껴갔다.

잭 케루악은 『길 위에서』에서
**“길 위의 고독은 결국 자신을

다시 비추는 거울”**이라 말했다(1957).
그 순간의 고독도 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 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나라고 믿고 있는

역할과 존재가

지난 시간 속으로

밀려나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책임을 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중년의 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직함을 잃는다는 것은

명함의 변화를 넘어서,
나 자신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 경험이라는 것을.

■ 3. 직책은 책임이 아니라 ‘정체성의 외투’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직책은 벗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직책을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내리는 판단일지도 모른다.


직책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받는 것이지만

그 직책을 입고 버텨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신입 시절부터

직책이 바뀔 때마다

책임과 호칭의 무게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경험했다.


사원일 때는 단순한 호칭이었다.

대리, 과장이 되면서 그 호칭은

내가 맡은 영역과 사람의 수를 늘려갔다.

팀장이 되었을 때는

결정과 책임이 단단한 무게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임원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이름보다 ‘상무님’이라는 말이

먼저 들려오는 시간을 살았다.

그 호칭은 때로는 부담이었고,

때로는 보호막이었지만

항상 나의 ‘정체성 외투’였다.


■ 4.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사라졌을 때

퇴직 후 며칠 동안

나는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특정 시간에 울리던 알람,

주간회의 전 메신저 호출,

보고서 마감 시간에 날아오던
“상무님, 00 사항에 관하여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메시지.

그 모든 것이 사라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서 사라진 걸까.”


프랑스 사회학자 블렁쇼

(Maurice Blanchot, 1907–2003)는

인간의 정체성이 ‘

타인이 나를 부르는 방식’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출처. 끝없는 대화, 1969)


그 말처럼

아무도 나를 특정한 이름으로

호출하지 않는 지금,

나는 새로운 정체성의 기점에 서 있었다.


■ 5. 신입에서 임원이 되기까지의 24년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적던 밤,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래된 기억을 꺼내 들었다.

“회사에서 뽑은 첫 번째 신입 사원이었던

그 앳된 묘목이

어느새 임원이라는 고목이 되어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

그 문장을 쓰고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24년이라는 시간은

숫자로 적으면 간단하지만,

삶으로 살아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이 회사에서

처음 보고서를 쓰던 어린 신입이었고,

직원들의 성장을 이끌던 팀장이었고,

조직을 책임지는 임원이었다.


하나의 회사 안에서

나라는 사람의 역사가 형성되었고

호칭은 그 역사의 페이지마다

붙어 있던 제목과도 같았다.


그래서 호칭이 떨어져 나간 지금,

삶의 페이지가 한꺼번에

비어져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 6. 함께 했던 시간들

특히 코로나가 회사 전체를 뒤흔들던 시기는

이름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이다.


관객이 사라진 극장.

어둡고 적막한 로비.

하나둘 떠나는 동료들.

남아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밤에 나는 적었다.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가슴 아파했던 지난날들…”

그 문장을 쓴 뒤

나는 꽤 오랫동안

모니터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절은

직책이나 역할의 문제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절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과

좋은 기억만큼이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묵직한 감정까지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에

자꾸 머물러 있었다.

임대 매장을 담당하던 시절,

한 점주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OOO님 소유하고 운영하시는

가게인 줄 알았어요.

그러셨다면 제가 더 잘해드렸죠.”

그때 나는 웃어넘겼지만

돌아보니 그 말은

나의 일하는 방식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었다.


나는 늘 ‘내 일처럼’ 했다.

그리고 그 태도는

매년 목표를 크게 초과 달성했고,

팀장을 맡았으며,

특별승진이라는 성과로 돌아왔다.


그런 만큼 직책은

나에게 성실함의 증명서였고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불러주는

“상무님”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직책을 넘어

믿음과 시간의 무게가

쌓여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렸다.

■ 7. 호칭이 사라지는 순간 찾아오는 정서적 진공

직장을 떠나면

사람이 먼저 떠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떠나보니

사람보다 먼저 떠나는 것은 ‘호칭’이었다.


호칭은

사람을 구분하는 사회적 도구 같지만

사실은 사람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었다.

그 끈이 사라지자

마음 한켠에서 작은 진공이 생겼다

가벼워진 건지,

텅 빈 건지 알 수 없는 공기였다

낯선 공기가 들어오기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리.

비어 있으면서도 어지러운 공간.


퇴직 후 가장 크게 변화하는 요소로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이 약화되며
정서적 고립감이 증가한다는

연구발표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사회적 관계연구)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이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라고 묻는 듯한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아직 새 이름을 찾지 못한

내가 불안하게 흔들리곤 했다.


그래서 퇴직 후 그 호칭이 사라지자

가벼움보다 허전함이 먼저 찾아왔다.


■ 8. 이름은 사라져도,

나를 만든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퇴직 직후의 공백기는

호칭을 잃은 시기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이름을 다시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직책으로 불리던

지난 시간을 넘어서

이제는

나라는 사람을

내 이름 석 자로 설명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어떤 날은 억지로 나를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은 나라는 사람의 본모습을

조금씩 다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역할이 아닌 나.

직책이 아닌 나.

성과나 수치가 아닌 나.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직책은 시간이 만들어준 옷이고,

이름은

그 옷 아래

원래 있던 피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9. ‘상무님’이라는 이름과의 작별

퇴직 이후 어느 날,

메일로 “상무님 감사합니다”라고

시작되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호칭과도 이제 작별해야 하는구나.”


내가 그동안 지켜온 책임과

대가를 치르며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관계들까지

모두 하나로 묶어 의미를 가져다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이름과의 작별은

과거와의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으로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호칭이 사라지는 것은

나를 부르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지

나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직함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두 번째 인생의 시작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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