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마치 새로 태어난 방처럼,
아무 가구도 없는
넓은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안에 혼자 서 있는 느낌.
발소리가 커져서
스스로 놀라게 되는
텅 빈 공간.
그런데
그 공간에 홀로 서 있는 동안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조용하고, 은근하고,
깊은 온기들을
하나씩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점심을 하러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커다란 유리창 밖에서
햇빛은 여유롭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지만
내 자리는
어쩐지 그늘 같았다.
그날따라
식당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직원들의 점심시간 때문인지
테이블마다 두세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속에서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은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처럼
유독 고립되어 보였다.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신만의 일터로 돌아가겠지.
근데 나는… 어디로 돌아가지?”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공간인데
왜 나는 저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하는 걸까.
근거 없는 눈치가
마치 어지럼증처럼
갑자기 밀려왔다.
포크를 드는 손이
괜히 굳어지고
음식이 입안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이 식욕보다
더 먼저 줄어들던 시간.
퇴직 후 혼밥은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비어 있는 관계를 절실히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는 일은
어디서 본 듯한
반복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반복 속에서
마음이 가장 작아졌다.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면
꼭 내가
이곳의 주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젊은 아주머니 둘이 타고 있었다.
나는 괜히 밑바닥만 바라봤다.
‘퇴직하고 집에만 있는 남자’
그들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일까 봐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사실 그분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깨는 이유 없이 움츠러들었다.
정작 나를 평가하던 사람들은
회사에 있었는데도
나는 낯선 타인의 시선에 더 작아지고 있었다.
퇴직 직후 나는
스스로를 꽤 멋있게 느꼈다.
“그래도 24년 동안 성과 냈던 사람인데
어디 가도 안 쓰이겠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그 자신감이 나를 당분간은 떠받쳐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입사 지원서에서
회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내 자존감은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서서히 내려앉았다.
이력서 한 장을 보정할 때마다
내 경력의 ‘끝’이 아니라
‘멈춤’을 더욱 깊게 느꼈다.
어떤 날은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하루는
그렇게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늘려 놓았다.
퇴직 통보를 받고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아침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했다.
이제 이 길을
출근길로 달릴 일은 없다는 사실이
손끝을 얼게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들은 알고 있었던 걸까.
등굣길에서
차 문을 열고 내리던 아들이
갑자기 나를 살짝 끌어안았다.
“아버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말끝이 떨리지 않게 하느라
나는 한숨처럼 웃어넘겼다.
그러나 눈물은
턱 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순간,
회사에서 들었던
수많은 칭찬보다
과장·부장·상무보다
아들의 그 한마디가
내 존재를 더 깊이 인정해 주었다.
퇴직은 회사와의 이별이었지만
그날 나는
가족이라는
새벽의 빛이
나를 다시 비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며칠 후,
딸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 요즘 이렇게 지내는 게
조금은… 창피하지 않니?”
차 안의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다.
그러나
딸은 주저하지 않았다.
“아빠,
아빠 회사에서 일했던 이야기 직접 들으니까
정말 멋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 오셨잖아요. 그러니
이제
좀 쉬어도 돼요.
그러니까
지금 이시간
저랑
이렇게 이야기나누며
함께 가고 있는거죠.”
그 말은
내 가슴 한쪽에서
바스라진 자신감을
다시 조립해주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퇴직이
‘정체성의 상실’이 아니라
‘정체성의 재발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퇴직 후
기다림이 사라진 하루는
사람을
작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다시 크게 만들기도 한다.
아들은 나에게
“고생 많았다”는 한 문장으로
아버지라는 자리를
다시 세워주었다.
딸은
“쉬어도 된다”는 말로
내 존재를
늦은 오후의 햇빛처럼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퇴직은
나를 불러주는
이들이 사라지는 사건 같았지만
사실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더 가까운 자리에서
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조금의 시간은 필요했지만
그 시간이 헛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