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주의 책
아빠는 내가 교대에 들어가길 원했다. 아빠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아 수능이 끝나고도 교대 논술 준비를 했지만 정작 입학 지원서를 쓰는 날에 난 3지망 모두 일반대학 국문학과를 썼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게 학교는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을 학습하는 공간이었다. 몇몇의 전교조 교사들을 제외하곤 모든 교사가 자기만의 회초리를 한 손에 늘 들고 다녔다. 책상 위로 모두 올라가 발바닥에 매를 맞는 벌, 수업 시간에 한 사람을 죽도록 패는 한 남성 교사의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떨었던 순간, 시험에서 틀린 개수대로 줄을 서서 엉덩이를 맞았던 일까지 지금의 기준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폭력들이 용인되고 절대시되던 곳이 학교였다. 반 친구들의 따돌림과 남자 애들의 노골적인 성희롱까지 합쳐진 그 시절은 내 몸에서 멀리 떼어내고 싶은 기억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 아이의 학교를 방문할 때조차 몸이 조금은 얼어붙는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학생이든 교사든 학교가 나처럼 빨리 탈출하고 싶은 공간인 사람들이 있겠지. 학교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오늘의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고 오늘만큼은 그랬다고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비빌 언덕이 있다면, 그 언덕이 좀 더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공교육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며 길어올린' 최현희 선생님의 '사랑이라는 전문성'처럼. 학교 밖에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지.
"글쓰기는 변화의 가능성 자체이다. 사회 그리고 문화적인 구조들의 변형을 예고하는 움직임, 전복적인 사상의 도약대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식수는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축소되지 않는 언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넘어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언어를 모색했고, 그 방법으로 여성적 글쓰기를 제안한다. 식수는 글쓰기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위한 씨앗을 뿌려 그것이 자연스레 사회 구조의 변화라는 열매로 거두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억압된 목소리의 해방과 평등이라는 열매. 특히 몸의 감각적 경험과 기억을 말하는 것은 여성에게 가해졌던 언어적·정서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여성적 글쓰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글은 1970년대에 쓰였다는 것.
《천개의 파랑》을 읽고 반해버렸다. 이끌리듯 그의 신간《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를 읽었고, 그의 전작들을 다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끼숲, 푸른 점, 사막으로에 더해 에세이 아무튼, 디지몬까지. 천선란 덕질의 시작. 노을 건너기, 이 짧은 소설은 스스로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과거의 '나'를 만나는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다. 가장 외로웠던 시절로 건너가는 뒷모습은 나 역시 내 외로웠던 유년으로 나를 기어코 데리고 간다. 때때로 뽑아버리고 싶은 깊은 뿌리를 끝내 사랑하기 위해 "한 번은 꼭 끌어안아야"하는 그 일을 나도 해낼 수 있을까.
《혼모노》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뾰족하게 질주하는 속도감, 외줄타는 듯한 긴장감, 잘 짜여진 서사와 인물들로 흡인력이 컸다. 그의 소설이 '힙'하기는 하지만 다소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닫히지 않는 결말이 주는 여운과 시대를 잘 포착해내는 죽비같은 표현들이 결코 가볍지 않고 깊은 성찰을 데려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편이 궁금했다. 어떤 방식으로 긴 서사를 이끌어가는지. 오래된 사진처럼 빛바래고, 상처와 오해로 얼룩진 두고 온 시간과 인연들. 안부를 외면한 채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 속에서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많이 달라진 이들이 문득 생각났다. 실패한 이해와 닿지 못한 진심으로 인한 아릿하게 슬펐고, 삐걱거리는 와중에도 다정함을 받았던 아주 작은 순간들이 그립기도 했다. 도파민 터졌던 혼모노와 달리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소리 없이(혹은 소리가 들리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도로 읽었다. 소설이 들려주는 선의의 목록들은 작고 미약하지만 세상이 보고 듣는 것을 멈추고 떠난 자리를 계속 서성이며 켜켜이 쌓인 길 잃은 희망들에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그림자에 맞서며 작은 기적들을 일구어 나가는 작고 미약하고 근사한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빚진 마음에 새기게 된다.
파수꾼 꼭 먼저 읽고 여신 읽어야 함! 1월의 책은 아니고, 지난 연말에 읽은 책인데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이야기였다. 나 되게 다크우울홀릭인줄 알았는데 사실 선한 사람들 이야기 좋아했네...(선하다고 해서 재미 없는 거 아님! 뒤로 갈수록 쓰는 데 힘빠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