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가족의 탈서울 유랑기_김천살이_취업일기 1화
김천 이주를 결정하기 전, 남편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6년간 일했던 직장을 퇴사한 뒤 직업훈련으로 목공을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김천 이주와 둘째 육아라는 큰 산 앞에서 우리는 안정적인 밥벌이가 필요했다. 남편은 결국 ‘퇴사’가 아닌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다시 돌아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든 무직자 신세는 겨우 면했다.
사실 김천에 살기 전에 우리가 과연 둘 다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그게 경제적으로 가능할지 두려웠다. 가계 장부를 들여다보며 꼼꼼하게 재정계획을 세웠다. 남편의 휴직급여와 김천에서 주는 둘째 출산 장려금, 아이들의 양육수당 등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수입원이 전무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서울 집이 전세사기를 당해 경매 등 여러 복잡한 일들로 보증금이 묶여있어 본의 아니게 우리 소유였기에 지인들에게 무보증금으로 월세를 내주었는데 그것도 소소한 보탬이 되었다.
지출면에서 보자면 서울에서 공동육아비용으로 나갔던 월 40만 원의 교육비가 김천 유치원에서는 무료. 자동차도 이미 2년 전에 팔아서 보험료 나갈 일도 없고 여러 가지 면에서 지출은 줄어들었다. 조금 빠듯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서울에서보다는 아주 쬐애금 더 넉넉한 재정상황이었다. 물론 계획상의 얘기다.
하지만 인생사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일.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목돈 지출이 생기면서 다시 밥벌이의 문제가 생겼다. 남편은 육아휴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 둘째 아기를 재우고 나서 틈틈이 서울형 경단녀는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으나 이곳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다.
채용사이트 올라오는 것은 주로 공장의 회계일이나 요양보호사, 공장 단순 조립 아르바이트, 물류창고 등의 직종이 전부였는데 그것마저도 경력자를 원했다. 대학원까지 다녔으면 뭘 하나, 김천의 취업시장에서는 전혀 메리트가 없었다.
그래도 대학생 때 카페 알바 경험이 많은 나는 작은 카페 알바라도 시작하기로 했다. 아침 7시부터 11시 반까지 일주일에 세 번 김천역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7월 초, 둘째가 막 100일을 넘긴 직후였다. 근무시간이 적어서 급여가 많지는 않았지만, 일도 금방 익숙해지고 사장님도 좋은 분이어서 오래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