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작년에 주 대화 내용은 행복한 삶이었다.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회사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한 번은 남편의 직장 동료가 아래와 같이 말을 했다 한다.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 청약이 되어 아파트도 있고, 마누라와 자식도 있는데 난 왜 행복하지가 않지?"
최근 2~3년 동안 남편은 회사에서 무척 힘들어했다. 남편뿐 아니라 동료들도 무척 힘들어해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많이 가졌었다.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업무 방식이 달라지고 만족도도 달라지는데 그때 바뀌었던 상사는 정말 내 인생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케이스였다. 압박에 압박에 압박에 사람 같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떠나고 싶다는 말을 밥 먹는 횟수보다 자주 하게 되었다.
나 역시 한때 그런 상사가 여러 있었기에 그 절망감과 암담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망치고 벗어나고 싶었던 그 마음을. 그런 곳에서 남편은 어찌 생활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마치 내가 남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 근무 환경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였다.
"오빠, 회사가 힘들면 아프기 전에 나와요. 아프고 나서 나오면 병원 밖에 안 다녀요. 아프기 전에 나와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깐."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리고 진심이다. 회사와의 인연이 맞아 오래 일 할 수 있으면 그것 역시 좋지만 그렇지 않게 되면 나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픈 자신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본인과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럼 회사를 그만 두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작년에 우린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공인 중개사 책을 샀다.
왜라고 물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대인 관계도 좋고 사람 들과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작년에는 다른 일이 겹쳐 시험을 보지 못 하였다.
그렇게 조금씩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도중 육아 휴직까지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회사 일을 하면서 무언가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조금 덜 벌어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마침 시기도 둘째가 1학년이 되기에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여 남편은 육아 휴직을 쓰기로 결정했다. 평소 아빠들도 육아 휴직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을 자주 했기에 결정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리고 육아 휴직 동안 계획한 배움이 미래에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줄 수도 있기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는 두려움이 나를 막고 있다. 항상 회사라는 조직 안에 살았는데 밖으로 향하는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명함과 월급이 주는 안락함은 쉽게 져버릴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린 행복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간 세상이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 보지 않는 것은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게 될 미래에 후회를 두고 오는 듯했다.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준비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는 큰 틀의 일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분화되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나오기에 일을 하기에는 편하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도전하기에는 그리 젊은 나이가 아니기에 투자 부담이 없는 분야를 고르다 보니 공인 중개사와 내부 인테리어로 좁혀졌다. 하지만 공인 중개사는 시험이 1년에 한 번 있기에 그리고 한 번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1년 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내부 인테리어로 방향을 돌렸다. 인테리어라고 해서 구조 설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배, 장판, 조명, 타일, 줄눈 등을 배워 볼 계획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이 분야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의도하지 않게 전세든 자가든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거의 도배, 장판을 하고 갔었다. 집주인이 해준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우리가 견적을 알아보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친절한 곳이 드물다는 것. 물론 예전에 마음에 든 곳이 한 곳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 그런 줄 알아서 연락처를 저장해 놓지 않아 찾을 수 없어 후회를 몇 번이나 했던 집이다. 작년 11월에 이사로 견적을 보기 위해 5곳을 전화했는데 그날따라 불친절하게 상담을 해줬다. 우리 입장에서는 적은 돈도 아닌데 불친절한 상담이 이해가 되지 않아 남편에게 우리가 기술 배워서 해요라고 말했다. 실은 이번 이사는 당일 이사에 당일 도배, 장판이었고 그걸 허락해주는 이사 업체와 도배, 장판은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오빠, 우리가 도배, 장판을 배워 고객이 원하는 사항들을 반영해 주도록 해요. 조금 내가 힘들어도 해주면 많은 고객들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 2년마다 이사를 하면서 도배장판을 했던 것은 어쩌면 운명의 빅 피쳐 었을까? 우리를 이 길로 이끌기 위한'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남편은 인테리어 관련 기술을 육아 휴직을 쓰면서 배우기로 계획했다.
인생은 참으로 예측하기 힘든 듯하다. 육아 휴직을 마음먹었는데 회사에서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왔다.
대상은 50살 이상이고 저 성과자 위주였다. 남편은 이 사항에 해당이 되지 않았지만 작년에 팀장에게 육아 휴직 중 희망퇴직 나오면 알려달라고 요청한 상태였기에 제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청한 사람이 적어 신랑의 서류가 통과될 확률이 높아졌다. 대상자가 확대된 것이다.
퇴직서를 제출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막상 퇴직서를 제출한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아파왔다. 퇴직서가 접수되면 이제는 그 조직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 아쉬움이 또 한 번 우리를 잡았다.
"어차피 사업부 인원 축소로 육아 휴직 후 짧으면 1년, 길면 3년 다닐 계획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희망 퇴직금 받고 나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내년에도 이렇게 주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렇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성공이 보장되지 않으니 고민되는 거지."
냉정한 생각과 아쉬움을 동반한 생각들이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했다. 작년 한 해 퇴직까지 생각 한 우리였으나 막상 퇴직을 눈앞에 두고 결정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퇴직 준비를 미리 생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퇴직서를 신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퇴직에는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도 알게 되었다. 20대의 퇴직과 정말 달랐다. 20대의 퇴직은 이직을 위함이었으나 40대 중반의 퇴직은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함 퇴직이었다. 그 길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두려움은 깊었다. 그럴 때마다 2~3년 뒤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현재 남편의 회사는 조직 변경으로 인력이 축소 중이다. 어찌하여 그곳에서 남는다 하더라도 버티는 심정으로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말 행복한 일일까. 사람마다 선택은 다를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버티는 것이 고통이라 생각하고 가족은 그런 힘듦을 나누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그 힘듦을 나누고자 한다. 남편이 새로운 자리에 새로운 싹을 틔우기 까지.
누군가는 말한다. 밖은 지옥이라고. 두렵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옥뿐 아니라 기회도 기다릴 수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 수록 그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지니 조금이라도 도전할 수 있을 때 도전해 보는 길을 선택하고자 한다. 지금은 용기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