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퇴사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

by 당근의 꿈

회사 생활을 하면서 퇴사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적어도 난 1년에도 200일 이상을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럼 왜 퇴사를 매일 같이 생각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걸까?

월급 중독, 카드값 혹은 대출금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지 않을까 싶다.

퇴사를 결정했을 때 주변 지인들 및 가족의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는데 동료들에게 알렸을 땐 아래와 같다.


퇴사에 대한 동료의 반응


"우아, 부럽다. 나도 퇴사하고 싶어 와이프에게 말했지만 말도 꺼내지 말래."

"배운 기술이 너무 아깝지 않아요? 전혀 다른 길인데 회사에 계속 다니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너 진짜 퇴사해? 먼저 가서 길 잘 닦아 놓아서 성공하면 불러."

"여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밖은 더 지옥이야.

두 번째의 경우 소수이고 나머지가 다수였다.

우리는 미래에 확실함이 없기에 퇴사를 할 수가 없다. 가보지 않는 길이란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기에 두렵다. 더욱이 가족들의 안위가 걸려있다.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해보자.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말로 시간에 사정을 해본다. 우리 역시 아이들이 좀 더 어렸다면 결정에 고민을 더 했을 것이다. 이때에는 가족의 응원이 필요하다. 배우자 혹은 자녀의 응원이. 나 역시 새로운 것을 항상 꿈꾸었기에 신랑이 가는 길에 바람막이가 되어주고자 했다.

결과를 알고 하면 도전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모르기에 도전이 가진 의미가 큰 것이지 않겠는가.


퇴사에 대한 언니의 반응


남편의 퇴사 결심을 언니에게 알렸을 땐 언니는 직서가 승인되지 않았으면 취소하라 했다.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가보지 않는 힘든 길을 걷냐 했다. 그 말에 행복하고 싶어 도전을 한다는 내 말은 책 속의 이론 같은 말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론을 실천으로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이지 않은가. 언니의 속상한 마음이 전화 너머로 전해져 왔지만 더 큰 반대는 하지 않았다. 언니 역시 우리가 뜻을 굽히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에. 세월은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더 알게 해주는 다리이다.

반대하지만 선택한 길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언니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우리 가족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소 다를 뿐이었다.

도전의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어 현재의 삶이 유지되지 않아도 선택한 길이었다. 어찌 성공만을 생각하고 도전했겠는가. 남편의 길에 험난함은 또 다른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비록 그 밑거름을 받아들이기에는 쓸 지라도.


퇴사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


알 수 없다. 왜냐 묻는 다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반대는 언니와 다르다. 부모님에게는 자리를 잡기 전에 알리지 않는 방향으로 잡고 육아 휴직으로 말할 것이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를 시켜드리기보다 걱정을 안 하시게 하는 방법이 부모님과 우리에게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소에 퇴사에 대한 부모님의 생각을 알고 있기에 한 결정이다.

예전에 무심코 행복하고 싶어 퇴사를 하고 싶다는 나의 발언에 엄마는 펄쩍 뛰셨다.

"너처럼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절대 그만두면 안 된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왜 그만 둘 하냐. 그만한 월급 주는 곳이 어디 있다고."

엄마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해를 시켜 본다.

"엄마 내가 행복한 게 중요하잖아. 남이 내 직장을 어떻게 생각하는 게 무엇이 중요해. 엄마, 아빠 시절에는 어려웠기에 꼬박꼬박 월급 주는 회사를 선호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부모님 시대를 고려하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다 생각한다. 장사를 하시면서 월급 받는 회사원을 얼마나 부러워하셨던가. 장사하는 사람은 회사원을 회사원은 자기만의 사업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어쩜 우리도 가보지 않았기에 부러워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평소 나와 다르게 뭘 해보고 싶다 하지 않은 남편이 재미있겠다고 한다. 지금은 종합 인테리어를 보고 계획하지만 후에는 황토방을 짓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는 따뜻한 황토방에서 고구마와 동치를 놓고 오손도손 이야기 하기를 꿈꾼다. 꿈으로 끝날지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을 이렇게 흔적으로 남겨 보고자 한다.

후에 힘들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흔적을 다시 보면서 이때의 마음을 되새겨 보고 싶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답변을 주고 싶다.

"참 잘했어.", "이때 힘들었지?" "괜찮아. 서로를 좀 더 배려하자." 등 많은 답변 중 긍정의 답변들이 많기를 기대하며 이제 한 발씩 나아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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