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갑고 편하고 그리고 꿈이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학교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다. 학원이나 과외를 받지 않아도 영어를 잘하고 좋아하다 보니 영어 부장까지 되었다.
하지만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가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작가가 꿈이었지만 전혀 관련 없는 컴퓨터와 장비 앞에서 코딩을 하고 있지 않은가.
친구도 영어를 좋아하여 통번역사 꿈이었지만 선택했던 길은 공무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지만 그녀도 나처럼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산에 감춰둔 꿈을 바라보듯이.
세월이 흐르면 꿈이 있어도 바쁜 일상으로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점점 더 간절하게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커지는 사람도 있다.
나의 꿈이 산에 있다면 친구의 꿈은 바다 건너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꿈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고 그 배를 타기 위해서는 현재의 직업을 그만둬야 했다. 많은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통번역사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어를 좋아했기에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은 받지 않았다. 꿈은 이처럼 참 막연하지만 한편으론 실제가 가진 힘보다 더 대단한 거 같다. 아무런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어도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고 움직이게 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친구는 10년 넘게 일했던 직장을 그만 두기로 결심을 하였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친구를 말렸다.
"꿈이 밥을 먹여준다는 보장도 없지 않냐"부터 "그 꿈을 이룬다고 해서 지금 만큼 번다는 보장이 없지 않냐" 등등의 현실적인 조언들이 있었다. 꿈을 향해 나가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는 돈이다. 현재의 직업을 그만 두면 더 이상 고정적인 수입은 없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친구의 직장이 너무 아까웠다. "일 하면서 하는 건 힘들까?"
친구는 단호하게 "응, 힘들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친구의 꿈을 붙잡지 않았다. 나 역시 꿈을 꾸고 있기에 친구의 심정이 어떤 마음인지 안다.
"그래. 하고 싶은 거 해. 한번 사는 인생이야. 그만큼 일했으면 너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짧은 붙잡음은 격렬한 응원으로 바뀌었다.
나 역시 그렇지만 친구도 살아오면서 꿈이 잊힐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는 건 아닐 것이다. 직장 생활을 10년 넘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욱더 꿈이 커져 이대로는 평생 그리워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을 거면 만나러 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뒤늦게 꿈을 만나러 갔다.
항상 우리를 불렸지만 못 들은 체 보고만 있어 생긴 미안함과 그리고 그리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말이다.
만나러 가는 길은 아스팔트처럼 쫙 펴진 길이 아니다. 다져지지 않은 거친 길과 거친 물살 위로 아슬아슬한 다리도 건너야 하면 때론 바위들로 가득한 높은 산들을 타야 하기도 한다. 이 길들은 우리에게 그만 포기하라고 외치는 듯하다.
친구는 직장을 그만두고 꿈을 만나러 간지 2년이 넘었다. 통번역 학원을 다니고 시험을 통과하여 일을 기다렸지만 올해 코로나로 좀처럼 쉽지는 않았다. 재 취업을 하라는 말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꿈을 만나러 가는 길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갔을 때 꿈과 함께 올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후회와는 함께 오고 싶지는 않다.
꿈의 결과가 잠시 만남에서 멈출지 현실 속으로 데려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신한 건 만나러 갔으니 후회하는 일 없이 최선을 다 하고 싶다. 가지 못 한 길에 미련을 두고 뒤만 돌아봤기에 현재 최선을 다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부족하네", "이 정도면 능력 있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나의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전에는 몇 명의 타인의 말 한마디에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가고 실망과 용기가 한 사람의 말에 의해 좌우된다. 용기는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겠지만 실망은 다르다. 여기서 나를 멈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실망으로 멈추기 전에 우리는 자신에게 한번 물어본다. '너는 정말 최선을 다 했니? 이게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야?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우린 아직이다. 아직 최선을 다 하지 않았고 아직도 보여줄게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타인의 멈추라는 신호를 보고도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다 보여 줄 때까지.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도 말고 천천히 꿈과 함께 즐기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고자 한다. 나를 오랫동안 기다린 꿈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