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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경없는의사회 Oct 24. 2019

폭력, 납치, 살인에서 도망치다

나이지리아 잠바라 지역 위기


나이지리아 북서부 잠파라(Zamfara) 주 내 범죄집단과 극심한 폭력사태로 인해 수십만 명이 고향을 등진 채 앙카(Anka)로 피신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팀은 지난 몇 주간 앙카 전역의 여러 지역에서 구호물자를 배급했으며, 현재는 앙카 내 한 임시거주지역에 도착한 실향민 가정을 대상으로 1차 보건의료를 제공하고 기초적인 생필품 보급을 지원하고 있다. 여러 농장이 버려지면서 영양상태 위기 또한 다가오고 있다. 


앙카 외각 지역에서 소떼가 풀을 뜯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공격이 일어나면서 목숨에 위협을 느껴 모든 것을 버린 채 떠나와야 했죠. 이제는 건설 현장이나 학교 내에 세워진 임시 보호소에 살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보건 증진 담당자 수라이야 우마르(Suraiya Umar)


아이샤(Aisha, 50)는 앙카의 한 폐건물 복도에서 지난 4년을 지냈다. 잠자는 곳을 외부 환경으로부터 가리기 위해 찰흙으로 뚫린 창틀들을 막아야 했다. ©Benedicte K
폐건물에 사는 아이들이 벽에 그린 그림. 아이샤의 아이들도 함께 폐건물의 툭 트인 복도에서 지난 4년을 살았다.©Benedicte Kurzen/Noor


그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매우 수치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그들이 여전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지어가 가능한 우리 나이지리아인 동료들이 무하마드 같은 아이들과 같이 장난도 치고 놀아줍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 총괄 의사 안냐 바트리스 (Anja Batrice)


실향민이 모여 사는 비공식 캠프가 된 폐허의 마당에서 아이들이 씻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왕의 새 궁전”이라 불리는 국내실향민 캠프의 한 소녀가 얼마 전 이 곳에서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세 살 밖에 안된 무하마드(Muhammad, 가명)는 가족이 직면한 상황으로 심리적 영향을 받아 실어증을 앓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무하마드(가명)


무하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린 소년은 과거 앙카 왕을 위한 새로운 궁전을 짓던 터 한가운데 쓸쓸히 서있을 뿐이다. 궁전 건설계획은 중단되었고 현재 이 터에는 미완공된 건물과 국경없는의사회가 세운 보호소가 자리 잡고 있고, 잠파라 주 여러 마을에서 피란 온 실향민 수백 명이 살고 있다. 


“이곳 여러 마을처럼 무하마드의 마을 또한 무장 집단의 공격으로 파괴됐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무하마드를 위축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그들이 여전히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지어가 가능한 우리 나이지리아인 동료들이 무하마드 같은 아이들과 같이 장난도 치고 놀아줍니다.”

 _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안냐 바트리스 (Anja Batrice)








폭력, 납치, 살인에서 도망치다

아미나(Amina, 30)는 앙카의 한 폐허에서 3년 넘게 지내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아미나


“임신 7개월 차에 무장강도들에게 납치당했어요. 몸값으로 1백만 나이라(한화 약 330만원)를 지불해야 했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가축 대부분을 팔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소, 염소, 닭들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팔려고 보험처럼 가지고 있었던 건데, 이제는 기댈 구석이 없습니다.”

_국내실향민 아미나(30) 


가족의 주 수입원을 몸값으로 사용한 이후, 아미나는 두 아이가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5개월 전 이 폐허에서 출산한 쌍둥이 하싸나(Hassana)와 후세이니(Husseini)는 이미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급성 영양실조 치료를 받았다.





실향민들은 앙카의 폐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훌라니족인 아미나는 앙카의 한 폐허에서 아이들과 살고 있다. 앙카의 아이들은 시내 이곳 저곳 흩어져있는 국내실향민 캠프에 와 기본 물품들을 판다. ©Benedicte


라하무


라하무의 마을에서는 무장한 폭행범의 공격으로 26명이 죽었다. 그중 네 명은 라하무의 가족이었다. 


“우리는 결국 집을 버리고 도망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들은 오후 기도시간이 끝난 직후 밝은 대낮에 들이닥쳐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우리 마을을 쳐들어와 무작정 총을 쏘아댔어요.”

_국내실향민 라하무(40)










캠프의 아이들. 가운데 주황색 스카프를 한 소녀가 라하마의 딸이다. ©Benedicte Kurzen/Noor


7개월 전 라하무의 가족은 앙카 근처의 고향 마을을 떠났다. 라하무가 살던 마을에는 무장한 사람들의 공격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폭력을 일삼으며 돈을 요구했다. 


앙카의 한 가정. ©Benedicte Kurzen/Noor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


열 살 아이샤(Aisha)는 어머니 주와이라(Zuwaira) 손에 이끌려 국경없는의사회 텐트 진료소를 찾았다. 7개월 전 주와이라와 아이샤의 가족은 무장한 남성들이 지속적으로 마을에 쳐들어와 갈취와 폭력을 일삼자, 집과 마을을 뒤로한 채 도망쳐왔다. 


“돈을 바쳤지만, 분명 아직 숨겨놓은 돈이 있을 거라며 더 가져오라고 했어요. 만약 숨겨둔 돈을 찾으면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


그들은 이후 여러 차례 더 마을을 찾아와 약탈과 폭력을 일삼았다. 


“한 번은 청년 세 명을 끌고 가기도 했어요. 그날 이후로 오랫동안 청년들을 보지 못했어요. 나중에 듣기론 끌려가서 살해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실향민들이 피난처로 사용하는 건물 대부분은 보수가 절실한 상태다. 특히 우기에 비를 피하기 위해선 지붕 보수가 급선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건설업체를 통해 건물을 보수했다.


회색 콘크리트로 된 폐건물의 공간 중 절반은 지붕이 없다. 매일 같이 폭우가 내리는 우기를 지내려면 보수가 시급하다. 툭 트인 마당에는 큰 물 웅덩이가 생겨 모기들이 번식하기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샤가 말라리아에 걸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앙카의 한 폐교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는 국내실향민의 일상. 실향민들이 머물고 있는 폐건물은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상태다. ©Benedicte Kurzen/Noor


중앙 건물 너머로는 풀에 뒤덮인 폐허 두 개가 있다. 이곳에 몇 가구가 지내고 있는데, 다른 무리와 따로 지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앙카 지역 내 실향민 대부분이 하우사(Hausa) 족이지만, 이들은 주로 가축을 몰고 다니며 유목하는 풀라니(Fulani)족이다. 


실향민 가정이 살고 있는 앙카의 폐건물. 지붕 일부가 무너져 우기에 대비하려면 보수가 필요하다. 마당에 고인 물은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말라리아 유행의 원인이 된다.



실향민을 위한 의료 지원

앙카 종합 병원 입구. ©Benedicte Kurzen/Noor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국경없는의사회 나이지리아 긴급구호팀은 앙카 마을 내 국내실향민을 대상으로 12,677건의 외래환자 진료를 실시했다. 4월에서 6월 사이에는 1,001 가구에 요리 도구 및 개인 위생 용품 등을 비롯한 비식품 구호 물자를 배급했다.



말라리아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담당 사라투 술래이만(Saratu Suleiman)이 폐허에서 생활하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을 방문해 아이를 돌보고 있다. ©Benedicte Kurzen

잠파라는 현재 우기에 접어들었다. 이는 곧 말라리아가 급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라리아는 앙카 종합병원 내 국경없는의사회 소아과 병동에서 가장 많이 치료하는 질병 중 하나다. 습한 날씨는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가 번식하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국경없는의사회 보건 증진팀의 역할 중 하나는 실향민들이 모기장을 사용해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보건증진팀은 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픈 아이를 발견하면 부모가 아이를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로 데려올 수 있도록 독려한다. 

여성들이 국내실향민 캠프 내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핫산 안와콘요베 예라(Hassan Anwakonjove Year) 실향민 캠프 내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영양실조 

한 여성이 앙카 종합병원의 국경없는의사회 소아과 병동 내 중환자실에서 아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국경없는의사회는 몇 달 전 아미나가 아들 후세이니를 데려갔던 앙카 종합병원에서 병상 135개 규모의 소아과 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말라리아, 영양실조, 또는 호흡기 감염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집중치료 대상인 아이들도 있다. 병원은 항상 만원이기에 아이들은 가끔 한 병상을 함께 써야 할 때도 있다.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시기에는 한 병상을 세 아이가 함께 쓰는 날도 있다. 가족들이 같이 병원에 지내는 일도 있기에, 병동은 시끌벅적하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앙카의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영양실조에 걸린 아동 7,445명을 치료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아과 말라리아 병동에 한 소녀가 누워있다. ©Benedicte Kurzen/Noor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아키툰데 다밀라레(Akitunde Damilare)가 소아과 말라리아 병동에서 한 여성과 아이를 진료하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밸러리 와이즈(Valerie Weiss)가 수막염을 앓고 있는 어린 환자를 돌보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우리가 치료한 앙카의 많은 아동 영양실조 환자 수는 잠파라 주의 다른 지역에 또한 우려되는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앙카에서만 이 정도인데, 안전상의 이유로 우리가 가지 못하는 지역에도 영양실조 아동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중환자실 담당 밸러리 와이즈 (Valerie Weiss) 박사



납 중독

앙카 종합병원 내 국경없는의사회 소아 병동의 입원실. ©Benedicte Kurzen/Noor

대부분 마을 남성들은 금광에서 광부로 일했다. 앙카 주변 지역에서 이루어진 재래식 금 채굴은 토지를 오염시켰고, 이것은 납 중독의 원인이 됐다. 납 중독은 특히 아이들에게서 흔히 발생했다. 주와이라의 자녀 중 2명도 납 중독에 시달렸다. 

납 중독에 걸렸을 때 국경없는의사회가 우리 아이들을 치료해줘서 지금은 나아졌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앙카 지역에서 지난 10년 간 아동 납중독 환자를 치료해왔다. 


2018년 한 해에만 337명의 아이들을 치료했다. 이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외진 마을을 찾아가 아픈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었지만, 최근 몇 달간 납치와 강도의 위험이 너무 커져 이제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납 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을 가족들이 앙카의 병원으로 데려와야 한다. 


병원으로 오려면 불안전한 지역을 지나야 해서 매우 위험하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

유네자(Uneza)와 아들 샤리프(Sharif)는 샤리프의 목에 박한 총알을 제거하기 위해 소코토(Sokoto) 시로 가고 있다. ©Benedicte Kurzen/Noor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잠파라 주 북부 내 소수의 병원은 이미 환자들이 수용 가능한 숫자를 넘어선데다, 기본적인 의료 물자마저 부족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끊이지 않는 폭력사태로 인해 외진 마을들 대부분은 접근이 불가능하며, 지역 주민에게 기초적인 보건의료에 공급하는 것도 상당히 지장 받고 있다. 


지난 9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최근 일어난 폭력사태로 가장 피해가 컸던 줌리(Zumri)와 신카피(Shinkafi) 지역의 긴급조사를 실행했다. 줌리에서는 조사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아동 73명을 확인했으며, 그중 8명은 합병증을 앓고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들에게 긴급 영양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현지 보건부와 협력하고 있다.  


*환자 보호를 위해 환자 이름은 가명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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