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가 달려온 50년
현장에 나와있는 국경없는리포터입니다!
오늘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 캠프, 로힝야 난민이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서 소식 전해드립니다.
6월 2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죠.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로힝야 난민 위기를 들여다보고, 4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떤지 살펴봅니다.
로힝야족(Rohingya)은 원래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민족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이슬람교라 불교도가 대부분인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차별을 당했는데요. 미얀마에서는 국적도 인정받지 못해 ‘불법이민자’로 규정될 뿐만 아니라, 미얀마를 구성하는 130개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미얀마 군부 정권은 1960년대부터 로힝야족에게 불교 개종을 강요하고, 토지를 몰수하거나 거주지를 제한하고, 강제 노동을 시키는 등 극심한 탄압을 가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로힝야를 향한 박해가 계속되면서 로힝야는 여러 차례 방글라데시로 피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아로 사망하는 난민도 많았고, 대부분 미얀마로 강제 송환되었죠.
그러던 2018년, 로힝야 분리주의 반군이 미얀마 군부대와 경찰초소를 습격한 사건으로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며칠 동안 14만명이 넘는 로힝야족이 미얀마 라카인 주의 폭력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넘어왔죠. 역대 최대 중 규모였습니다. 당시 피난한 로힝야 난민 중 한 명은 국경없는의사회에 이렇게 전했습니다.
“온 식구가 함께 집을 탈출했는데 아들이 도망치던 도중 총에 맞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이곳 방글라데시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오면서
다른 가족들은 미얀마 숲 속 야외에 숨어 있도록 두고 왔습니다.
며칠째 가족들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절망적입니다.”
이때 방글라데시로 유입된 난민 대부분은 기존의 임시 정착촌이나 유엔난민기구(UNHCR)에 등록된 캠프, 새로 생긴 임시 캠프,방글라데시 현지 지역 사회로 흩어져 머물렀습니다. 많은 난민이 미얀마-방글라데시 국경 사이 위치한 ‘무인 지대’에 발이 묶였죠. 이미 난민 캠프를 형성하고 살고 있던 난민과 새로 유입된 난민이 몰려 좁은 지역에 많은 인구가 과밀집된 채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됐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사바자르의 로힝야 난민 캠프. ©Mohammad Ghannam/MSF
4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는 여전히 90만명의 로힝야 난민과 방글라데시 지역주민이 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아도 난민 캠프가 끝도 없이 펼쳐질 정도로 큰 규모가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대나무와 비닐로 얼기설기 만든 거처가 빽빽하게 모여 있었고, 지붕은 나뭇가지로만 겨우 가려져 있고, 거처 사이사이에는 진흙길이 있습니다. 2017년 대규모 유입 이후 캠프가 확장되기는 했지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매주 수백명씩 미얀마를 탈출해 이곳으로 유입되었죠.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Kutupalong) 캠프. © Robin Hammond/NOOR
현재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큰 난민 캠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인도적 지원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자원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캠프가 과밀집된 상태이다 보니 필요한 시설을 지을 공간조차 부족한 상황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열악한 식수·위생 상황입니다. 모든 난민에게 충분히 공급할 양의 식수가 부족할 뿐더러, 위생 시설도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초적인 형태의 공용 화장실 뿐이죠. 매년 장마철이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비가 오면 화장실이 넘쳐 흘러 식수가 오염되고, 그 결과로 급성 설사, 콜레라, 장티푸스 등 수인성 질병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말라리아나 뎅기열 등 모기 매개 질병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죠.
물을 길으려 길게 줄을 늘어선 나야파라(Nayapara) 캠프의 로힝야 난민. ©Daphne Tolis/MSF
장맛비가 계속되면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계단식 언덕으로 되어 있는 지역인 데다 나무도 취사 연료로 쓰느라 다 벌목해 버린 상태라 매우 위험하죠.
언덕에 위치한 콕스바자르 잠톨리(Jamtoli) 난민 캠프. ©Hasnat Sohan/MSF
장마철 물에 잠긴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Kutupalong) 캠프. ©Simon Ming/MSF
밀집된 환경이다 보니 당연히 전염성 질병 위험도 큽니다. 홍역이나 디프테리아가 확산할 수도 있고, 결핵이나 백일해 환자가 늘어날 수도 있죠.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캠프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확산 방지 조치로 난민 캠프에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난민의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 접근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캠프 출입이 통제 되면서 캠프 내 다른 환자까지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 것이죠.
로힝야족은 미얀마에 있을 때부터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로부터 배제되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예방접종을 포함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아 본일이 없습니다. 난민들의 예방접종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난민 캠프와 방글라데시 지역사회 모두가 공중보건 위험에 처해 있죠.
성·젠더 기반 폭력과 정신건강 문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난민 캠프 내에서는 성폭력이나 가정 폭력도 빈번히 일어나지만, 적절한 치료나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힘겨운 피난 과정과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 캠프 생활로 정신적·심리사회적 여파를 겪고 있는 난민도 많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 문제는 더더욱 지원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전부터 미얀마 라카인 주와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서 계속해서 로힝야 난민을 지원해왔지만, 2017년 이후 활동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2018년 국경없는의사회는 난민 캠프 중심에 병원을 열었습니다. ‘언덕 위의 병원’이라는 이름처럼 이 병원은 콕스바자르의 경관을 이루는 여러 언덕의 한쪽 꼭대기에 있어서 눈에 잘 띈답니다. 이 병원은 응급실, 집중치료실, 진단검사실, 성인 • 아동 입원실, 신생아실이 있는 산부인과, 감염병 환자를 위한 격리 치료실, 중증 영양실조 아동을 위한 집중 영양실조 치료식 센터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언덕 위의 병원’. ©Pau Miranda/MSF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이 병원에서 호흡기 감염, 설사 등 난민 캠프에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을 치료하며, 성폭력 피해자, 외상 및 호흡기 질환 환자 등에게 응급 의료를 제공합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우선 이곳에서 안정화 처치를 받고, 수술실을 갖춘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국경없는의사회는 난민 캠프 곳곳에 보건지소, 1·2차 진료소, 입원환자 의료 시설 등을 운영하며 로힝야 난민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콕스바자르에서 운영하는 고얄마라(Goyalmara) 여성·아동 병원. ©Hasnat Sohan/MSF
질병 예방 확산에 핵심 요소인 식수·위생 환경 조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시추공과 관 우물 설치, 중력 급수 시스템 설치, 물 수송, 낡은 화장실 제거, 내구성 있는 새 화장실 설치, 들통 염소 처리(살균), 가정용 정수 필터 배급 등을 실시하고 있죠.
국경없는의사회가 잠톨리 캠프에 설치한 식수 시설. 하지만 난민이 사용할 수 있는 식수는 여전
히 부족하다. ©Anthony Kwan/MSF
보이지 않는 상처인 정신건강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존 의료 팀에 심리상담가를 추가 배치하고, 여러 보건지소를 통해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사회 파견 단원을 훈련하는 등 기본적인 심리사회적 지원을 위해 여러 활동을 보강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바로 ‘보건증진교육’ 입니다. 로힝야 난민은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합니다. 쉽게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도 많죠. 그렇기 때문에 로힝야 난민의 인식 개선과 환자 조기 발견을 위한 보건증진교육 활동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보건증진, 질병 예방, 경계와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사회를 방문합니다. 진단과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 의료 시설로 이송하고, 난민 가정을 대상으로 보건교육을 진행하고, 예방접종을 독려합니다. 여성으로 구성된 팀은 난민 캠프 곳곳을 다니며 성·생식 보건 지원에 대한 메시지도 전하고 있습니다.
임산부인 로힝야 여성의 가정을 찾은 조산사. © Anthony Kwan/MSF
2017년 로힝야 대규모 이동 당시에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여러 원조 단체가 로힝야 난민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기도 했죠. 하지만 2018년 하반기부터 일부 원조단체가 방글라데시의 상황이 더 이상 ‘비상 사태’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활동 범위를 축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대부분 단체는 단기적인 원조 방식으로 로힝야 난민 상황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기 보다 당장의 상황만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로힝야 난민에 대한 공여국의 관심은 점차 줄어들었고, 이후 지금까지도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금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과밀집되고 비위생적인 난민 캠프에서 살고있는 90만 명이 넘는 로힝야 난민이 결국 방글라데시에서 받아들여지거나 정착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방글라데시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미얀마로 돌아갈 수는 있을 것인가?”
“만약 고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어디로 돌아갈 수 있나?”
“이전에 그랬듯이 결국 미얀마로 강제송환될 것인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이 로힝야 난민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과제는 계속해서 로힝야 난민이 겪는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앞으로도 로힝야 난민에게 필요한 의료적·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로힝야족이 마주한 상황을 전할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계속해서 로힝야 난민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겨,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열악한 난민 캠프에 갇혀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로힝야 난민의 상황을 종결지어야 합니다. 각국 정부는 방글라데시에 긴급구호 물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외교적 노력을 배가해 로힝야 난민에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