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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경없는의사회 May 20. 2015

네팔:언덕 위의 헬리클리닉

현장에서 온 편지 

4월 25일, 규모 7.8 지진이 네팔을 강타해 8000여 명이 숨지고 어마어마한 재산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네팔에서 다양한 긴급구호 활동을 진행하는 국경없는의사회는 도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산악 지역을 두루 다니며 피해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이동 진료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간호사 엠마 페들리(Emma Pedley)가 활동 중에 만난 주민들과 네팔 현지 모습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2015년 5월 7일, 네팔 고르카 지역  ©Brian Sokol/Panos

지난주에는 차분히 앉아 글을 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막강한 간호사 팀(앤, 마리코, 그리고 저)은 순번을 돌아가며 헬리콥터에 올라, 아직 아무도 방문하지 않은 지역들을 두루 다니며 이동 진료소 활동을 하고, 물량이 다 떨어지면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 물품을 챙겨 다시 나갈 채비를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산악 지역으로 나가는 날엔 갖가지 감정을 느낍니다. 한편으로 조금 들뜨기도 하는데, 사실 헬리콥터에는 태어나서 처음 타 보거든요. 하지만 막상 마을에 들어가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합니다. 카트만두 북동쪽에는 거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마을들도 많거든요. 돌로 지은 집이며 가축 보호소들도 모두 파괴되었고, 외딴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모아둔 소중한 식량과 곡식들이 파편들 밑에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국경없는의사회 헬리콥터가 내리는 곳마다 우리가 만나는 주민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환영해 주시고 따뜻한 환대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환하게 웃으며“나마스테.”라고 인사를 건네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우리에게 차를 제공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불교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티베트 국경에 가까운 북쪽  마을분들은 존경과 축복의 의미로 저희에게 하얀 실크 카다(Khata) 스카프를 걸어주시면서 기도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안젤로가 "나마스테" 하고 인사하며 마을 대표분에게 스카프를 전해 받고 있는 모습  ©Brian Sokol/Panos

헬리콥터 진료소 운영을 시작한 이후로 정말 많은 마을을 다녔습니다. 최근 며칠간 아마 25곳 정도를 방문했을 거예요. 하지만 유난히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깡마른 소년을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진으로 중상을 입은 여성을 업고 울퉁불퉁 갈라진 길을 지나 꼬박 3시간을 걸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도로까지 나왔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 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하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 앤이 속한 팀은 수많은 산사태로 완벽히 고립돼 버린 작은 마을에 방문했습니다. 다른 무수한 지역들도 그 마을과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된 팀은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한 번은 꼬마 남자 아이가 제게 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영어 실력은 부족했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팔을 흔들어가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지진이 나니까 집과 나무들이 이리저리 춤을 췄어요.”라면서, 자기 집도 다 부서져 지금은 다른 20명과 함께 작은 방수 시트로 만든 임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했습니다.

 

밝은 눈에 수줍음을 많이 타던 한 현지 간호사는, 의료 물품을 정리하는 동안 보건소가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무너진 터를 뒤져 간단한 치료에 쓸 물품을 챙겼다면서, 기본 의약품과 처치 용품으로 가득 찬 커다란 상자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 약들을 가지고 더 효과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주름살이 깊게 파인 할아버지도 기억 나네요. 우리가 서 있던 계단식 농장에 강력한 여진이 일어나자, 할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손을 구부려 땅에 대고 “람! 람! 람!(신이시여! 신이시여! 신이시여!)”이라고 기도를 드리셨고, 여진이 지나간 뒤에도 몇 분 동안이나 무릎을 꿇은 채 그대로 계셨습니다. 지진이 또 일어난 것에 깊은 충격을 받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5월 7일, 국경없는의사회는 고르카 지역에 지붕으로 얹을 물품 몇 톤을 배급했다. ©BrianSokol/Panos

사실 한 번에 모든 일을 동시에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헬리콥터 문 앞에서 이동진료소를 운영하고, 약품 상자를 뒤져 필요한 약을 찾고, 네팔 현지 의사들의 통역을 통해 환자들의 병명과 증상을 듣고 중증도를 분류하고, 한꺼번에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정신없이 바쁘게 일 처리를 하게 됩니다.

 

사실 저는 전에 네팔에 두 번이나 와봤는데도 이렇게 하늘에서 네팔을 내려다 본 것은 처음입니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네팔은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눈 쌓인 산 끄트머리에는 구름이 자욱하게 걸려 있었지만, 그래도 더러 선명하게 보이는 산들도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하얀 산봉우리는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바로 밑으로는 조각처럼 뚜렷하게 정돈된 계단식 논과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언덕의 윤곽을 따라 보이는 계단식 농장의 굴곡은 사람이 지도 위에 그려놓은 것보다도 훨씬 정교해 보였습니다. 벨벳 같은 감촉의 초록빛으로 물든 저지대 밭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고도가 달라 곡식들이 한 계절 뒷서거니 하며 황토색, 적갈색으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어떤 곳들은 가루 반죽을 크게 부풀게 구운 과자를 부서뜨린 것처럼 밭 여기 저기에 층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그 모습은 너무도 가냘퍼 보였습니다. 특히, 부드럽게 이어진 윤곽선 사이사이에 산사태 때문에 울퉁불퉁한 회색 생채기가 생긴 곳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암석들이 떨어져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암석들 때문에 외딴 마을들을 이어주는 몇몇 도로들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민 대부분이 영세 농업으로 살아가는 곳에서 지진 때문에 농지와 곡식들이 망가졌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계와 안전이 무너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했던 마을들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임시 거처와 식량입니다. 벌써 며칠에 한 번씩은 많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다, 5월 말쯤이면 아마 매일 비가 내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거친 날씨 때문에 주기적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기도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목표는 헬리콥터를 띄우기가 더 어려워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마을에 들어가 상황을 살피는 것입니다.

 

탐사 팀의 분주한 활동에 발 맞춰 국경없는의사회 물류 팀도 불철주야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철이 바뀌기 전에 의료 팀들이 여러 마을에 들어가 담요, 임시 거처 키트, 위생 키트, 고열량 비스킷 등을 대량 배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제때 도움의 손길을 전해 주는 것, 지금 제가 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네팔 고르카 지역에 금속 지붕, 비누, 담요, 방수 시트 등을 배급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네팔 지진 긴급구호 활동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규모 7.8의 첫 번째 지진이 네팔을 강타한 후 신속히 팀을 구성했고, 헬리콥터를 타고 고립된 마을에 있는 주민들에게 들어가 의료 활동을 시작하고 임시 거처 및 식량을 배급했습니다. 5월 12일에 발생한 규모 7.3의 두 번째 지진 후, 네팔에 있던 이 팀들은 즉시 대응 활동에 돌입할 수 있었습니다. 신가티(Singati), 마르부(Marbu), 양글라콧(Yanglakot), 라필랑(Lapilang) 등의 외진 마을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중상 환자들을 카트만두에 위치한 여러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두 차례 지진 이후 발생한 의료적 필요사항에 따라 의료 지원 규모를 재조정하기 위해 피해 지역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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