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움이 날 부를 때
사람들 속에 있으면 오히려 내가 더 혼자인 것 같았다.
-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어떤 순간 선명하게 자각한 건 아니었다. 학창 시절 때부터 문득 혹은 은근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 느낌이 더 진해졌다.
외톨이였던 것은 아니다. 친구나 상대가 있고, 무리 속에 있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주변과 달리 나만 흑백이라거나 나만 연하게 처리된 듯할 때가 있었다.
점차 내 취미는 혼자가 어울리는, 혼자 하기 좋은 것들로 채워졌다.
혼자 영화관 가는 것을 좋아하며, 여행도 혼자 다니는 맛을 즐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하는 여행과는 당연히 완전히 다른 묘미다.
혼자 하는 쇼핑이 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여전히 아니 더욱 탐독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글쓰기도 내게 잘 맞다. 철저히 혼자 몰래 쓴다.
마흔 되어 다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는 원체 혼자 연습하며 나와 싸우는 악기다. 일대일 개인 레슨으로 배운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면 성인전문학원이나 취미반에서 친목을 다지는 흔하지만 나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근근하지만 놓지 않는 외국어 공부도 스터디나 언어교환 같은 방법은 꿈도 꾼 적 없다. 선생님과 일대일로 하는 전화영어가 나의 최대치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이십대에는 산악회에 들어가 우르르 등산 다니고, 겨울마다 스노보드 동호회에서 시즌권을 끊어 활동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러닝, 헬스를 선호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가뿟하게 여겨진다.
외로움은 물리적 풍요로움과는 별개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들)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보다 혼자 있을 때의 더 충만함이 컸다.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마주보고 있지만 통하지 않는 건조함, 공감대 있는 깊은 대화에의 갈증, 존중이나 예의의 부재 등의 이런저런 모습이었다. 그럴 때가 바로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오히려 내가 더 혼자인 것 같’은 순간이다.
그런 것을 감수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거나 발산하는 편을 택한 건데, 그 방법이 ‘혼자’다. 택한 것이라고 해서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전환은 능동적이었지만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분히 본능적인 혼자다.
몸과 마음이 내키는 대로 축적된 지금의 혼자가 그래서 자연스럽고 마음에 든다.
당연히 지금도 사람들 속에 살고 있다.
언제나 싫거나 힘든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속에서 ‘내가 더 혼자인 것 같’은 순간 또한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충만함으로 전환하는 비법이 있어 괜찮기도 하다.
그 간극이 클수록 더 큰 해방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히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