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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자

by 정유쾌한씨

직장 상사 "현경씨는 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다해요?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나 "감정을 쌓아두었다가 폭발해서 갑자기 그만두는 것보다 그때그때 얘기해서 풀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다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시나브로 축적된 나만의 노하우다.


직장 상사 "결혼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할게요. 나중에 결혼하면 시어머니께 지금처럼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안 돼요."




남편은 재작년에 5년 동안 준비했던 시험에 합격했다.

작년에 20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퇴사하고 사무실을 오픈했다.

시험 합격하고 휴식차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으지만 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했다.

퇴사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사무실 오픈 준비를 했다.

그는 작년에 미뤄두었던 여행을 12월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10월 어느 날이었다.

시댁 앞마당에서 청무김치를 담그려고 시어머니, 남편과 함께 쪽파를 다듬고 있었다.


남편 "엄마, 우리 12월에 보라카이 가려고요."

어머니 “보라카이? 그럼 나는 못 가니까 돈으로 줘!"

나와 남편 "네? 하하하..."


'어머니와 둘이 있을 때 얘기하지. 불편하게시리...'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어머니의 말씀.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를 했지만 흙쪽파를 다듬느라 손톱에 낀 흙처럼 마음이 찝찝했다.

신기하게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어딘가에서 직장 상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결혼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할게요. 나중에 결혼하면 시어머니께 지금처럼 하고 싶은 말 다 하면 안 돼요요요..."


나 “(어머니, 마음이 많이 불편하네요...) 내년에는 어머니 모시고 울릉도 가기로 했어요. 전에 어머니 울릉도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이 그동안 시험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고 올게요.”

어머니 “호호. 그래.”


직장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그만두면 그만이지만 시댁은 그만둘 수가 없다.

마음의 지퍼를 다 열지 않아서 다행이다.




“후유... 인생 재미없다...”


나도 올해 초까지 무기력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기에 인생이 재미없다는 남편의 말에 공감했다.

그는 여행 치료가 필요했다.

게임 아이템 하나 살 때도 고민하고 또 고민할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그가 큰맘을 먹고 비행기 티켓과 호텔 예약을 했다.

여행 치료가 통했는지 여행 떠나기 전날 아침에 그는 실룩실룩 엉덩이춤을 추었다.

잔뜩 들떠있었다.


오늘 드디어 그의, 그에 의한, 그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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