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른 새벽 개들의 부추김에 잠에서 깼다. 시각은 새벽 5시. 녀석들이 소변이 마려운 건지, 대변이 마려운 건지 나에게 무언가를 재촉한다. 이 시간에 재촉한다는 것은 이것밖에 없으리라. 바로 산책이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반쯤 풀린 눈으로 산책을 나선다. 6월이라 이미 세상은 밝다. 항상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니 동네에서 이름 없는 유명인이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물어본다.
“세 마리가 같이 있으면 안 싸워요??”
“세 마리나 키우면 안 힘드세요??”
10년 넘게 개를 키우고 있는데 아직도 매번 듣고 있다. 항상 같은 질문처럼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세 마리가 소변과 대변을 다 보면 아침 산책이 마무리된다. 보통 동네 한 바퀴 정도 걸으면 되고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여기서 최근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는 설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개의 수명이 보통 15~20년 정도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14년차 된 설기는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이제는 힘들어한다. 집에 있을 때는 늘 잠만 자고, 밥과 간식을 먹을 때 빼곤 좀처럼 일어서는 일이 없어졌다.
최근에는 산책을 따로 나간다. 아주 짧은 거리만 다녀오고 소변과 대변을 보곤 바로 집으로 들어가려 해서인데 다른 개들과 산책량이 맞지 않아서다. 그리고 가끔씩은 길을 가다가 멍하니 서있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것이 혹시 치매는 아닌지 걱정이 된다. 다른 두 녀석은 아직 건강해 별 걱정을 안 하지만, 두 녀석도 이미 젊은 날과 비교하면 에너지 면에서 큰 차이가 확실히 다르다고 느껴진다
이럴 때 보면 인간과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늙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내 어머니도 언젠가 더 나이가 들면 이와 같아질 거란 생각을 하면 이미 가슴이 아파진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세 마리 모두 피곤했는지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이럴 때 나는 평화를 느낀다. 그저 올해만 무사히 넘기길 바랄 뿐이다.
나도 부상을 많이 당했지만 부상에서 회복하는 속도가 현저히 더뎌졌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예전엔 몇 주만 지나면 금방 회복돼 다시 운동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몇 달이 지나도 다시 운동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회복되었을 때 몸이 주는 신호 및 느낌을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다시 한번 느끼길 바랄 뿐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서러움과 내려놓음의 교차점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할 수 있었던 것들을 하지 못하고, 기억했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해 서럽지만, 그만큼 나이를 먹으면 젊은 것들이 하지 못하는 내려놓는 것이 가능해 그 서러움을 잘 달래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되고,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이 용서되니 말이다.
젊음과 늙음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 공평하다. 사람들은 잃어가는 것들만 집중하니, 젊음을 그리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