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입다.
어렸을 적 나는 늘 반찬 투정을 했다. 음식이 맛이 없다거나, 짜다고 먹을 때마다 불평 불만을 해댔다. 그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말하셨다.
“그래 엄마가 다음엔 더 맛있게 해줄께~”
하지만 그런 말을 믿고 다음을 믿었지만, 다음에도 같은 맛을 유지하는 엄마의 음식에 대해선 어느정도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혼자 끊여 먹는 라면 혹은 외식했을 때 먹는 짜장면 혹은 돼지갈비가 내게는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런 10대를 거쳐 20대와 30대는 대부분의 끼니를 바깥에서 해결했다. 엄마의 손맛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긴 여행을 마치고 30대 후반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맛본 엄마의 손맛은 달랐다.
우선 신기한 것은 엄마의 음식에서 그리운 맛이 났다. 바깥에서 사먹는 밥에선 절대 느낄수 없는 어딘가 투박하지만 정겨움이 이었다. 그래서 다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왜 집밥이 그립다고 하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내 혀와 어머니의 손맛에 세월이 입혀졌다. 김치찌개 하나로 허겁지겁 두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든든함에 행복감이 밀려 왔다. 분명 어머니는 예전에도 같은 레시피의 김치찌개를 내게 해 주었을텐데, 그 때와는 맛과 깊이가 확실하게 달랐다. 김치의 숙성에 따라 달라졌을 거란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먹고 싶은 김치찌개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 밖에다 내다 팔아도 될 정도의 맛이었다.
둘째, 어머니가 유튜브를 이용해 음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근 유튜브에는 없는 정보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셀 수 없는 양의 정보들이 담겨 있는데, 새로 사드린 아이패드로 음식에 대한 갖가지 레시피들을 보면서. 여러 연구를 하신다. 같은 음식을 하면서 재료를 넣는 순서를 바꿔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접목해보기도 한다. 거의 실패가 없는 이유는 더 좋은 재료를 넣다보니 예전에는 없던 음식에 풍미가 살아났다.
셋째,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 내가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나만이 있어 되는 것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공존하고 있다는 안 후로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내게 일어난 모든 일,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 내가 경험하는 것들에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내가 먹는 밥알 하나하나에 농부의 땀을 생각 하다보니 아니 맛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느날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을 걷다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우리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쯤 될까? 어머니와는 길어야 20년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40여년을 지냈는데 앞으로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어머니에게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추천한다. 스테이크며, 놀이 동산이며, 해외여행 등등 살아생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워낙 평소에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인지라 자식들이 돈 쓰는 걸 싫어하셔서 다른 형제 몰래 저번 생신때 큰 돈을 드리니 좋아라 하셨다. (아마 이 돈도 안 쓸거라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나도 그렇고, 모두가 다 그렇다. 어머니의 음식으로 한 생각이 태어나서 이렇게 글을 적어 보았다. 세상에 소중한 사람 아닌 사람이 없다 라는 말과 함께 이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