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번째 - 홍성 -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최근 일본 소도시로 여행을 가는 것이 유행이라 일본으로 가볼까 했지만, 이번에는 일본 대신 동생이 있는 홍성이란 시골에 가보기로 했다. 10년 만에 기차를 탔다. 아침 7시 49분의 무궁화호이다. 기차를 타 본 지도 오래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2시간 남짓 지나 무궁화호는 홍성에 도착했다. 홍성역에 도착하니 동생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동생이 홍성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귀농이니 뭐니 해서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5년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 보면 동생은 홍성이 잘 맞는 것 같다. 현재 홍성에서 아동센터에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동생은 홍성에 와서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하면서 지낸다. 동생의 삶에 대해 부러웠던 점 몇 가지 이야기해보겠다.
동생은 홍성에서 축구를 다시 시작해 홍성 K7 리그를 뛴다. 참고로 동생과 나는 둘 다 축구를 하였고, 축구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나도 몇 해 전까지만 축구를 가르치는 축구 코치였다. 현재 홍성에서 여성 축구팀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는 다시 홍성군 대표 선수로 뽑혀 여름에 열릴 도민체전에 나갈 예정이다. 이 또한 부럽다.
이번 휴가를 준비하면서 계획한 것 중 하나는 동생이 맡고 있는 여자축구팀 훈련을 돕는 것이었다. 이날 비가 와서 취소되었지만 그동안의 훈련 영상을 보면서 열정이 넘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처음 축구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 났다. 동생은 사람들이 쉽지 않고 어려워하는 것을 한다.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같은 날 저녁 동생이 선수로 뛰는 축구시합을 보았다. 뛰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어떻게 뛰는지,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경기후 영상을 보면서 도와줬다. 이날 동생은 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나도 다시 한번 몸 좀 만들어 볼까 하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동생 삶은 이곳에서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졌다. 연극, 조각, 농사 그리고 심리학과 시를 공부한다. 서울 쪽에서 살았다면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것들을 이곳에서 다양한 삶이 방식을 경험하고 있다. 홍성에 내려오기 전 유아체육 일을 했던 동생은 그 경력을 살려 아동심리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감정코칭이란 수업을 들으며 심리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있다. 훗날 이 분야에서 큰 일꾼이 되길 바란다.
또 하나 부러운 점은 홍성 음식이 대부분 맛이 있었다. 많이 와 보진 못했지만 홍성에 오면 꼭 먹고 가는 음식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설렁탕인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설렁탕 중 혀에 착착 감기게 하는 국물 맛이 일품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다면 매일 먹고 싶다. 다른 하나는 직화 주꾸미 전골이다. 불 맛과 함께 탱글탱글한 주꾸미의 맛이 좋다. 홍성에 오면 이 두 음식을 꼭 먹고 간다. 이번에는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도 나왔던 -홍흥집- 이란 맛집의 소머리 국밥을 먹었다. 이 음식 역시 국물이 좋았다. 속이 후련하게 풀어지고 깊은 맛이 좋았다. 먹는 내내 좋은데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혼자 지내다 보니 가끔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지 못했다. 40대란 나이에 대상포진이 찾아왔을 지경이니 어지간히 과로 또는 영양을 챙기지 않은 것 같다. 이번에 내려갈 때 몸에 좋은 비타민을 챙겨 갔는데 이것도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참고로 동생은 4살까지 엄마 젖을 먹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건강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우리 집에선 부상만 제외하면 내가 제일 건강하다.
토요일 오후 앞마당에 있는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아마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들이 바람과 함께 빠르게 흘러 간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툇마루에 앉아 비가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마음 어딘가에 그윽함이 생겨났다. 최근 마음이 집중되지 않았던 안양에서와는 달리 홀로 생각할 시간이 무한대로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비 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연스레 홍성에 와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곳의 조용함에 내면의 소리를 집중할 수 있었다. 온전히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면 속 깊게 깊게 내려가니 캄캄한 내면 깊은 곳에서 어딘가에서 무언가 하나가 불쑥 나타나기 시작해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어느 날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신기했다. 내면에서 다시 밖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멍 했지만 집중했던 탓인지 잠이 와 낮잠을 청했다. 두 눈을 감으며 듣는 툇마루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내 주위를 포근하게 감쌌다.
4월 소도시 홍성의 봄은 다른 곳보다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