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피운 담배를 끊었다.
"담배 끊어, 당신이 먼저 끊어야 내가 끊지.”
남편이 내게 종종 말했다. 남편은 ‘만성폐쇄성 폐질환’이라는 병이 있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서 생기는 병이다. 그럼에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피웠으니 자그마치 50년 동안이나 흡연한 것이다. 오랫동안 피웠으니 끊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끊어야만 한다. 의사가 말했단다. 더 이상 담배를 피우면 죽는 건 시간문제라고.
2023년 12월 어느 날 아침, 남편이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부터 담배 안 피우려“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끊어야 본인도 끊는다더니 내가 아직 담배를 안 끊었는데도 자발적으로 끊기로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계속 피웠다간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서일까, 매일 뱉는 가래가 참기 힘들어서일까, 아니면 나를 두고 혼자 먼 길을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일까. 어쨌든 나는 총대를 메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이제는 내 차례가 왔다. 남편이 담배를 끊었는데 집에서 피울 수도 없고, 밖에서 피우고 들어와도 담배 냄새는 없어지지 않으니 큰일이다. 거기다 ‘내가 끊었으니 당신도 안 끊고는 못 배길 걸’이라며 째려보는 눈빛을 피하기가 힘들었다. 곧, 디데이를 잡아야 했다.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아직 담배 때문에 신체에 이상을 느끼거나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끊어야 하다니 억울했다. 담배 한 대가 주는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찾지 못한 이유도 있다.
2024년 5월 8일이다. 남편이 없는 시간에 베란다에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불시에 담배를 그만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제 그만 담배와 이별을 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대학 3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으니 약 30년쯤 피웠다. 그렇지만 나는 남들처럼 하루에 한 갑을 다 피우거나 그 이상을 피우진 않았다. 한 갑을 사서 이틀에서 사흘 동안 피웠다. 많이 피운 게 아니니 끊어야겠다는 결심이 쉽게 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담배와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다.
끊기로 마음먹은 날로부터 일주일은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담배 끊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담배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는 말을 실감했다. 참는 것을 제일 못하는 나에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고문을 겪는 듯한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남편은 팁을 주었다.
“금연껌을 씹어. 담배랑 똑같은 니코틴이 들어 있어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줄 거야.”
2023년 12월에 담배를 끊은 남편, 2024년 5월 8일에 담배를 끊은 나. 나보다 6개월 먼저 금연을 시작했으니 믿기로 하고 껌을 씹었다. 담배 생각이 덜 났다. ‘괜찮은데.’
식 후, 커피 마신 후, 음주할 때, 담배 생각이 제일 간절했다. 그때마다 금연껌을 씹었다. 마치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골이 핑 돌았다. 심지어 독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담배를 못 피워서 미칠 것 같았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참을만했다. 담배 생각이 나면 금연껌을 잘근잘근 씹었다.
한 집에서 두 명이 담배를 끊고 마주 앉아 금연껌을 잘근잘근 씹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각자의 가슴에 품고 있는 원수를 향해 칼을 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겨울 외딴곳 오두막에 홀로 앉아 아침을 기다리는 중년 아줌마, 그 이상으로 비장하다.
어느 날, 금연껌이 바닥이 났다. 금연껌은 아무 곳에서나 팔지 않는다. 약국에서만 판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껌 30개가 들어 있는 한 곽에 1만 2천 원이다. 흡연을 할 때는 주머니에서 담배값이 샜는데, 금연을 하려니 껌 값이 샌다. 쓸데없이 돈이 새는 건 막아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연 정책을 이용하자. 보건소로 갔다.
“금연하려고요. 금연껌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실적 하나 올리겠다는 듯, 보건소 직원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껌은 그냥 드릴 수 있습니다만, 금연클리닉에 등록을 하셔야 합니다.”
비싼 금연껌을 그냥 준다는데 그깟 등록이 대수랴. 쓰라는 대로 쓰고 껌을 받았다. 각종 캔디와 유산균은 덤으로 따라왔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보건소에 가서 금연클리닉에 등록을 해. 금연껌을 무료로 줘.”
나보다 돈 새는 걸 더 싫어하는 사람이니 바로 보건소에 가서 등록을 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웬걸, 껌이 떨어지면 내가 보건소에 가서 껌을 받아오길 기다렸다. 젠장.
금연클리닉에 등록하면 좋은 점이 많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금연을 응원하는 문자를 보내고, 정기 방문일에는 선물을 한 보따리 준다. 때마다 보건소를 방문해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기는 하다. 방문할 때마다 직원은 묻는다. “잘 참고 있습니까? 힘들지 않나요?” 나는 속으로 말한다. ‘힘듭니다. 매일 생각나고요.’ 차마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2주 간격의 방문이 3주로 늘어나고 한 달에 한 번으로로 바뀐다.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등산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등산은 체력보다 ‘지구력’ 아닌가. 안 되면 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기술도 장착되어 있다. 어떻게든 6개월의 금연클리닉 과정을 마치고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드디어 6개월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보건소에 가는 날이다. 직원은 나를 보자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소변 검사를 할 겁니다.”
직원은 코로나19 자가 검사 할 때처럼 생긴 키트를 내밀었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키트에 소변을 떨어뜨리라고 한다. 5분을 기다린 후, 키트에 두 줄이 생기면 몸속에 니코틴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예상하지 못한 소변검사에 당황했다. 키트에 두 줄이 안 나오면 망신인데 큰일이다. 조마조마했다. 사실은 술자리에 난무하는 흡연자를 피하기 힘들었다. 술자리에 가면 담배 구걸을 했다.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금연껌으로 때웠다.
잠시 후, 키트에는 선명하게 두 줄이 나타났다. 금연에 ‘성공’하고야 말았다. 비록 눈 가리고 아웅 했을지라도 말이다. 보건소 직원의 얼굴엔 처음보다 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금연 성공 선물을 한 아름 건넸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저 사실은 담배 피웠어요. 어쩌다 한 두개지만. 키트가 불량인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