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여름'을 마치면서
“어떻게든 쓰고, 닥치고 공개한 뒤에 글을 써본 각자의 느낌을 나누는 모임, ‘창밖은 여름’에 참가하실 분을 모집합니다.”
지난 5월 중순, 탐사보도 매체 <셜록>은 <셜록>후원자 왓슨을 대상으로 에세이 쓰기 모임 참가자를 모집했다. 모임 이름은 '창밖은 여름'이다. '창밖은 여름'은 2025년 5월 28일에 시작해 2025년 8월 20일에 끝난다.
모임의 원칙은, 10주 동안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쓰고(마감시간은 일요일 오후 9시), 2주에 한번 오프 모임에서 만나 자신이 쓴 글을 소개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느낌을 나눈다. 8월 6일, 9회 차의 글을 쓰고 오프라인 모임에서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이 내 글을 읽는다 생각하니 글 쓰는 내내 마음이 편했어요.”
“어떤 편견과 선입견이 없어서 ‘해방감’을 느끼며 글을 썼어요.”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어요.”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읽는 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 이야기를 선뜻 쓸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일기장에나 쓸법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초등학교 때 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보는 것만큼 스릴이 있었다. 친구의 일기장을 몰래 읽다가 들키면 최소한 ‘절교’이거나 ‘왕따’가 될 게 뻔할 텐데, '창밖은 여름'은 그런 위험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희로애락이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썼다. 누가 볼까 하는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일 텐데 내가 읽어도 되나, 하는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다.
자신만의 아픈 이야기, 쉽게 꺼내지 못하는 고민, 가슴에 맺힌 한,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꿈, 그런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답고 귀한 행위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친구의 일기장을 본 후부터는 나도 친구처럼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써보고 싶었다. 친구의 문체를 흉내 내보기도 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했다. '창밖은 여름' 필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추억이 소환되었다.
'창밖은 여름‘을 꾸린 호스트, 박상규 기자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말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써야 합니다. 철판은 두꺼울수록 좋습니다. 에세이 10편을 다 쓰면 참가비 오만 원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오만 원을 돌려주겠다는 말보다 철판을 깔라는 말에 더 꽂혔다. ‘철판’은 나의 전문 아닌가.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는 누구보다 의기양양하게 모임방을 나섰다. 그리고 외쳤다.
“저는 이 모임에 글 쓰러 왔지만 오프 모임이 끝난 후에는 뒤풀이를 꼭 하고 싶습니다. 뒤풀이 없는 모임은 앙꼬 없는 찐빵이죠.”
나의 본색을 드러나자, 박상규 기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할 말을 대신해 주어 고맙다는 듯, “콜”을 때렸다.
매주 올라오는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은 얼굴과 이름이 매치되지 않아 누구의 글인지도 몰라서 몰입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회차가 늘수록 글쓴이와 얼굴이 일치되었고,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감정이입이 되어 공감 댓글 달기 바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뭘 믿고 자신만의 고민을 털어놓고,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이야기를 쓰고, 동거인의 흉을 보고, 자신의 단점을 스스럼없이 꺼내 놓을까.
글은 멤버들만 보는 단톡방에만 올리는 게 아니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자신의 SNS에도 업로드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겁도 없이 쓴다(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오리엔테이션에서 호스트가 “철판 깔고 쓰라”고 한 말을 이렇게 잘 듣다니, 신기했다. 세상에는 나처럼 간 보는 사람보다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안심(?)했다.
10주 동안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은, 간헐적으로 글을 써 본 사람이라도 힘든 일이다. 나는 글을 처음 써보는 게 아니니 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회차가 더할수록 감당키 힘든 일을 저질렀다는 현타(현실자각타임의 준말)가 왔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쓴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첫 번째 오프모임에서 자기 소개할 때, 글(에세이)을 처음 써본다는 분이 많았다. 그말을 듣고 왠지 마음이 놓였다. 멤버들이 첫 번째 업로드한 글을 본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질투심이 타올랐다. 아니, 이렇게 잘 쓰면서 초보라고 하다니, 속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철학은 ‘사람은 자고로 겸손해야 한다’다. 멤버들이 쓴 글을 보고 나는 겸손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피라미’였다. 내 앞에는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기에 나는 추임새만 넣으면 되는 것이다. ‘피라미’인 나는 매주 일요일 밤이면 올라오는 고수들의 글을 읽으며 한 여름밤의 더위를 식혔다.
고수들의 향연은 목요일 오후부터 시작된다. “숙제를 완료했다”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메시지가 올라오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 주제도 못 정했는데, 벌써 숙제를 끝냈다고?’
중얼거림에는 시기와 질투가 담겼고, 평온했던 피라미의 마음은 급해졌다. 곧이어 ‘나도 얼른 써야 한다’는 동기부여로 승화되어 노트북을 열었다. 이리저리 떠돌던 글감의 ‘파편’은 얼른 끼워 맞추라고 아우성쳤다. 자판을 두드리는 나를 보며 생소함을 느꼈다. ‘쓰기 싫다’는 아우성을 잠재우고 ‘써야 한다’로 바뀌는 것은 마치 ‘글쓰기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같이 쓰면 쓰기 싫어도 쓸 수밖에 없다는 신기한 경험을 ‘창밖은 여름’에서 했다. 놀랍다).
요즘 한승태의 <어떤 동사의 멸종>(시대의 창, 2024)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AI의 등장으로 사라질 확률이 높은 직업군 네 가지를 저자가 직접 취업해서 겪은 이야기를 썼다. 저자는 ‘쓰다’라는 챕터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썼다.
“글로 세상을 상관있게 만들고 싶었다. 한국어에서 가장 공격적인 단어가 바로 ‘상관없어’라는 말이라고 믿었다. 칼이나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나랑 상관없어’는 관계를 죽이고 환경을 죽이고 세상을 죽인다고 믿었다. 사람과 닭이 상관있게 되기를, 사장가 직원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인간과 지연이 서로 상관있게 되기를 바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관있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한승태가 쓴 저 말을 보고 ’창밖은 여름‘의 멤버들이 생각났다. 아무 상관없이 만난 사람들이 에세이 10편을 쓰고 서로의 비밀을 털어 놓았고, 무엇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알았고, 꿈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상관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한여름밤의 ‘꿈’이 이렇게 달콤할 줄은 몰랐다.
글 쓰는 일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외부와 단절하고 집중해야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해서 ‘글 감옥’에 비유한다. 나는 약속한 10편을 쓰기 전에 글 감옥에서 탈옥하고 싶었다. 어느새 시간은 흐르고 감옥생활이 끝남을 알리는 마지막 글이 올라왔다. 모범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출소하는 날이 왔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다. 올해 나의 광복절은 8월 10일이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하나 더 외친다. “‘창밖은 여름’ 만세!”
한여름 더위에 맞서 10편의 글을 써낸 <창밖은 여름> 동지들에게 경의를 보냅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드디어 ‘해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