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아십니까?

by 삼치

“제발 내 옷 좀 사지 마. 내 옷은 내가 알아서 살게.”


2주 전, 마트에서 세일하는 남성용 바지가 있길래 샀다. 남편은 옷을 보자마자 어김없이 쿠사리를 했다. 나는 왜 본인이 싫다 하고 사지 말라고 하는 걸 굳이 살까? 그를 너무 사랑해서? 닭살 부부는 나한테 안 어울리니 패쓰. 하지 말라는 짓 해서 더 미움받으려고? 설마. 내가 머리가 나빠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렇다. 매일 보는 사람이니 내 눈이 즐거워야 하고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 이런 마음을 갖는 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까? 꼴랑 4만 원짜리 바지 하나 사고 쿠사리 먹고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살면 된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한집에 살다 보면 ‘존중’이라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사는데 어떻게 간단한 문제만 발생하겠는가. 간단한 문제도 복잡해지는 게 부부 문제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부부 문제가 아니다. 나는 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못 들어주는가에 관한 얘기다. 남편은 내게 항상 “머리 좀 짧게 자르지 마”라고 한다. 그러나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남편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이 내 머리는 언제나 짧다. 남편은 더 이상 내 머리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는다. ‘포기’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단어인 게 확실하다.


생긴 것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악도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오랜 시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서 어느 날 결혼을 한다. 결혼은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결혼해서 행복한 부부가 얼마나 될까? 그것이 궁금하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결혼생활 이야기가 나왔다. 결혼생활 2년 차인 사람은 아직 결혼생활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결혼 생활이 힘든가요?”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있지만 간단치가 않다. 힘든 점이 여러 가지이기도 하고 함께 하는 결혼생활이기 때문에 나 혼자만 힘든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다(이 와중에도 상대방 생각을 하는 건가? 나 같지 않군). 결혼 생활이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이제라도 안 것이 어디냐). 나는 세상 모든 일이 내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줄 알던 사람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10년 7월,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는 55세, 나는 41세였다. 그 당시 남편에게 나이를 물었더니 40대 중반이라고 뻥을 쳤다(나중에 술 먹고 주민증을 내밀었는데 56년생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기 결혼인가?).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사람과도 결혼하지 않을 생각으로 살았다(이유는 본인 닮은 아이를 낳기 싫어서란다). 거기다 이 세상과는 일찍 하직하려는 마음도 있었다(50세에 죽으려고 했는데 55세까지 생명이 연장되어 나를 만남). 그러던 그가 나를 만나고 함께 살 마음을 먹었다(이것은 기적인가?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을 연장한 의인인가? 설마).


그는 점잖다. 나이 차가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함부로 무엇을 시키지 않는다. “야, 너”라는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태도가 점잖으니 나도 거기에 맞춰야 하는 의무감(?)이 생긴다(가까운 사람끼리는 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은 누가 했을까? 그 말 만든 사람에게 꿀밤을 세게 때리고 싶다). 모양은 부부인데, 내용은 스승과 제자 같은 분위기다. 덕분에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남의 얘기를 3분쯤 듣고 질문은 10개 한다(이건 나랑 비슷하다). 이야기를 잘 듣고 반드시 피드백을 준다. 피드백에는 100% 칭찬만 있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인군자도 아니고 어떻게 100% 칭찬만 있는 피드백을 하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는 서당개 15년 차다. 풍월을 읊고도 남는다. 나도 이제 남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칭찬부터 한다(믿거나 말거나). “자고로, 사람과의 대화는 뒷담화 하는 맛이 제일인데”라는 말은 먼 추억이 되고 말았다.


아주 가끔 누군가와 다툰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이야기를 하면 남편이 말한다.


“남하고 싸운 얘기는 되도록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에게 전염돼서 기분이 안 좋아지거든.”


‘나는 당신과 같은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못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을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사흘동안 시베리아 벌판의 세찬 바람을 맞을 게 뻔할 테니까.


그는 삼시 세끼를 꼭 먹어야 한다.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나물 반찬 한 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 나는 어느새 삼시세끼 밥상에 나물 올리는 베테랑 주부가 되었다. 묘안을 냈다. 밥은 사흘에 한 번만 할 수 있도록 많이 하고, 국은 사흘 동안 먹을양으로 끓였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클레임이 없다. 다행인가?


그는 운동에 미친 사람이다. 삼십 대부터 헬스장에 다니며 몸을 만들었다(팔뚝과 가슴 근육 장난 아님).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먹으면서 배가 나오는 건 못 참는다. 배 나온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운동을 한다. 코딱지만 한 거실에 러닝머신과 덤벨, 아령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나도 어느새 갱년기가 왔다. 밥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나오고 몸무게가 자꾸 는다.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 세 가지가 있다.


“뱃살 빼“, ”문 닫아“, ”밥 줘.”


요새는 한 가지 더 늘었다.


“운동해.”


술 좋아하는 나는 가끔 대중교통 막차를 놓친다. 장롱면허인 남편 찬스를 쓸 수밖에 없다.


“어딘데? 기다려”


불안한 운전 실력이지만 기다리면 온다.


나의 하루는 냉장고에 나물 반찬이 얼마나 남았나를 살피는 것과, ‘오늘은 어떤 나물을 사서 무칠까’로 시작한다. 15년 전만 해도 나의 아침은 ‘오늘 술 약속은 뭐였더라?’로 시작했는데 말이다. 나의 리즈 시절은 이제 끝났다. 남편이 출근하면서 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고구마 순이 나올 때가 됐는데…”


나는 오늘도 ‘도’ 닦는 마음으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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