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백

by 삼치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에서 소식지 만들 사람을 구합니다.”


오늘 신문에는 어떤 광고가 실릴까? 아침마다 잔뜩 기대를 안고 신문을 펼친다. 내가 기다리는 광고는 사회단체에서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거나, ㅇㅇ로 답사 참여자를 모집한다거나, ㅇㅇ 학교(단체)에서 ㅇㅇ 강의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35년 전의 한겨레신문 광고란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실렸다.


종이 신문을 본 지 35년 째다. 요즘 한겨레신문의 광고면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없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필요한 정보의 60% 이상을 한겨레신문 광고에서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 쓴 문구도 그 당시 한겨레신문 광고면에서 본 것이다.


신문은 주로 학교 가는 길 버스와 전철 안에서 봤다. 여유가 있으면 전철 타기 전에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탔다. 버스와 전철로 1시간가량 걸리는 통학길에서 신문을 읽고 소설책을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련한 추억이다. 당시엔 전철에서 신문 펼치고 보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한 번은 구로구에 있는 <서울진보청년회>에서 바둑 모임을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구로까지 가서 바둑을 둔 적이 있다. 실은 운동권 단체의 소모임이었다. 생각해 보면 기분 좋은 ‘낚임’이었다. <구로역사연구소>에서 동학농민운동 100주년 기념 산행을 간다는 광고를 보고 다녀오기도 했다. 그 후 그 멤버들이 산악회를 만들어 35년째 등산을 하고 있다.


신문 하단 왼편, 가로 5센티미터 세로 5센티미터의 코딱지 만한 크기에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광고, 그 광고는 나에게 구세주와 같았다. 유명 작가가 쓴 연재소설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렜고,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광고를 통해 쌓은 스펙(?)은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었다.


위 광고에 본 단체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활동하는 곳이었다. 학부를 막 졸업한 나는 취업 시즌을 놓쳤고, 마땅히 취업하고 싶은 곳도 없었다. 그런데 장애인운동을 하는 곳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니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부터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고, 장애인 문제는 많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나 역시 경미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가. 당사자로서 이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모습을 고발하고 장애인 차별을 없애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


단체의 대표와 간단한 면접을 보고 바로 활동을 시작했다. 가난한 장애인 단체이다 보니 활동비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장애인 차별을 막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 업계는 사회복지사를 좋은 일을 하는 사람, 봉사를 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 착한 사람으로 인식하던 시기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30년 전에는 더했다.


나는 사회복지를 단순히 사회 서비스에 국한하고 시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반대했다. 서비스도 좋지만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정책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었다.


단체의 활동은 지체장애인 중심으로 움직였다. 지체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이동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리프트라는 기구가 있었다. 리프트는 휠체어를 탄 채로 계단을 이동하는 기구인데 위험률이 매우 높다. 우리는 장애인의 이동수단 개선을 요구했고, 모든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으며, 장애인도 교육받을 권리를 외쳤고, 장애인의 고용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했다.


장애인 단체니까 장애인 당사자가 활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비장애인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당사자도 아닌데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을 하겠다고 싸우는 모습이 이해하기 힘들기도 했다. 이동의 제약도 없고 나처럼 듣기가 취약한 것도 아닌데, 왜 힘든 장애인 운동을 하겠다고 나섰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이랬다. ‘살면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기 때문에 어쩌면 예비 장애인인 본인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단순한 이유지만 전선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각오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느 분야는 안 그렇겠냐마는 장애인 운동은 정말 힘든 싸움이 매일 벌어진다. 어쨌든 나는 그들이 너무 훌륭하고 대단해 보였다. ‘저 사람들은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까이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동기 중에 뇌병변 장애인이 한 명 있었다. 그의 말은 발음이 꼬여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그 많은 장애인은 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나? 그것이 알고 싶었다. 학부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장애인운동을 할 거라는 예측을 못 했기에 궁금증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 때가 많았다. 내가 일했던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에는 나 외에 청각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수어를 쓰지(배우지) 않고 입모양을 보면 대화가 가능했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청각장애인을 만나기 힘든 것은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체 장애인은 왜 보이지 않을까. 등록장애인 중 지체장애인의 비율은 43%(2024, 복지부 통계)나 되는데 말이다. 활동을 하면서 알았다. 그 많은 장애인들은 다 시설에 수용되어 살고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장애인이라는 단어만 알았지 당사자를 실제로 만나본 경험이 없다 보니 장애인 활동가를 만났을 때 많이 생소했다. 지팡이를 짚고 움직이는 사람, 다리의 길이가 달라서 뒤뚱거리며 걷는 사람, 온몸이 뒤틀려 휠체어를 타는 사람, 뇌병변 장애로 발음이 정확치 않은 사람 등. 처음엔 어떻게 눈을 맞춰야 할지 몰라서 내 시선은 항상 어정쩡한 곳에 머물렀다. 어쩌면 상대방도 나와 같은 입장이었을지 모른다. 수어를 쓰지 않는 청각장애인과의 원활한 소통 방법을 모를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자, 처음의 생소함은 온 데 간데 없고 원래의 싸가지 없는 나로 돌아갔다. 선배에겐 개기고, 후배에겐 선배 대접을 바라는 딱 꼰대의 모습으로 말이다. 한눈팔 겨를이 없다. 하나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장애냐, 보이지 않는 장애냐의 문제로 옥신각신 하기도 했다.


“쟤는 본인도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이 아닌 것 처럼 행동해.”


어느 날 한 선배가 수군거리는 걸 들었다. 장애계 안에서도 장애의 종류에 따라 편견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씁쓸했다. 싸움꾼인 나의 본색을 드러내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장판(장애인 운동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전술을 써야 했기에 참았다. 곧이어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란 걸 알고 오해를 풀었다.


청력이 안 좋다는 것은 이동의 제약은 없지만 소통에는 치명적인 제약이 따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누군가와 소통할 때는 상대방의 세심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입모양을 봐야 말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입 모양에도 신경 써야 하고, 발음에도 신경 써야 한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나에겐 치명적이다. 사투리 특유의 억양은 정확한 발음을 내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랑 대화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까. 상대방의 힘듦을 짐작할 줄 아는 사려깊음을 배운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은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동의 제약이 있지만 이동의 제약은 사회가 해결하면 된다. 장애를 장애라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배웠다.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을 때, 당사자는 좌절하고 위축된다. 장애를 느끼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외치지 않으면 장애는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는다. 때로는 형벌이 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듯이, 모든 문제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경미한 청각 장애를 가진 나도 마찬가지다. 장애가 있음에도 온 세상이 내 세상인 것처럼 마음껏 활동하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철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내 뒤에 있는 든든한 사람들 덕분이다. 그게 누구냐고?


바로 ‘당신’이다. 그동안 쑥스러워서 하지 못한 고백을 이제야 한다.


“당신들을 사랑한다. 고맙다.”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는 현재의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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