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내 특기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 마련 콘서트를 합니다. 건립기금은 총 50억 원이 필요하고, 현재 약 48억을 모았습니다. 2억 정도가 부족합니다. 부족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 종합예술단 <봄날>과 <평화의 합창단>이 재능 기부 공연을 합니다. 꼭 와주세요.”
지난 7월 5일 토요일, 내가 있는 단체 카톡방에 올라온 글이다. 나는 이미 건립기금에 쥐똥만큼을 보탰다. 그런데 합창공연까지 해서 나머지 금액을 모아야 한다는 글을 보자 한번 더 손을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이라 할 일이 많았지만 합창공연을 보기 위해 노무현시민센터로 향했다. 아름다운 화음이 어우러져 소리를 내는 합창은 매력적인 예술이다. 나는 어느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나도 합창단원이면 얼마나 좋을까.’
중·고등학생 때는 교내 합창대회가 있었으니까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합창을 했다. 어른이 되고는 합창이 하고 싶으면 합창단을 찾아가야 한다. 청력이 안 좋아진 후부터 나의 음정은 정확한 음을 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부르는 노래의 음이 원음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망설였다. 그렇지만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픈 게 사람 심리다. 어느 날 합창이 너무 하고 싶어서 지휘를 업으로 하는 분에게 물었다.
“제가 합창을 하려는데 해도 될까요?”
“합창은 화음이 중요한 장르예요. 한 사람이라도 음이 튀면 망합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합창은 안 된다고 말하는 그분이 얄미웠지만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합창만 아니면 되는거네. 그럼 독창을 하겠어.’
술 마실 기회가 잦았던 20대부터 40대까지는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엔 반드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손들고 “제가 부르겠습니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 이름을 호명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가 끝나면 사람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음정이 90% 이상 원음과 다를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박수는 예의상 친 거였다(노래를 잘 불러서 친 줄 앎). 내 노래를 듣다가 웃은 건, 음이 안 맞아서 웃은 거다. 내 음정이 원음과 다르다는 것을 안 것은 불과 10년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CD플레이어로 박인희의 <세월아>라는 노래를 듣다가 따라 불렀다. 자신감이 생겨서 남편 앞에서 불렀다. 남편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가서 절대 노래 부르지 마.”
내 음이 그렇게 많이 틀리나? 도대체 원음과 얼마나 많이 다르길래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까지 할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좌절 속에서 보내다가 결론을 내렸다.
‘나의 노래 인생은 이제 끝이다. 어디 가서 절대 노래 부르지 말자.’
인생의 즐거움 한 가지가 사라졌다. 정 노래가 부르고 싶으면 사람이 없을 때 부르거나, 내 노랫소리를 이상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만 불렀다. ‘노래 한가락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겼는가, 얼마나 많은 삶의 애환을 노래 한 소절에 담고 있는지를 안다면 음이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은 거 아닌가’라고 우겼다. 눈물을 머금고 음치 인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속으로는 ‘음치도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이라고 외쳤다.
2022년, 5월. 코로나 막바지 무렵이었다. 동네 합창단에서 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언제 했냐는 듯이 지원을 하고 말았다. 간단한 오디션을 본 후에 단원으로 입단시키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마을 합창단원도 오디션을 보고 결정한다는 말에 약간 의기소침했지만 쫄지 않았다. 지휘자 앞에서 당당히 오디션 곡을 불렀다. 곡명은 <오빠 생각>.
음정이 안 맞을 테니까 다른 걸로 점수를 따기로 마음먹었다. 서울 가신 오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동생의 감정을 싣고 불렀다. “비이이단 구우우두 사가지고 오오신 다아더니~~” 노래가 끝난 후, 지휘자가 말했다.
“음치라더니 거짓말이었네요. 잘 부르셨어요.”
순진한 나는 지휘자의 말을 100% 믿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합창단 오디션에 합격했어. 두 달 후에 공연도 한대. 그때 꽃다발 사가지고 와.”
기쁜 나머지 SNS에도 합격소식을 올렸다. 한 페친이 댓글을 달았다.
“음정이 좀 안 맞는다고 불합격하는 동네합창단은 지구상에 없어. (그러니 너무 좋아하지 마)”
괄호 안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딱 그런 뉘앙스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합창 연습을 하러 가는 발걸음은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렜다.
두 달 동안의 합창연습을 마치고 피날레 공연을 했다. 공연에서는 합창곡을 네 곡 부르고 독창을 한 곡씩 불렀다. 합창에서는 내 목소리가 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되도록 튀지 않으려고 애썼다. 독창은 내 맘대로 부르면 되는 거니까 자신 있게 부를 줄 알았다. 내 차례가 왔다. MR에 맞춰 들어가야 하는데 첫 음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독창도 망했다. ㅜㅜ
3년 전 일을 굳이 떠올린 건 나에겐 여전히 합창단원으로 노래 부르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노래 부르면 합창단 망한다는 소리를 듣고도 접을 줄 모르는 ‘꿈’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철이 없어서라는 말로는 부족한데. 음…. 나는 그냥 생긴 대로 살란다. 아래와 같은 바람을 살며시 꺼내면서.
“음치라도 합창단원으로 끼워줄 합창단을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