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사연을 쌓아가는 것. 좌절과 낙담과 부끄러움과 이별을 만나는 일. 어찌 힘겹지 않겠는가, (중략) 삶의 두께는 타인의 사연을 얼마나 껴안느냐에 달려 있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신문을 본다. 가장 시간을 할애하는 코너는 칼럼 코너다. 한겨레신문, 2025년, 6월 27일 자, 말글살이 코너에 김진해 교수가 사연이라는 주제로 위와 같이 썼다. 무척 공감이 갔다.
사연이라는 단어를 읽고 생각이 났다. 16년 전이다.
“이제 졸업을 했으니 나랑 같이 쪽방촌에서 일해보자.”
2009년 2월, 죽을동 살동 쓴 논문이 통과되어 석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 이제 취업만 하면 원하는 대로 삶이 굴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취업을 할 만한 곳은 없었고, 오라는 곳은 더 없었다. 하루하루 의기소침하며 지내던 내게 한 친구가 콜을 보내왔다. 타이밍 절묘하게 연락한 친구가 얼마나 고맙던지 업고 다니고 싶었다.
“당장은 일이 힘들고 급여도 충분히 못 줄거야. 만든 지 1년도 안 되었거든.”
친구는 가난한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쪽방촌에 주민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야심찬 사업에 나를 민 것이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활동비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을 수 있고, 너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될”거라는 말만 믿었다.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쓴 논문을 현장에서 써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나, 싶어 그 손을 잡았다.
그런데 웬걸, 개미똥만 한 사무실에는 변변한 컴퓨터 한 대도 없고 그야말로 판자집 같은 곳에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 편에 놓인 냉장고 한대가 ‘어서 와, 기다렸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기로 두 번째로 치면 서러운 쪽방촌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학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기 때문에 가난은 낯설지 않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겉으로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포스였지만 현장에 가니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서울역 맞은편의 동자동에는 지은 지 50년은 족히 넘은 건물이 여러 채 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형태를 하고서 말이다. 건물 하나를 쪼개고 쪼개서 만든 방이 수 백개 있다. 방 하나의 크기는 사람 하나 누우면 더 이상의 공간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작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놀라움에 입을 벌리고 서 있기를 잠시, 누가 볼세라 얼른 표정을 숨겼다. 숨을 고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쪽방촌 주민은 이제부터 내가 책임진다.’는 정체불명의 ‘깡’이 솟구쳤다.
출근을 하니 아침부터 민원이 줄을 잇는다.
“통장이 압류되어 기초생활수급비를 탔는데 찾아서 쓸 수가 없어요. 도와주세요.” “우리 남편이 아파요. 어깨에 종양이 생겼는데,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대요.” “남편이 폭력을 자주 써요. 아이들과 있을 곳이 없어요.” “노숙하다가 왔어요. 빈 방좀….”
어느 것 하나 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까? 우선, 당장 방이 있어야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테니 방부터 구해줘야 한다. 쪽방에 사는 분이나 쪽방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숙을 끝냈거나 노숙 생활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서 오는 분이다. 빈방이 종종 있다. 쪽방이 답답하다고 떠나거나 월세를 내지 못해 다시 노숙으로 돌아가는 분들이 있어서다. 부루스타, 밥 솥, 밥그릇, 숟가락, 옷 가지 몇 개를 걸면 누울 공간이 겨우 생긴다. 그래도 비와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노숙할 때와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
낡은 건물의 낡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빈 방이 있나 찾아본다. 빈 방이 있으면 건물 관리인을 만난다. 건물 관리인은 건물 주인이 고용한 사람으로 방을 찾는 사람에게 방 값을 받는 일과 자잘한 관리일을 한다.
다행히 빈 방이 있다. 방을 찾은 사람은 안도하며 짐을 푼다. 짐이라고 해봐야 작은 가방 한 개가 전부다. 비로소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 숨은 는 나의 안도로 이어진다. 오늘도 민원 한 개를 해결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민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굴린다. 다음은 압류된 통장을 풀어야 하는 일이다.
“통장이 묶인 것은 저희가 풀 수 없어요. 법원에 가서 압류 통장 해제 신고를 해야 합니다.”
당장 해결될 줄 알았던 민원인의 얼굴엔 먹구름이 낀다. 돈이 있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니 얼마나 애가 탈까. 내 얼굴을 보면서 어렵게 말을 꺼낸다.
“통장이 풀리면 드릴 테니 2만원 만 빌려주실 수 있어요?”
단돈 2만 원을 빌리기 위한 말을 하는데 얼마나 많이 망설였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바로 답했다.
“그럼요. 빌려드리고말고요”
통장이 압류된 주민과 함께 법원에 가는 일은 다음날 할 일로 메모장에 적는다. 이제 퇴근을 해볼까 하는 순간, 사무실의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린다. 한 손에는 소주를, 다른 한 손에는 내용물이 불분명한 검은 봉지가 들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도 제시간에 퇴근하기는 틀렸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술은 혼자 마시면 안 돼요.”
이미 전작을 하신 듯 눈이 풀렸다. 할 얘기가 있는 듯하다. 나는 어제도 술을 마셨지만 주민 혼자 술을 마시게 둘 수 없어서 함께 마시기로 한다. 주거니 받거니 잔이 오간다. 주민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한 평 쪽방에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이야기 나눌 사람도 마땅찮으면 얼마나 서글플까 하며, 공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나에게 같이 일하자고 한 친구는 나보다 한 술 더 뜬다.
“네네.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친구가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치는 맞장구는 어느새 흥겨운 추임새가 된다. 술 한잔 들어가니 금세 기분이 알딸딸하다. 머릿속에는 두 가지 걱정이 생겼다. ‘이 술자리가 오늘 밤 안으로 끝날 수 있을까’하는 가벼운 걱정, ‘오늘은 유리로 만든 저 미닫이 문이 안 깨지고 마무리될까’하는 큰 걱정이다.
즐거운 얘기는 아니어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주민과 동화된다.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해 가출한 아들(딸)이 되고,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해 아버지에게 원망 가득한 자식이 되고, 집이 싫어서 가출해 홀로 살다가 사기당해서 엄청난 빚을 진 채무자가 되고, 아이가 네 명 있는데 다 성이 다르다는 젊은 엄마가 된다.
2년 동안 주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자나 깨나 주민들 걱정으로 살았다. 주민들의 어려움을 듣고 문제를 풀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순간이 언제였나 싶다. 문제가 해결되면 “고맙다.”며 과분한 인사를 받을 때면 한 없이 의기양양했다. 그때 주민들에게 받은 사랑,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이 사는 주민에 대한 존경심, 서로에게 갖는 고마움은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받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활동을 마치고 보니 나는 어느새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매일 밤 주민들과 마셨던 술을 주민들이 없는데도 홀로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그렇게 매일 술 마시면 알코올중독자 되기 십상이야.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싶어?”
내가 알코올중독자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무서웠다. 그리고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들이 생각났다. 퀭한 눈, 검은 얼굴, 휘청이는 몸, 마른 체격. 식사를 제때 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분들의 특징이다.
나도 그랬다.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입맛이 없었다. 밥을 먹긴 하는데 많이 먹지 않았다. 몸에는 힘이 없었다. 축 쳐진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술과 함께 하루를 마감했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가 몰라보게 줄었다. 돈 안 들이고 다이어트를 했으니 좋았으나 기분 좋은 다이어트는 아니었다. 쪽방촌 활동을 할 때의 몸 상태다.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술을 끊어야 하나, 줄여나 하나’
남편도 술을 마신다. 술을 1도 안 먹고 나에게 술을 줄이라고 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본인도 술을 마시면서 나에게 술을 못 먹게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만 남편은 매일 먹지 않는다는 것, 술 먹을 때는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마신다는 것이 나와 달랐다. 그렇지만 남편은 한번 술을 마시면 미친 듯이 마신다. 그리고 항상 필름이 끊긴다. 나는 조금씩 매일 마신다.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하루의 마침표를 술로 찍었다. 점점 눈치가 보였다. 같이 사는 사람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는 게 예의라는 걸 얼마 후에야 알았다. 나의 단점은 남들보다 깨달음이 늦다는 점이다.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길 바라면 나도 상대방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한다는 걸 안 후, 매일 마시던 술을 이틀에 한번 마시는 걸로 바꿨다.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을 거치지 않으니 사는 맛이 없다. 대신 나도 남편에게 큰소리 칠 명분이 생겼다.
“당신 말대로 나는 이제 매일 술 안 마시니까 당신도 술 좀 작작 마셔.”
사연 많던 동자동 주민들은 이제 술 좀 덜 마시고 잘 살고 계시려나?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어서 “문 국장, 뭐 해?” 라며 미닫이 문을 열던 주민들이 그립다. 오늘은 술을 안 마셔서 그런가, 환청이 들렸다.
“문 국장, 한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