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상으로 전하는마음의 위로
그대들이 기쁠 때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던 그것이 지금은 기쁨을 주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대들이 슬플 때도 마음속을 들여다보십시오.
진정 그대들은 한때 기쁨이었던 그것으로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마음이 힘들거나 지칠 때 들여다보는 문구다. 평소 교훈서나 자기계발서라면 질색을 할 정도로 싫어했지만, 예외가 있다. 이른바 성서라 불리는 칼릴 지브란의 책 <예언자(The Prophet)>다. 이 책은 오래도록 상처 받은 나의 마음을 위로했다. 페이지에 깃든 메시지 하나하나가 먼지 같은 내 마음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문득 슬퍼지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 책을 가장 먼저 찾곤 한다.
20세기 예언자로 불리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1900년대 초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한 레바논의 대표적인 작가다. 탄압 받는 이민자의 후손이었지만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술가로 성장했다.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아랍어로 씌어졌는데 당시 그가 쓴 희곡은 아랍권역에 널리 알려져 ‘지브라니즘(Gibranism)’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였다.
20세 즈음부터는 영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예언자>다. 지브란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랑, 결혼, 자녀, 일, 먹고 마시는 것, 기쁨과 슬픔, 죽음 등 인생의 근본을 이루는 스물여섯 가지 질문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답한다.
그의 책에서 영감을 얻은 연출자 로저 알러스는 지난 2014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Kahlil Gibran's The Prophet>’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발표했다. 로저 알러스는 ‘라이온 킹(1994)’ 감독으로 알려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다. 감독은 『예언자』에 등장하는 스물여섯 가지 질문 가운데 8가지를 추려 각각을 세계적 인디 애니메이터들의 작품으로 엮었다. 개성 넘치는 8가지 단편이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독특한 구조다. 음악에는 첼리스트 요요마, 영화 <원스>의 주인공 글렌 헨사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가 참여해 ‘아트메이션’으로서의 완벽성을 더했다.
영화의 큰 스토리는 천방지축 소녀 알미트라와 시인이자 망명자인 무스타파와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를 잃은 상심으로 말을 잃은 알미트라는 동네의 소문난 말썽꾸러기다. 어느 날 시인 무스타파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몰래 숨어들어간 집에서 무스타파를 만나게 되고 알미트라는 그의 따뜻함과 통찰력에 닫혔던 마음을 연다. 하지만 만남도 잠시, 7년 만에 구금이 풀린 무스타파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구로 향하는 길에 마을 사람들을 만나 삶과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무스타파가 전하는 주옥같은 삶의 메시지를 애니메이션과 음악으로 표현했다. 예컨대, 아일랜드의 애니메이터 톰 무어(Tomm Moore)는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평면적이고도 화려한 작화로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그려냈다. 무스타파의 언어는 글렌 헨사드와 리사 해니건이 아름다운 듀엣으로 노래했다.
사랑은 사랑 외에 아무것도 주지 않고
사랑 외엔 아무것도 취하지 않네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 당하지도 않네
사랑만으로 충분하기에
개인적으로는 ‘아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 깊었다. 지브란은 “아이들은 그대들을 거쳐서 왔으나 그대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비록 그대들과 함께 지낸다 해도 그대들의 소유물은 아니다”라며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대해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데미안 라이스가 이를 가사말로 노래했으며 미국의 니나 패일리(Nina Paley)가 그림자 인형극풍의 독특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이 밖에도 각각의 에피소드가 각각의 개성 넘치는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해 가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노래 대신 무스타파역을 맡은 배우 리암 니슨이 잔잔히 시를 읊조리는데 이 또한 독백의 노래처럼 듣는 귀를 황홀하게 만든다.
직접 각본까지 쓴 로저 알라서 감독은 칼릴 지브란의 원작이 주는 감독을 전달하는 동시에 독립된 영화로서 극적 요소를 살리는 데도 탁월했다. 무스타파는 구금이 풀려 고향으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지만 이는 군부의 계략이었다. 그의 시가 불온하고 사람들을 선동한다며 자신의 생각과 가르침은 모두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의 선택지는 죽음뿐이었다. 하루 동안의 말미를 얻은 무스타파는 감옥에 갇혀 절망한다.
그런 그에게 삶의 신념을 돌아보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알미트라였다. 한밤 중 감옥 창살에 몰래 찾아온 알미트라는 그를 위해 용기를 낸다. 무스타파가 자신에게 그러했 듯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해서. 2년 간 침묵으로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알미트라는 말한다.
날 수 있잖아요. 날아갈 수 있잖아요. 그러셨잖아요. 집 안에도 몸 속에도 갇혀 있지 않는다고. 영혼이라고요. 그럼 어서 날아가세요.
어린 소녀가 보여준 용기에 삶의 희망을 얻은 무스타파는 알미트라에게 “어서 돌아가 자신의 집에 숨겨진 모든 시와 그림을 찾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을 주문한다. 이제 두 사람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무스타파를 위해 그의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는 일, 그리고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 것. 과연 무스타파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00년 전 한 청년이 전하던 영혼의 말들은 소녀와 시인의 우정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