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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Oct 18. 2021

80년대생 미즈킴씨 4. 34세 최민영씨

저는 대한민국에 사는 최민영입니다. ‘사비나앤드론즈’ 라는 이름으로 곡을 쓰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사비나앤드론즈(Savina & Dronse)


사비나는 저의 천주교 세례명입니다. 드론(drone)은 ‘공명’을 의미하는데, 하나의 현이 울릴 때 다른 현이 공진하여 내는 소리를 말하지요. 저의 목소리를 통해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내는 공진에 청자의 마음이 울린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제가 오롯이 제 감정을 가지고 시작하면, 프로듀서 또는 연주자들이 그 감성과 음악을 이해해주고 그 파장을 함께 이어나가 주시거든요. 그렇게 완성된 저의 음악을 들으실 때 목소리뿐 아니라 각 악기의 연주가 다양한 소리로 하나의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귀로 듣는 즐거움도 있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울림이 인상적인 음악을 하고자 합니다.


음악 전반에 슬픔의 무드를 가지고 가는 편이에요. 앨범 안에 장르가 다양해서 어렵게 접근하실 수도 있지만, 타이틀 곡은 좀 더 편하게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데뷔한 지는 이제 9년 정도 되었고, 콘서트도 종종 하고 있습니다.


2010년 앨범 <Gayo>로 데뷔했습니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오랜 시간 억눌린 고름이 터졌던 것 같아요. 늘 하고자 하는 일이 선명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염두에 두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 결과 평생 먹고 살아갈 걱정은 하지 않을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 전공을 간호학으로 정했어요.


하지만 간호학을 공부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욕구가 결국 저를 잠식했습니다. 음악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가정에 보탬이 되고자 선택한 길이었지만, 학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우울하고 또 매일 슬펐어요. 졸업을 하고 직장에 들어간 뒤 6개월 정도 지나서는 도저히 삶의 의욕을 찾을 수 없었어요.


결국 하고자 하는 음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고, 친구의 도움으로 프로듀서를 찾아가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을 작사·작곡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있나요?
곡을 만들 때 음악적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 알고 싶어요.

어릴 때 1년 정도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인 것 같아요. 작곡이나 프로그래밍, 보컬 같은 부분에 있어 정규 교육은 받지 않았어요. 대신 음악을 시작할 때 프로듀서인 사부님이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해주신 점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1920년대부터 1990년대 빌보드 차트의 모든 음악을 시대별로 모조리 들었어요. 매일매일 수십 곡을 들으면서 제가 선호하든 선호하지 않든 다양한 음악을 접하는 것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주었어요. 그 속에서 제가 만들어가고 싶은 음악적인 느낌과 보컬의 창법 등을 배울 수 있었어요.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죠.


평소에 생각이 유독 많은데,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음악적 영감이 되는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 전, 출·퇴근 길 버스 안에서, 모처럼 쉬는 날 멍하니 앉아있다가도 스치는 생각들을 노트에 적어두고 가사를 쓸 때 참고하는 습관이 있어요.


어릴 때는 마음의 소리가 귀에 너무 크게 들려서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고민들이 음악적 영감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없어도 혼자 잘 지내는 어른으로 자라게 해준 것 같아요. 가슴 속 깊은 곳에 품었던 혼자만의 고민이나 슬픈 감정들, 전하지 못하고 담아뒀던 말들이 녹음실 마이크 앞에서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마도 저의 음악적 영감들은 일상에서 생겨난 나만의 생각과 감정들이 주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응급실 간호사’로 일한 이력이 흥미롭네요.
현재도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생업으로 삼은 일이지만 강한 사명감을 요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일단 힘들어도 열심히 했어요. 10년차가 된 지금도 ‘참 쉽지 않은 일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특히나 신규 간호사 시절 근무했던 첫 직장이 응급센터여서, 그 나이에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상황을 자주 겪게 되었어요. 내가 노력하면 구할 수 있는 생명도 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붙잡을 수 없는 ‘죽음’ 이라는 것은 자주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작업실에서 앨범 작업을 하는 시간 동안은 감성을 끌어내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출근을 하면 내가 나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만 했어요. 감성이라는 것은 삶과 죽음 앞에서, 응급상황의 환자 앞에서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이 매일 반복되었죠.


저는 출근을 할 때와 작업실로 갈 때 항상 다른 사람이 되었고, 그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날이면 매우 슬퍼졌어요. 출근길에 양화대교를 지나면서 저 또한 삶과 죽음에 초연해지는 순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까? 스스로 원망을 많이 했지만, 어쨌든 제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시간들을 지나 지금은 음악활동과 일 둘 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대중이 보는 나(사비나앤드론즈)와
스스로 인지하는 나(최민영)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저를 어떻게 보실 지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차이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대중이 보려고 해도 잘 안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제가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만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주인장 입맛대로 요리하는 식당처럼요. 입에 맞으면 자주 찾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겠죠.


그랬기 때문에 2집 앨범까지의 음악들이 제 취향과 음악적 욕심을 많이 채워주었어요.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을 내놓는 것도 뮤지션으로서의 숙제라고 느껴지지만, 저는 오롯이 저를 위해, 제 마음을 담아 만든 음악을, 더 정성스럽고 감정 그대로 신선하게 담아내는 노력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러면 저의 작은 식당도 매일 줄을 서서 드실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맛집으로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발표곡 가운데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는 곡은 무엇인가요?


첫 EP와 앨범에 모두 수록된 ‘where are you’ 라는 곡입니다. 이 곡은 저의 유년이 모두 담긴 일기장의 표본이라고 생각해도 좋을만큼, 저의 모든 생각과 고민들의 원천이 담겨 있어요.


이 노래를 처음 공연장에서 불렀을 때, 가사 한 마디 내뱉기 힘들 정도로 감정적인 소모가 많았죠. 말할 수 없는 속내까지 모두 다 노출된 느낌이라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다 꺼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음악을 하면 할수록 뮤지션으로서 해야 하는 음악이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나를 온전히 태워 빛을 만드는 일. 그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요.


음악을 하지 않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해요. 제 방 안에 제가 혼자 있고 많은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참 행복해하는 편입니다.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서요.


음악을 하지 않고, 또 일도 하지 않을 때에는 좋아하는 음악도 맘껏 듣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도 많이 합니다. 제가 저를 돌보는 일을 주로 하는 것 같아요.


타인과 함께 있으면 저는 타인에게 많은 신경을 써요. 기분은 괜찮은지 이 대화가 즐거운지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 보면 금방 피곤해 집니다. 그래서 친구도 여럿이 만나는 것보다는 한 명씩 만나는 것을 선호하고요


보통 사람 ‘최민영’의 변화와 성장이 궁금해요.
나의 유년시절 혹은 20대를 돌아봤을 때 30대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30대가 되면 안정될 거라고 믿었어요. 이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와 슬픔의 회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나이를 먹는 것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랬죠. 서른이 넘어서는 훨씬 안정이 되어서 살아가기가 참 수월해요. 이해가 절대 안 될 것만 같은 것들도 이해할 수 있고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게 됐죠. 인성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얻을 수 있는 그런 이해심과 이타심이 저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었지만 새로운 고민도 생겼을 것 같아요. 현재 민영 씨의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요?


돈이 별로 많지 않다는 거예요. 저는 한마디로 ‘투잡’이잖아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둘 다 전문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하지만 저는 정말 재산이 별로 없어요. 돈을 버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에요. 데뷔하고 5년 이상은 일을 해서 음악에 투자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근로/노동자로 일하면서 어찌 보면 취미 활동까지 했으니, 저는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절대 돈을 모을 수 없는 상황을 갖고 생활했던 거죠. 데뷔 7년차 정도 되었을 때부터 조금씩 돈이 모이기 시작했지만, 그리 큰 돈은 아니고요. 제가 아직도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기복이 심한 예술가라는 일을 하다 보면 때로 직장인이 얼마나 안정적인가 하고 느낄 때도 있고, OST 같은 작업을 통해 목돈이 들어오면 월급쟁이는 역시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참 재밌게 살고 있어요.

돈이 많아진다면요? 이제 간호사는 그만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또 다른 영감을 얻고 싶어요. 그렇게 오롯이 음악가의 삶을 살며 얻은 영감들로 싱싱한 3집 앨범을 발표하고 싶어요.


결혼에 대한 불안은 없나요?


결혼이라는 제도가 남녀 관계에 주는 도움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남녀의 감정이라는 건 어떠한 약속으로 묶어둘 수 없는 것 같아요. 내 삶이 행복하고 편안할 때, 다른 누군가의 삶을 받아들이고 서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야말로 결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때가 되어서, 혼자가 외로워서 같은 다른 이유를 충족하기 위한 선택은 정말 하지 않아야 하죠.


결혼이 아니라도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만약 2세에 대한 계획이 생기거나 결혼생활이라는 것 자체에 의미가 생기는 때가 오면 저도 선택해야겠죠.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서른이 되기까지 번아웃(Burn out) 될 정도로 달려왔는데 내 집도 내 차도, 크게 모은 돈도 없으니 조금 서러웠어요. 그래서 한번 더 남은 힘을 짜내서 달렸더니 돈은 조금 모였지만 체력이 다해 병을 얻었죠. 귀도 잘 안 들리고 무릎도 삐그덕대지만 아직 결혼과 출산은 시작도 못했네요. 결혼에 대해 자유로운 편이지만 풍족하고 건강한 삶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아직 너무나 할 일이 많은데 가진 것이 너무 없잖아요. 마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운동선수처럼요.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좌절하느냐 할 수 있겠지만, 너무나 불안정한 현실 속에 살고 있거든요, 우리는.


다음 앨범 계획이 있나요? 향후 내가 만드는 노래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은지?


솔직한 감정을 담고 싶어요. 남들에게 말하지 않는 마음  속의 감정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에게 기대면 서로 부담이 되지만, 노래는 얼마든지 향유해도 좋으니까요. 그리고 앞으로도 소신껏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제가 만든 음악은 제 삶에 엄청난 긍지가 되어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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