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에서 돌아와 현관 앞에서 잠시 발을 멈추었다. 신발을 벗으려다가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인 둘째 아이가 입시에 매달려 매일 어깨가 처져 있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피아노를 치고 있다.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서 귀를 기울인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옆집에 놀러 갔다 온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졸라댔다. 건반을 두드리는 친구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이었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배움은 느렸다. 몇 년을 연습했지만 바이엘에 머물러 있었다. 학원에 다니기 싫거든 그만 다니라고 했더니 오히려 피아노를 사 달라고 했다. 집에 피아노가 있으면 연습도 많이 하고 눈에 띄게 잘 칠 수 있다고 했다. 남자아이라서 계속 칠 거라는 생각은 생각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배운다면 사 주겠다고 미루어 두었다. 아이는 꾸준하게 악보를 들고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약속대로 생일 선물로 피아노를 사주었다. 그 무렵 아이는 클라리넷까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피아노에 집중하라고 했는데 소용없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피아노 연주를 했고 밤새도록 클라리넷 연습에 몰두했다. 이삼 년이 지나자 클라리넷을 다루는 동작이 예술가를 흉내 내고 있었다.
어느 해 가을, 내가 속해 있는 문학회 출판기념회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게 되었다. 막상 아이가 연주를 하겠다고 해서 무대에 세웠지만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연주하는 동안 가슴이 졸여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삑사리’가 날까 봐 손에 땀이 흥건했다. 틀린 곳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여러 곡을 부르고 나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아이는 음을 듣는 청각이 뛰어났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률을 듣고 좋다 싶으면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서 바로 연습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주인공들의 이별 장면이 나왔다.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헤어져야 하는 장면이었다. 내용도 슬펐지만 음악이 너무나 애절했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였다. 여학교 때 내가 즐겨 듣던 음악이었다. 새벽녘까지 음악에 빠져서 늦잠을 잤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하지만 제목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같이 보고 있던 아이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곡이라고 했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음악을 즐겨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는 내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악기는 어떤 것인지 그 악기가 들려주는 고유의 리듬이 갖는 감성과 울림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설명했다. 아이의 음악적 감성이 나에게 옮겨졌다. 귀담아듣는 선율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 것과 해설을 들으면서 듣는 음악은 다른 느낌이었다.
단풍이 아주 곱게 물든 어느 해 가을이었다. 만학도로 대학을 다니면서 초등학교에서 독서지도를 한 적이 있었다. 시골 학교에서 처음 시도하는 독서 수업이어서 전교생이 다 몰려왔다. 수업 경험이 없었던 나는 가르치는 노하우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틈을 내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용 전달을 위해서 공부하다 보니 늘 파김치가 되었다.
그날도 어깨가 처져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면 기가 다 빠지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져서 녹초가 되었다. 동시에 허기를 느꼈다. 가족을 위한 저녁식사는 뒤로 미루고 나의 허기부터 면하려고 평소엔 한 개도 다 먹지 못하는 라면을 두 개나 끓였다. 배가 고파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설익은 라면을 후후 불면서 입으로 가져갔다.
펄펄 끓는 라면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입 속에서 뱅뱅 돌았다. 뜨거운 라면에 입천장이 데고 나니 허한 감정과 배고픔의 허기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충혈된 나의 눈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피아노의 맑은 울림이 방안에 가득 퍼졌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였다. 잔잔한 음악소리에 감동이 일었다.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자니 순식간에 허기가 사라졌다. 세네 살 적 피우는 재롱을 보면서 평생 받을 보상을 다 받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는 또 한 번의 감동을 주었다.
한창 공부에 몰두해 있는 지금, 아이는 수능 준비생이지만 내가 조금만 힘든 모습을 보여도 음악의 소리로 나에게 재롱을 피운다. 피아노를 치던 녀석이 힐끗 돌아본다. 현관 앞에서 귀 기울이고 있던 어미를 의식한 모양이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내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