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자폐증을 앓는 친딸을 살해한 재판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혀를 찼다. 자식을 살해했다는 소리에 소름이 끼친다고도 했다. 나 역시도 상상도 못 할 일이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국민 참여 재판의 배심원 후보로 법원에 출석하게 되었다. 법정에 도착하자 후보들이 번호표를 받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도 표를 받고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법정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무거움이 엄습해왔다. 분위기 또한 낮게 깔려 있었다.
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오자 재판장이 검사와 변호인, 배심원 후보자의 출석을 확인했다. 직원은 추첨함에서 무작위로 여덟 명의 배심원 번호를 뽑았다. 재판장이 추첨된 배심원 후보자의 번호를 불렀다. 맨 나중에 뽑힌 나는 배심원 지정석의 왼쪽 1번 앞자리에 앉았다. 대표 자격으로 선서까지 낭독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여검사는 사건 당일의 상황을 낮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식을 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변호인은 부모가 자식을 살해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와 변호사는 번갈아가면서 당면해 있는 자신들의 입장을 배심원들에게 눈을 맞추며 설명했다.
여자는 딸 둘을 키우고 있었다. 큰 딸은 자폐였고, 작은 딸도 불치병에 걸렸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그녀는 자폐증을 앓는 큰딸을 데리고 남해안으로 차를 몰았다. 함께 목숨을 끊기 위해서였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여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녀는 운전하는 옆자리에 딸을 앉혔다. 한참을 가만히 있던 딸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옷 단추를 풀어달라고 했다가 채워달라는 행동을 반복했다. 차들은 고속으로 질주를 했고 아이는 울고불고 트집을 잡다가 핸들을 잡고 늘어졌다.
순식간에 여자는 핸들을 꺾게 되면서 가드레일을 박고 차는 멈추었다. 딸을 어르고 달래다 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순간적으로 딸의 목을 조른 것이다.
검사가 먼저 사건에 대해서 말했다. 자신도 어린 딸을 키우고 있지만 용서할 수도 없거니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엄마로서 이해가 안 되며 5년의 유기 징역에 처해야 한다고 판사님께 보고했다. 정상참작을 해서 기본적인 형량은 받아야 아이에 대한 죗값을 치르지 않겠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검사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는 검사가 한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벌어진 사건을 인정은 하되 여자가 처해있는 상황도 알아달라고 했다. 검사와 변호사의 끝없이 이어지는 반론에 나는 그만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졌다. 그때부터 내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사건이 일어났던 영상을 보여 주는가 하면 아이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과 주검의 사진까지 펼쳐놓으니 온몸이 떨려왔다. 그렇게 몸과 마음은 종일 경직되었다.
여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양 볼을 덮었고 기운 없는 모습은 초췌하게 보였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라도 하듯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은 삶에 대한 의욕마저 없어 보였다.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을까.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딸을 어떻게 했을까, 묻고 싶었다.
여자의 남편이 증인석에 나왔다. 남자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 변호사가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간단한 질문이었고 남자는 대부분 인정하는 대답이었다. 간혹, 질문의 대답으로 여자가 그동안 가족을 위해서 얼마만큼 희생을 했는지에 대한 얘기도 끄집어냈다.
여자는 두 딸 건사하기에도 이미 몸이 지쳐갔다. 그리고 시댁 식구에게 최선을 다했다. 위암에 걸려있는 시아버지의 수술로 병원에서 간호를 맡았다. 혼자서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는 시어머니 수발도 들어야 했다. 본가와 병실, 병실과 자신이 사는 집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동분서주했다.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남편 또한 챙겨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내는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고 오히려 그런 아내를 뒷짐 지고 바라보며 짜증내고 화냈던 자신이 죄인이라고 통곡했다. 남자의 울부짖음으로 법정 안의 분위기가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후 내내 울음과 통곡으로 용서를 구하던 남자의 눈물이 배심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자폐증을 앓는 딸은 겨우 5살이었다. 세상에 나가 빛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평생 자신과 아내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살아가겠다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가 가정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살도록 도와달라며 흐느꼈다. 배심원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다 맞추면서 선처를 고했다.
조용하던 법정은 여기저기에서 콧물 눈물로 훌쩍였다. 나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아이의 죽음으로 안쓰러운 마음과 남자의 눈물로 측은한 마음이 씨줄과 날줄로 뒤엉켜서 마음이 아팠다. 이 재판은 개인의 문제와 가정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섞여 있다는 걸 암시했다.
여자는 그날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그녀의 남편과 시부모가 선처를 탄원했고 배심원들의 양형 의견 등을 종합해서 내린 의견이었다. 법정의 문을 나서는데 남자가 배심원들에게 고맙다며 손을 잡았다. 죽을 때까지 뉘우치면서 살겠노라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