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떠났다.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친하게 된 언니와 함께였다. 언니는 여행을 좋아했다. 아들 둘을 결혼 시키고는 자주 여행길에 나섰다. 그런 언니가 언제부터인가 내게 여행을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농사일에 늘 허덕이던 나는 언니와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새해에 언니와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이렇게 추운 날 몸과 마음을 쉬어보자고 세부 섬으로 떠난 것이다.
세부에 도착한 우리는 첫날 호핑투어에 나섰다. 야자수가 늘어진 해변에 새하얀 모래밭이 어룽거렸다. 힐룽뚱안 섬에서 스노쿨링을 하고 물놀이를 즐겼다. 나는 바닷속이 무서워서 야자수 그늘에 앉아있으니 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나도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무섭게 느껴졌던 스노쿨링이 무섭기보다 물과 일찍 친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날루수안 섬에서는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보았다. 겨울이면 늘 웅크리고 있던 몸과 마음이 보는 것만으로도 녹아내렸다. 이곳에서 추운 겨울을 한 달만 보냈으면 싶었다. 느긋한 여유와 넘실대는 파도와 푸른 하늘만 있어도 한 달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갈 것 같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늦은 시간까지 수다 꽃을 피우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번쩍이고 집중호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여행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언니는 일에 묻혀 사는 내가 안쓰럽다고 했다. 일만 하다가 세상 떠나겠다고 몸을 아끼라는 충고까지 했다. 조금씩 삶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이니 일하는 욕심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여행을 자주 다니자고 했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이른 새벽 가이드가 잠자는 우릴 깨웠다. 밤새 태풍과 집중호우로 파도가 심해서 배가 뜨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저기 건물의 벽면이 무너지고 창문도 날아갔다. 거리에는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서 누워있고 전봇대까지 넘어져 있었다.
딱빌라란 항구에서는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배를 출항하지 못하게 했다. 출항하다가 잡히면 국가에 벌금을 엄청 물어야했고 면허 취소까지 당할 수 있다는 엄포를 내렸다. 얼마 전 출항해서는 안 될 배가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태풍과 맞서다가 바다 한가운데 뒤집혔다. 인명 사고는 물론이거니와 배가 뒤집히면서 박살이 났다고 했다.
모두가 발을 동동 굴리고 있을 때였다. 가이드가 배를 탈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입수해 왔다. 봉고 차 한 대를 빌려 왔으니 아무 말 하지 말고 차에 올라타라고 했다. 가방은 트렁크에 싣고 우리는 말없이 차에 올랐다. 항구에서 벗어난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차 안에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만 봐라봤다.
세 시간 남짓 달렸을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닷가의 자그마한 항구였다. 파도가 잔잔했다. 이 마을은 열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듯했다.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술했다. 차에서 내리니 동네 사람들이 바깥에 나와서 우릴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진흙탕 길을 걸었다.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이미 다 젖은 상태였다. 캐리어를 끌고 비를 맞으며 한 줄로 서서 흙탕길을 걷는 우리의 모습은 피난민이었다. 예닐곱, 그것보다 더 어린 남자 아이들이 물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고 캐리어를 통통배로 옮겨주었다.
큰 배는 물이 얕아서 마을 앞에 정박할 수 없었다. 마을에서 1k 되는 곳에 배가 정박해 있었다. 우리가 통통배에 타고 있으면 정박해 놓은 큰 배까지 아이들이 수영을 하면서 또 다시 끌어다줬다. 팬티만 입고 헤엄쳐서 우릴 데려다 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엾기도 하고 생쥐 꼴이 된 우리 모습을 보니 처량하기도 했다.
우린 그날 어선을 타고 바다 한가운데 몇 시간을 떨고 있었는지 모른다. 큰 파도에 출렁거리는 배 안에서 비를 피할 곳도 없었고 추위와 배고픔으로 악몽에 시달렸던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멀미를 심하게 했던 언니는 배타는 여행은 이번이 끝이라며 선언했다. 그날의 여행은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많았는데 춥고 힘들고 배고팠던 기억이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얼마 후 언니는 응급실로 실려 갔다. 배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몇 가지 검사 결과 췌장 밑에 붙은 쓸개에 문제가 있었다. 며칠 후 정밀 검사에서 담낭 암이라고 했다. 수술과 항암 치료가 소용없을 정도로 온 몸에 암이 번져서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여행 다닐 때도 가끔 아프다고 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언니는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다시 새해가 되고 겨울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가장 추운 날씨와 맞닥뜨릴 때면 언니와 여행했던 날들이 그립다. 몸을 아끼라고 했던 언니는 아무런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세상 밖으로 훌훌 떠났다. 언니가 없는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다.